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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영 표지인물 연만희 보건장학회 이사장
(입력: 2021.05.12.22:00 / Cover Story - 월간현대경영 5월호)
Hall of Fame
CEO 명예의 전당
유한양행 60년(1961~2021) 봉직 기업 영웅!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 (현)보건장학회 이사장
고대 교우회 2021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수여
현대경영 ‘한국의 경영자’ 명예의 전당 추대
유일한 박사와 유한양행과 더불어 60년(1961~2021)
‘정도경영’의 아이콘 ‘유일한이즘(Yu-Il-Hanism)’의 계승자
유한양행 파운더(founder) 고 유일한 박사는 한국 경제사회의 남다른 상징이다.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 ‘나눔’의 대명사이자, 세무조사에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은 ‘정직’의 아이콘이자, 또한 경영권을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은 지배구조개선의 선구자다. 오늘은 유일한 박사의 철학과 사상을 물려받은 최고경영자를 만나는 날이다. 1961년 유한양행에 입사하여 초기 10년은 유일한 박사를 보좌하고, 유 박사 사후(死後) 50년은 ‘정도경영의 유한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심’ 역할을 해온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이 지난 3월, 유한에서 공식적으론 은퇴했다. 고려대학교 교우회는 ‘유일한이즘(Yu-Il-Hanism)’의 유일한 계승자인 연만희 보건장학회 이사장의 60년 봉직을 기념하여 올해의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시상했다. 현대경영 편집위원회는 평생 60년(1961-2021)을 유한양행과 함께 하며 유한양행의 지속가능 발전은 물론 산업계 발전에 이바지한 ‘기업 영웅’ 연만희 이사장을 ‘한국의 경영자’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모시고자 하오니 강호제현(江湖諸賢)의 많은 지도와 응원을 바란다.
연만희 뎐(傳)
Yun, Man-hee 延萬熙 연만희
세상의 벗님네야 이내푸념 들어보소. 세상은 고해화택이요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하였는데 흥부 저사람 심사보소 남에게 싫은 소리없이 울타리 지켜질까. 세상의 벗님네야 이소식도 새겨보소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 보건장학회 이사장 그의 정직과 나눔은 평생보필 유일한 박사와 호흡맞아 외부압력이 아니라 순전히 스스로 내린 판단이니 이는 서양사람 워런버핏이나 빌게이츠와 똑같이 자랑할 일이외다. 어화 벗님네야 현대경영 편집자가 서울 한수이남 대방동 유한양행 4층 소재 보건장학회에서 연만희 이사장을 인터뷰하고 너무나도 감동하여 연만희 뎐을 노래하니 어화 벗님네야 우리모두 연만희님 배워보세. 얼씨구 좋다.
오늘은 기자가 행복한 날이다. 서른한 살부터 아흔한 살(1961-2021)까지 ‘60년 비즈니스맨’ 기록을 세운 연만희 보건장학회 이사장을 인터뷰하는 행운을 가졌다. 이는 한국경영사 발전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판단되어 ‘흥부 뎐’에 빗대어 ‘연만희 뎐(傳)’을 작성해 보았다.
1930년생인 연만희 이사장은 서른한 살(1961년)에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 유일한 박사를 10년간 보좌했고, 1970년에는 유한재단 창립이사로서 1971년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측근에서 유 박사를 모셨다. 유일한 박사와의 10년이라는 운명적 만남은 그에게도 많은 것을 선사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연 이사장은 어머니로부터 엄격하게 배운 모태신앙(母胎信仰)적인 ‘정직’을 실천하여, 유일한 박사가 최애(最愛)하는 유한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유일한 박사를 모시면서 유한 정신을 직접 배우고 함께 실천해온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유 박사의 타계 후에 유일하게 유일한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오늘날의 공유가치 창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선구자라는 사명감을 갖고 유한양행 사장(1988), 회장(1993)과 유한재단 이사장(1996)·이사(1971–2019) 및 고문(1996–2021)을 25년간 역임해왔다. 1970년 설립한 유한재단의 창립멤버이기도 한 연 고문은 2019년 재단이사직에서 스스로 사임하고, 2021년 3월에는 고문직마저도 스스로 사임했다.
평생을 옳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던 연만희 이사장의이번 은퇴를 기려고대 투데이(KU Today)는 “그의 황혼이 나눔으로 물들어간다. 해진 뒤의 노을이 더없이 찬란하다”는 평을 내놓았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잠시 사라질 뿐이다” 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유한양행의 존경받는 기업문화와 기업가정신
박동순 현대경영 편집인: 안녕하세요. 건강해보이십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연만희 보건장학회 이사장: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체조를 합니다.
박동순 편집인: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양행’하면 초우량기업이요, 또한 젊은이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이사장님은 60년 동안(1961~2021년) 유한양행에 몸담으셨는데요. 한마디로 유한양행은 어떤 회사인가요?
연만희 이사장: 유한양행은 어떤 한 사람만의 기업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업이요, 우리 사회의 기업입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먼 미래를 바라보며 기업이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유한양행의 전통입니다. 유한양행은 물론 제약회사이지만 우리나라 근현대(近現代) 기업발전사에 있어 뜻있는 기업으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유일한 기업정신이 살아 있는 한 현재와 미래의 경영진에 의해서 훌륭히 지속가능 성장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박 편집인: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의 사회환원 등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공유가치의 창조(CSV)를 강조하셨는데요. 이사장님께서 현역으로 활동하실 때 가장 중시한 경영철학은 무엇인지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V(Creating Shared Value)
연 이사장:저는 이미 1996년 회장직을 사임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가 오래돼 재임기간 동안의 경영철학을 말하는 것이 적절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후에도 재단이사장으로서, 고문으로서 ‘유일한 정신’을 전파코자 노력을 다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창업이념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언제나 저의 으뜸 목표였고, 회장님의 주요 핵심어록이 30여개가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성실한 납세, 정직과 신뢰,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등의 정신과 내용을 그대로 살려 경영자문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회장님의 엄명 “유한의 주인은 사회와 구성원이다”
박 편집인:유일한 박사가 몸소 가르치고 보여주신 ‘유일한 정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요.
연 이사장:제가 유한에 입사하자마자 유일한 회장님의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몇 번 뵌 적도 없는 유 회장님이 저에게 증권시장 상장업무를 맡겼습니다. 처음에는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하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준비해서 마침내 1962년 11월,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회장님으로부터 배운 교훈 중에 “유한양행은 상장과 함께 내 회사가 아니며, 이 회사를 성장하고 발전시켜준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유한양행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박 편집인: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입사 1년차 신입사원(연만희)이 어떻게 회장님으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었을까요?.
연 이사장:(하하하!)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앞에 회장님 소유의 작은 토지와 주택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말 총무부장으로 제가 일찍 출근하다 보니 회장님께서 “아예 회사 가까이 거주하면서 근무하라”며 토지와 주택을 주시겠다고 직접 제안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성북구 정릉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회장님 제안을 간곡히 거절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돌이켜보면 회장님께선 ‘연만희 군이 욕심이 없는 정직한 놈(?)’이라고 믿게 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이사장의정직 윈윈(win-win)
박 편집인: 유일한 박사와 함께 한 ‘10년 시공간(時空間)’ 가운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정직’인 것 같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의 ‘정직’ 코드와, 연만희 이사장님의 ‘정직’ 코드가 매치(match)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연 이사장: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유일한 박사님을 보좌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겐 일생일대의 운명이요 또한 행운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어머니로부터 거의 모태신앙(母胎信仰)처럼 ‘정직’을 배웠는데, 유일한 박사님을 측근에서 모시는 10년 동안 ‘정직’을 바탕으로 한 유일한 박사의 철학을 몸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 1971년 유 박사 타계 후에는 제가 솔선해서 ‘유일한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회사 경영권을 가족에게 승계하지 않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순수 유한인’들에 의해 기업이 승계될 수 있는 절차와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국가와 사회,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경영혁신도 꾸준히 실행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노사 상생의 기업문화, 그리고 전통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기업문화와 진취적 인재육성… 등등 유일한 박사가 생전에 강조했던 정직(正直)과 정도(正道)의 경영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실천해, 오늘의 넘버원(No.1) 제약기업을 일궜다는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또한 제가 유일한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유한양행 사장과 회장을 거쳐 유한재단 이사장까지도 역임했으니 유한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온 셈입니다. 유한양행에는 창업주의 유언대로 직계 친족 한사람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전 임직원이 주주이자 주인이며, 노사관계도 원만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창업주께서는 1969년 경영은퇴에 앞서 부사장이던 외아들 유일선씨를 퇴사시켜 전문경영인체제를 확립했으며, 1971년 3월 타계에 앞서 전 재산 사회 환원과 혈족들의 경영참여를 막아달라는 유언장을 남김으로써 미래의 유한양행 발전에 초석(礎石)을 깔아놓은 셈입니다. 주인이 없는 사원회사가 반드시 최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한의 경우 창업주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후 순수 유한인들에 의해 기업이 승계되어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고 현 경영진도 이 전통을 계속 발전시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한의 독특한 거버넌스 모델 범산업계에 PR도
박 편집인:유한의 기업지배구조(거버넌스: governance)를 보면, 유한이야말로 요즘 강조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선구자로 우리 산업계에 널리 알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연 이사장:유한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와, 유한의 대주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유한재단 이사장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하며, 아주 독특한 경영의 거버넌스 구조를 구축하고 있지요. 유한양행 대표이사(CEO) 임기의 경우 3년 연임, 총 6년을 관례화했습니다. 이 관례는 유일한 박사 사후(死後)50년간 유일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킨 유한의 전임 전 임원들이 만들어온 관례이고, 저는 유한의 청지기 역할을 수행하며 그 관례를 30년 이상 수행해왔죠. 또 다른 기업문화 중의 하나는 대표이사 사장 임기 만료 1년 전에 차기 사장 후보를 발탁하여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미래의 유한’을 이끌도록 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유한의 이러한 독특한 승계 방식은 업계에서도 널리 벤치마킹되고 있지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통을 확립하기 위하여 유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하여 유한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유한의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유한재단의 당연직 이사(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몫) 및 유한학원 이사로 임명되게 되는데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조해온 유일한 정신을 지키는 소유와 경영 분리의 시스템 경영의 든든한 운영모델로 완전히 정착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유한재단 창립 이사로 50년간 재단이사로 근무하다가 이사 임기가 만료된 2019년 말 서슴없이 재단에서의 청지기 역할을 ‘유일한 박사의 유일한 직계 손녀인 유일링 이사’에게 승계하도록 했지요.
최고경영자 임기제는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장 임기 만료 1년 전에 후임사장을 총괄 부사장으로 선임하여 훈련시키는 전통도 나름 중요한 배경이 있습니다. 유한과 같이 회사의 개인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는 임기제한이 없는 경우 실적이 우수한 전문경영인이 임기가 만료될 때마다 경영권과 관련한 많은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유한의 대주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유한재단이 큰 미션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전에 후임자를 선정하지 않게 되면 유능한 전문경영인의 ‘욕심의 통제’가 쉽지 않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임기의 제한은 “우량기업에는 꼭 필요한” 새로운 젊은 경영인의 수혈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회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러한 전통을 유지,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 임기를 1년 남겨둔 시점인 66세에 모든 경영에서 사임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유한의 관습과 전통이 유한의 전문경영인 제도가 유지되는 불문율로 되어오고 있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너라는 말은 어폐(語弊)
박 편집인:과거 역사학자 겸 동아일보 주필을 지낸 천관우 선생이 ‘보수, 반동, 급진, 자유파’라는 네 가지 흥미로운 모델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현상에 만족하면서 장래는 낙관하지 않는 사람은 ‘보수파’가 되고, 현상에 불만이면서 장래도 낙관하지 않는 사람은 ‘반동파’가 되고, 현상에 불만이지만 장래는 낙관하는 사람은 ‘급진파’가 되고, 현상에 만족하면서 장래도 낙관하는 사람은 ‘자유파’가 된다는 겁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유한 비즈니스맨’ 60년 동안 언제나 정직과 시스템 혁신으로 현상을 만족시키고, 장래도 낙관적으로 그려보는 이사장님이야말로 ‘자유파’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끝으로 고려대학교 출신 최고경영자로서 ‘자유, 정의, 진리’를 표방하는 고려대학교 이야기도 들려주시죠.
연 이사장:구십 평생 운 좋게도 영예로운 여러 상을 수상했고 그 중에서도 유일한 박사의 기업이념을 계승·발전시킨 공로로 수여 받은 ‘한국의 기업가정신 대상(大賞)’이 기억에 남고 자랑스러웠는데, 이번에 수상하게 된 ‘자랑스런 고대인상’은 예전에 받았던 그 어떤 상보다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국가차원에서 주는 상들이 모두 유한 근무와 관련이 있다면 이번에 받은 ‘자랑스런 고대인상’은 20대 청춘을 보냈던 고려대로부터 나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받는 상이라서 벅찬 감동을 갖게 합니다.
제 인생에는 세 번의 큰 운명적 만남이 있었는데,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정직’, 둘째는 고려대 입학으로 맺어진 운명적 학연(學緣), 셋째는 유한양행 입사로 맺어진 유일한 박사와의 운명적 만남이었습니다. 특히 고려대에서는 정세영(현대자동차 회장, 현대산업개발 전 회장), 구두회(LG그룹 창업고문, 예스코 명예회장)와 친하게 지내며 인생과 사업과 미래를 논의했지요. 고인이 된 두 친구들이 그립네요.
기업의소유주는 영원히 사회
박 편집인: 코로나 난세(亂世)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난리를 치르고 있는데요. 원로경영자로서 현대경영 독자층인 500대기업 CEO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 이사장: 제가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모든 의사결정에서 최고경영자의 정직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투명경영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CEO 본인의 자세가 중요하고 앞장서서 보여주면 종업원들도 따라옵니다. CEO가 직원, 고객, 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의 생명인 신용과 신뢰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유일한 박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한양행은 상장과 함께 내 회사가 아니며, 이 회사를 성장하고 발전시켜준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유한양행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처럼, 기업경영 시에 도덕적 기준과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회적 책임을 꼭 기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장하는 순간부터 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오너라는 말은 어폐(語弊)가 있지요. 언론에서도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대주주도 주주일 뿐입니다. 성공한 기업의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고도의 경영전략이라기보다 정도경영으로 경영의 실상을 사실대로 공개하여 기업내외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데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봅니다.
요즘 기업경영에서 강조되고 있는 ESG 경영의 원칙과 기본을 유일한 박사는 이미 60년 전에 강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전문경영인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이기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의견을 듣는데 부지런히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통합하는 경영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실업가 카네기의 무덤에 있다는 “여기엔 남의 두뇌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묻혀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서 경영과 경영자 교육에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유일한 박사님이 늘 당부하신 다음의 말씀을 되새겨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PS(Post Script): 연만희 이사장의 경영철학은 ‘삼진주의(三眞主義)다.
60년 유한동산에서 현역으로 유일한 정신을 전파하면서 삼진주의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진이란 ①진리 ②진실 ③진심이다. ‘정도경영’과 ‘정직한 경영’ 60년의 선물일까? 연만희 이사장님의 눈이 맑으시고 총명하다. 평생을 바른 일 하시고, 바르게 나누신 은총이 아닐까. 오늘 인터뷰에서는 또 하나의 ‘빛’이 있었다. 이사장님의 반짝이는 ‘눈’과 함께, 이사장님이 신으신 반짝이는 ‘구두’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Claude Monet | Woman with a parasol | 1875
오월 ‘어머니의 날’_‘정직’을 가르쳐주신 어머니
어머니의 사진을 제 방에 모시고 매일 인사 올립니다. 어머니가 스물세 살,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랑 친구 둘이랑 셋이서 귀갓길에 친구들이 문방구에 둘러서 삼각자를 우물우물 만지더니 분도기(각도기)를 저에게 슬쩍 주었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가 필통 안의 분도기를 보시더니 “이게 웬 거냐”고 물으시길래 “친구들이 사서 준 거”라고 우물쭈물하자, 어머니께서 친구들 집으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집에 끌려가다가 “사실은요, 친구들이 삼각자를 우물쭈물 만지다가 돈은 안주고 분도기를 저에게 준 것 같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다짜고짜 저를 문방구로 끌고 가셔서 삼각자와 분도기 값을 지불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는 “내가 너 하나 보고 살아가는데 이런 짓을 하면 무슨 희망으로 살 수 있겠냐”며 우셨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저도 눈물이 납니다. 그 후 무슨 일이 있어도 정직하게 살겠다고 결심하고 90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지요.
– 연만희 이사장
* 자세한 내용은 월간현대경영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2021.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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