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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26일 화요일 말씀묵상 ♣
성경:누가복음5:17-26(신96P)
제목: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님
17.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한 동네에서 나병 환자를 만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1. 예수님은 깨끗함을 원하십니다(13절).
2.예수님은 증거를 원하십니다(14절).
3.예수님은 기도를 원하십니다(16절).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보시면서 연민의 정을 가지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면서 우리의 아픔에 참여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질병이든 병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십니다. 그리고 질병을 완벽하게 치유하십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모두 맡김으로 주님께서 행하시는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회복된 영혼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깨끗함과 증거의 삶과 기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님”(눅5:17-26)
세상을 살다보면 문제없는 인생 아예 없습니다. 가정에도 문제는 있고 사회에도 문제는 있고 나라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교육계에도 마찬가지요 경제계에도 마찬가지요, 정치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도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문제는 저마다 인생들에게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크던지 작던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는 이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은 한 불쌍한 중풍병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소는 가버나움이지만 이름도 밝혀있지 않고 신분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대로 두면 더 큰 문제를 만들뿐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병자는 아마 수년동안 중풍 병으로 고생 고생하면서 해결할 방도를 간구했을 것입니다. 좋다는 약 다 써보았고 영험하다고 하는 의사 많이 만나 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가족들도 그를 위하여 노심초사했고 재산도 어느 정도 축을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가을 나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어찌하나 근심 걱정 고통 가운데 가족 모두가 번민하고있습니다. 이 병을 어떻게 고칠까? 이것이 중풍병자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중풍병자의 질병입니다.
본문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20절의 보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고 했는데 여기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공짜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일까요?
1.헌신적인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매우
소중한 질문 하나가 던져져 있습니다. 누가 여기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 갈 것인가?
다시 말하면 중풍병자 인생을 예수께로 데려갈 사람이 누구냐? 바로 이것입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눅 5:18).
누가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갔습니까? 본문은 그냥 사람들이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명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사람들은 믿음 있는 사람들이요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문제 해결의 열쇠 하나가 있습니다.
헌신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예수님은 헌신의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 땅에서, 헌신된 사람들을 찾아 예수님은 이 땅의 중풍병자를 고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누가 중풍병자 인생을 예수께로 데려갈까? 이것이 교회마다의 과제요 온 성도들에게, 곧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맡겨진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의 많은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 갑시다.
본문에서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헌신적인 믿음인 것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헌신적인 믿음은 또 어떠한 믿음입니까?
1).우선 사랑이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도 불쌍한 중풍병자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동정을 베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눅10장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와도 같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사랑의 손을 갈구하면서 목말라 하고있는데 모두 피하여 지나만 갔습니다.
제사장도 피하여 지나가고 레위인도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무명의 사람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사랑을 베푼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있는 몇 사람이 한 곳에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되 주변의 중풍병자 인생을 무척이나 사랑합시다.
2).또 이 믿음은 합력이 있는 믿음입니다.
교회 성가대가 아름다운 찬양을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대원 한 사람 한 사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서로 합력 했기 때문입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상에 누이고 예수께로 데려 갔는데 한 사람은 다리가 길고 또 한사람은 다리가 짧고 한 사람은 걸음이 빠른데 또 한사람은 걸음이 느리면 어찌 되겠습니까?
네 사람이 합력하여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합력 있는 믿음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3).그리고 이 믿음은 인내가 있는 믿음입니다.
그들은 먼길을 멀다 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 갔습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니까 장애물이 생겨났습니다. 무리 때문에 예수께로 데려갈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낭패입니다. 실패입니다. 헛수고입니다. 괜한 일을 한 것입니다.
계획은 세웠으나 시작은 했으나 출발은 했으나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포기했습니까? 좌절했습니까? 뒤로 물러섰습니까? 아닙니다. 그 어려움을 참아 냈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우리에게 인내가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분위기는 험악했습니다.
이제 못하겠다. 이제는 끝장이다. 괜히 헛수고했다. 이제는 소망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때입니다. 네 믿음이 무엇이냐? 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고 할 수 없는 일을 되게 하는 일이 믿음이기도 합니다.
끝났다 환경 속에서 아니다. 시작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기도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만일 요셉이 웅덩이 고난을 참지 못했다면 만일 요셉이 종살이 고난을 참지 못했다면 만일 요셉 이 옥살이 고난을 참지 못했다면 그에게 어떻게 국무총리 훈장을 가슴에 달수 있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인내가 있는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고난을 참으십시다. 나의 중풍 병을 참으십시다. 우리 모두의 중풍 병을 인내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2.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을 넘으려고 합니다. 미리서 병사를 보내어 상황을 살피도록 했습니다. 다녀온 병사가 보고를 하는데 “능히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에 나폴레옹이 했던 말 너무 유명합니다.
“No more. 이상 그만 두라 넘을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족하다 넘자” 그리고 알프스 산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은 서로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데려간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것이 그들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무엇입니까? 적극적인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빌 4:13절 말씀을 계속 암송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인 사고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I can do. 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느니라”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더러는 할 수 없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고를 배제 시켜야 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열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10명은어쨌습니까?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쨌습니까? 저들은 우리의 먹이(밥)이라 고 했습니다. 결과는 그 말대로 그들은 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할 수 있다”. 믿습니다.
물론 내 힘만으로는 백가지가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기도도 할 수 없다고 할 것인가? 모세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야곱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요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 내 방법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 방법대로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문제 해결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3. 모험적인 믿음입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시는 문전까지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전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용신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길이 꽉 막혔습니다. 되돌아가야 할 형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쨌습니까?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괜히 왔다 가지 말라고 했지 않았느냐! 다투지도 않았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기어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들의 모험적인 믿음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쨌습니까?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 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눅 5:19).
세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선 그들은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로 중풍병자를 데려간 그들이 지붕은 웬 말입니까?
너무 모험적인 행동이 아닙니까? 상상도 못했던 일이 아닙니까? 여기 지붕은 우리에게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지붕은 높은 곳입니다. 하늘은 지붕보다 더 높습니다.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할 수 없어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여러분! 믿음 생활 성적이 올라가고 있습니까? 내려가고 있습니까? 기도 생활 점수가 몇 점이나 됩니까? 전도 생활, 헌금 생활, 봉사 생활 점수가 몇 점이나 됩니까?
눅10장에서 교훈 합니다. 어쩌다가 강도를 만났던가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봉변을 당했습니다.
드디어 중풍병자가 예수님께로 내려 졌습니다. 이때입니다. 20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중풍병자 보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모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세리장이나 부자를 보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될 만한 믿음 보셨습니다.
왜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까? 믿음은 문제 해결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왜 믿음을 보십니까? 믿음 없이는 잘난 것, 똑똑한 것, 훌륭한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통장이 많아도 학벌이 훌륭해도, 사회적 신분이 높고 가슴에 훈장이 여럿일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성도가 아니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결국 천국에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은혜를 듬뿍 주신 것입니다. 또 믿음이 없이는 나의 중풍 병을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중풍병을 고치는 능력이요 문제 해결의 열쇠요 또 열쇠 없이 자물통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때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축복의 소낙비를 쏟아 주셨습니다.
23절에 보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육신의 병을 고치러 온 그에게 이 죄 사함까지 공짜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24절에 보니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얼마나 엄청난 축복입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적이 번개처럼 일어났습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께로 갈 때는 침상에 눕혀서 갔는데 이제는 중풍병자가 그 침상을 어깨에 메고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공짜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일까요?
1.헌신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헌신적인 믿음은 또 어떠한 믿음입니까?
1).우선 사랑이 있는 믿음입니다.
2).또 이 믿음은 합력이 있는 믿음입니다.
3).그리고 이 믿음은 인내가 있는 믿음입니다.
2.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3. 모험적인 믿음입니다.
여러분!오늘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헌신적인 믿음과 적극적인 믿음과 모험적인 믿음을 우리도 소유하여 영적으로 육적으로 문제 해결을 받으시기를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누가복음5:17-26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우리의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