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미지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사상계』 179호, 1968.3)
[작품해설]
이 시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아침에 대한 근원적 본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박남수는 모든 사물의 원초적 세계로 돌아가, 그 본질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는 시작(詩作) 방법의 하나로 이미지를 중시했다. 그는 “감각적 체험과 관련 있는 모든 단어가 이미지가 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생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상력에 호소하도록 의도된 것이어야 한다.”라고 한 바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창작된 이 시는 결백한 서경적 조소성(彫塑性)에 의한 생생한 이미지로써 건상한 아침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미지의 신선한 감각은 이 시의 최대 장점이지만, 이 시는 가슴에서 나온 감흥(感興)의 시가 아닌, 두뇌로 쓰는 지적(知的)인 시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논리적이라거나 작품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 12행의 단연시인 이 시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으로 기·승·전·결의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2행의 첫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생성을, 어둠 속에 있던 ‘새’ · ‘돌’ · ‘꽃’이 아침이 되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는 어둠을, 이 시에서는 ‘낳고’ · ‘낳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온갖 물상’을 잉태하는 생명의 모태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그린다. 3~5행의 둘째 단락에서는 어둠이 아침과 자리를 바꾸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어둠의 소멸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굴복한다’는 표현은 어둠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다.
6~10행의 셋째 단락에서는 물상의 잔치를 노래한다. 밤새도록 어둠 속에서 ‘무거운 어깨’로 있던 물상들이 마침내 아침 햇살을 받음으로써 자연적 생의 율동을 회복한다. 더 나아가 의욕적인 삶의 움직임으로까지 확대된 건강한 모습을 회화적으로 나타낸다.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구절은 시각을 청각으로 전이시킨 공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이다.
11~12행의 넷째 단락은 아침의 신비로움을 ‘개벽’이라는 시어로 집약하여 시상을 을결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삼라만상이 아침 햇살이라는 생명수를 받아먹고 긴 잠에서 깨어나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린다. 이러한 아침의 생동감이 ‘아침이면/ 세상은 새벽을 한다’는 시행 속에 함축되오 있다. 시인은 이같이 생동감 넘치는 아침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형상화라기 위해 많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 시인은 이러한 아침에서 얻어진 밝고 신선한 느낌을 회화적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이미지스트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작가소개]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