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는 호남정맥에서 빠져나온 변산지맥이 격포 바다를 바라보며 사방으로 뻗어 있는 곳이다. 변산반도 여행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변산 해안가에 둘러선 기암들. 장엄한 기운과 황홀한 운치가 더해져 이곳을 더할 나위 없는 절경으로 만든다. 변산반도 여행의 묘미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비록 이름은 가장자리에 있는 산을 뜻하지만 그 위엄만큼은 서해의 진주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삼면이 해안과 닿아있는 탓에 그대로 바다를 품은 형국이 되는 변산(邊山). 이 고장의 가장 큰 장점은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며 천의 얼굴을 선보인다는 것. 특히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무렵 낙조는 세상에 둘도 없는 풍경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해안 절경의 감동과 함께 내 삶에 장엄한 기운을 보태보면 어떨까? 전라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풍경과 깊이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곰소항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가까운 줄포항이 토사 때문에 수심이 낮아져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항구다. 항구 인근에는 국내에 몇 남지 않은 천일염전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옆으로 늘어선 10여 개의 허름한 소금창고에서 염전의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곰소항의 참맛을 느끼려면 항구 뒤쪽에 있는 젓갈시장에 들러보자. 가게마다 갈치속젓, 황석어젓, 토하젓 등 30여 가지의 다양한 젓갈들을 내놓고 파는데,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젓갈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서해안 청정 해역의 수산물, 미네랄 풍부한 곰소의 천일염, 거기다 부안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손맛까지 더했으니 그 맛이야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짭짤한 바다 내음에 여행의 설렘이 한층 더해졌다면 이번에는 백제의 천 년 고찰, 내소사로 향해본다. 절 초입의 일주문 어귀까지 족히 150세는 넘어 보이는 전나무들이 나들이객을 반기고 나선다. 이른 아침, 나무 그늘 짙게 드리운 길을 거닐다 보면 피톤치드의 맑은 향기가 온몸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들 정도.
변산반도 해안길(30번 국도)에서도 모항을 전후한 구간은 특히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뭍을 파고든 해안에 자리한 아담한 어촌 마을, 방파제 끝에 놓인 작은 등대가 더없이 아늑한 풍경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를 두고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속으로 들어와 있을’ 것이라 노래하기도 했다.
모항의 또 다른 매력은 변산반도의 장엄한 경관을 마주하고 누워 있는 갯벌에 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 갯벌은 드디어 그 진가를 드러내 보이는데, 게, 조개, 망둥어 등 다양한 갯벌 생물을 만나며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만끽해보는 것도 좋다. 갯벌 체험을 마치고 채석강으로 가는 길에는 ‘모항레저타운’에 들러보자.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모항해수욕장의 비경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인기 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궁항에 위치한 전라좌수영 세트장은 또 하나의 재미. 촬영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반추할 수 있다. 세트장이 있는 언덕에 서면 활처럼 휜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바로 잔잔한 자갈로 이루어진 몽돌해수욕장이다. 고풍스러운 조선시대 목조 건물과 함께 가지각색으로 반짝이는 몽돌 해변의 운치를 느끼며 오후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터.
변산 여행의 백미 채석강. 격포항 오른쪽의 닭이봉을 휘감고 격포해수욕장까지 이르는 기다란 해안 절벽이 바로 채석강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달 아래 노닐었다는 중국 ‘채석강’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이름 지어졌다는데, 해면에 깔린 암반의 영롱한 색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종이 낱장 같은 암반층이 차곡차곡 쌓여 이뤄진 퇴적암 절벽인 채석강은 7,000만 년 자연의 역사를 펼쳐보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에서 보던 지층과 습곡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체험 학습장이기도 하다. 마치 수만 권의 고서적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처럼 기묘하게 생긴 해안 절벽이 탄성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바닷물이 어루만져 다져놓은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절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에 감동이 배가된다. 채석강은 늦은 오후, 일몰 때가 되어서야 비밀스레 감춰뒀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과 노을, 파도가 빚어내는 삼중주가 자연의 속살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암회색 암반에 노을이 부딪혀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장엄한 모습을 보노라면 짐짓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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