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진관동 '진관사'를 다녀 왔습니다. 진관사는 고려 제8대왕 현종이 왕자시절 어머니 헌정왕후의 친언니였던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본인을 지켜준 진관대사의 공을 기려 1009년전인 1011년에 창건했답니다. 입구의 하마비는 조선 세조가 한양 인근 4방에 정한 윈찰의 하나(동 불암, 남 삼막, 서 진관, 북 승가)로서 위엄을 드러냅니다. 세종대왕 시절 집현전 학사들의 은밀한 한글 연구도 이 곳에서 진행되었답니다. 2009년 칠성각을 해체복원 하는데, 독립운동가였던 백초월 스님이 숨겨 둔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글 그리고 독립운동...! 광복 75주년을 하루 지난 오늘, 진관사의 탐방은 그 의미가 새롭습니다. 일주문 초입에 종교를 넘어서 "마음의 정원"이라는 글이 피아 구분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바세계와 격이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해탈문 주변으로 이어지는 풍광은 "아하...! 여기가 룸비니 동산이고 마음의 정원이로구나"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고 절로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홍제루로 누하진입해서 만난 대웅전 마당은 정갈한 잔디밭으로 정돈되어 있고, 북한산 자락을 배경으로 한 ㅁ자 형태의 전각배치는 마음을 포근하게 합니다. 한국전쟁중 모든 전각이 소실된 아픔이 있어서 인지, 삼존불을 모신 대웅전 현판과 용머리, 내부 천장에 '용'이 훨훨 날고 있습니다. 백초월 스님의 흔적이 있는 칠성각은 치성드리는 보살님이 계셔서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칠성각 옆 자그마한 바위 겉으로 모습을 나투신 약사여래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하고 계신 모습인데, 마치 '엄마손은 약손'하시는 것처럼 따스한 느낌으로 중생의 병고를 걷어주실 듯합니다. 사찰음식 명장이신 계호 스님의 사찰답게 '나가원' 뒷편에서 오랜만의 햇볕을 즐기고 있는 장독의 군상이 장관입니다.
"솔바람이 차싹을 달인다"라는 뜻을 가진 '송풍자명'의 편액이 걸린 전통찻집에서 달콤 시원한 팥빙수로 땀을 식히고 나오는데, 들어갈 때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일일초(매일초)가 반겨줍니다.
꽃말은 "즐거운 추억,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정"입니다.
마음을 씻는 '세심교'를 건너, 개울옆 '백초월로'(데크길)를 한껏 느린 걸음으로 걸어 사바세계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점심을 해결한 한옥마을 인근의 '롱브레드'도 아주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