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애쓰지 않는다. 거슬러 오르려고 무리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 강에 닿고 바다에 이른다. 물은 자연의 이치를 안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고, 사물은 각자의 법칙이 있음을 안다. 세상은 틀림이 아닌 다름의 모둠이다. 다르다고 따돌리지 마라. 어울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라. 함께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봐라. 나의 마음으로 너를 헤아려라. 세상의 다른 결을 인정해라 목수는 나무의 결을 안다. 결을 거스르지 않아야 무늬가 산다는 걸 안다. 대패는 결을 따라 움직인다. 결은 사물의 이치이자 본래의 모습이다. 타고난 고유성, 너와 다른 나만의 색깔이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다. 결은 일종의 DNA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소 잡는 백정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소 잡는 솜씨가 경지에 이른 백정에게 문혜왕이 물었다. “참으로 훌륭하다. 재주가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느냐.” 백정이 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그 도가 재주보다 앞섭니다. (중략) 소의 본래 몸을 따라 칼을 쓰므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을 건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를 건드리겠습니까.” 그는 또 능숙한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건 살을 자르기 때문이고,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건 뼈를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칼은 19년간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숫돌에 새로 간 듯 날이 서 있다고 했다. 역시 장자는 이야기꾼이다. 맛깔난 비유로 말하고자 하는 뜻을 짚어준다. 도(道)는 결국 결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을 인간 중심이라고 우길 때, 인간을 내 중심이라고 고집할 때 결이 어긋난다. 장자는 인간의 결만 고집하지 말고 세상의 결을 보라 한다. 내 결만 곱다 하지 말고, 너의 결도 살펴보라 한다. 최고 화술은 언변이 아닌 독심(讀心)이다 한비는 유세(遊說)가 어려운 건 앎이 얕기 때문도, 논리가 부실한 때문도, 용기가 부족한 때문도 아니라 했다. 진짜 어려운 건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상대가 왕이라도 된다면 유세는 목숨을 건 도박이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을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한비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일깨운다. 남의 의중을 헤아리면 절반은 성공이다. 이미 절반쯤 설득하고, 절반쯤 성사시킨 거다. 의중은 마음의 결이다. 헤아림은 그 결을 거스르지 않는 거다.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 그게 정상이다. 결이 모두 다른데 어찌 한마음이겠는가. 그릇이 큰 자는 세상의 결들을 두루 보고, 그릇이 작은 자는 자신의 결 하나로 만물을 재단한다. 성숙은 다름의 인정이다. 소는 다리가 네 개고, 닭은 두 개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지랑이는 위로 피어난다. 속도에 너무 매이지 마라 인(仁)을 묻는 궁중의 질문에 공자가 답했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바라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성경도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을 대하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으로 남을 헤아리는 혈구지도(?矩之道) 역시 ≪대학≫이 강조하는 덕목이다. 우리는 이 ‘처세의 황금률’을 거꾸로 적용한다. 내가 바르다고, 그러니 내게 맞추라고 한다. 약을 독으로 쓰고, 황금을 쇠붙이로 쓰는 격이다. 지켜야 할 때 공격하고, 떠나야 할 때 머무는 식이다. 먼 길은 쉬며 걸어라.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뛰면 그림자를 떨쳐낼 거로 생각했다. 한데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뜀박질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숨이 차도록 뛰다 죽었다. ≪장자≫ 어부 편에 나오는 얘기다. 속도에 매달린 그는 몰랐다. 그늘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절로 없어진다는 것을, 한숨 돌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을. 삶에는 속도가 필요하다. 한데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빠름도 속도지만 느림도 속도라는 사실을. 크면 만 길도 내어준다. 작으면 한 치도 다툰다. 그 한 치가 작은 자의 전부인 때문이다. |
출처: 국민건강보험 블로그「건강천사」 원문보기 글쓴이: 건강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