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소나무)
법주사(法住寺) 소유.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4.5m이다.
1464년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2009년 11월 어느날 오후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광을 깊이 감추고 있는
충북 보은 속리산(俗離山 1058m)의 정이품송과 법주사를 다녀왔다.
아련한 전설을 안고 살아가는 정이품송과 속리산 깊은 계곡에 고요히 자리한
법주사를 25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찾았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은 안도하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법주사를 향하는 길목의 대밭....
원래의 경로를 악간 벗어나면 이렇게 평온한 산책로가 있다....
"생로병사"....법주사 진입로 산책로
법주사 맑은 계곡의 수면위를 떠 다니는 저 나뭇잎이 보이는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기 현상인가~~~
우리네 인간사에선 감히 흉내도 못내는 그런 청순한 아름다움이...
"물구나무 서기"~~~ 진입로에서...
'배꼽'...진입로에서..
전시때 총 맞은 흔적인 듯 아파했던 나무의 흔적이 아직도 역력~~
웃고있는 개 머리 형상의 법주사 입구 계곡의 큰 바위~~~
'어색한 동행'.....진입로에서
법주사 올라가는 계곡에서 한 폼 잡아보고~~~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 상< 法住寺 磨崖如來倚像>
법주사 경내 암석 절벽면에 부조된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으로
높이가 5m이며 신라시대의 삼화령 석조미륵불 의상과 함께
매우 희귀한 의상에 속하는작품이다.
마애여래의 상 옆의 비상하는 독수리를 닮은 법주사 경내의 큰 바위~~
세계에서 가장 큰 법주사 청동 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고 한다.
황금이 80kg이나 들어갔다고 하는데...우와~~
국보 제64호 법주사 석연지.
석연지(국보 64호)는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치고 있어 마치 연꽃이 구름 위에 둥둥 뜬 듯한
모습을 조식한 걸작품이다.
판내에는 보상화문이 조각되었다.
내부는 파서 물을 담게 되었고 연꽃을 이중으로 조각하여 전체가 하나의
연꽃송이 같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국보 제 55호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에 의신이 세웠고, 776년 병진이 중창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중 제일 높은 상륜까지 22.7m 나 된다.
법주사 초창기에 세워졌던 건물은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버렸고
선조 38년(1605)부터 인조 4년(1626)에 걸쳐 복구된 건물이다.
땅속으로 묻힌 월대와 각 면마다 있는 계단은 초창기의 모습 그대로이고
나머지 건물들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국보 제 65호 법주사 쌍사지 석등.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쌍사자 석등으로,
높이는 3.3m이다.
간주(竿柱)에 변화를 주어 특색을 발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8각 석등이다.
너무나도 이쁘고 귀여운 법주사 동자스님들~~
보물 제 1117호 법주사 희견보살상.
희견보살은 성불의 소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까지
아미타불 앞에 향로공양을 하는 보살로서 사람에게 백절불굴하는
강한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띠매듭과 옷자락이 무릎위에서 투박하게 처리되었으며
전체 높이 213cm로 신라시대에 조성(造成)한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희귀한 문화재이다.
사천왕 문
이 문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때에 처음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에 의해 다시 지었으며,
조선 인조 2년(1624)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주사 경내 구석진 곳에 버려진 듯 방치 된
어느 석 조각에서 이런 아름다운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물 제 915호 법주사 대웅보전.
조선중기 목조 불전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다.
내부의 불전에는 소조 비로자나 법신, 불신, 보신의 삼존불을 중앙의 불단에 모셔놓았는데 높이가 5.5미터에 달해 우리나라 좌불중에서는 가장 크다.
553년(신라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으며,
1624년(조선인조 2)에 벽암대사가 중건하였다
보물 제15호 법주사 사천왕 석등.
사천왕 석등은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던 때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고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세웠다고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높이는 3.9m이다.
석등은 상중하의 8각의 대석을 바르게 사용하였다.
법주사 범종각....
법주사의 아름다운 도솔천 벽화~~~
법주사 팔상전이 보이는 경내에서~~~
느낌이 참 좋죠^^
여기가 바로 2009년 11월 속리산 법주사 바로 앞 계곡의 모습이랍니다.....
법주사 입구 계곡의 또 다른 모습....
"어느 비구니의 천년 소원"
법주사 계곡에 아름아름 정성스럽게 누가, 언제
이렇게 많은 돌탑을 쌓았는지는 몰라도 그 소원 꼭 성취되리니~~
가을과 겨울의 두가지 색을 겸비한 법주사 계곡의
맑고 단아한 포~즈~~~~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뒤 돌아보니
일주문을 통과하여 법주사 경내로 향하는 호젓한 이런 길이~~
청정구역이 바로 이곳인 양 자연의 향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일주문....
여기서 법주사까지 걸어서 10여분 정도 소요~~~
주차장 어귀엔 이런 아름다운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오가는이의 발 길을 붙잡기도 하였다.....
속리산 법주사 그리고 정이품송~~
세상속의 발 닿는 즐거움과 문화재답사라는 명목아래
참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았지만 그 의연한 모습은
숱한 세월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꿋꿋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속리산 법주사 진입로 계곡에선
여느 사찰에서 느껴보지 못한 맑고 깨끗한 자연의 향을
너무나도 진하게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폐지되었지만
법주사에 문화재가 많아 아직은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입장료]
어른 - 3000원, 청소년 - 14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비수기]
승용차 - 4000원(경차 2000원), 버스 및 화물차 - 6000원
[교통안내]
1. 경부고속도로 - 청원JC - 당진상주고속도로 문의IC - 속리산IC -
상장교차로 좌회전 - 서원계곡, 삼가방향 - 삼가터널 지나 좌회전 -
정이품송 - 주차장 - 매표소 - 법주사
2. 청주 - 당진상주고속도로 문의IC - 속리산IC - 상장교차로 좌회전 -
서원계곡, 삼가방향 - 삼가터널 지나 좌회전 - 정이품송 - 주차장 -
매표소 - 법주사
3. 보은 - 통일탑삼거리 좌회전 - 말티재 - 정이품송 - 주차장 - 매표소 - 법주사
첫댓글 사진 잘보고 갑니다.. 주말마다 여행다녀오시네요 ㅋㅋ
^^~~ㅎㅎㅎ 저는 특별하게 주말마다 여행 계획을 세우진 않아요..그러나 주말이 되면 여러가지 일들도 생기고 지방에 볼일도 있으면 꼭 한두군데 이렇게 들렀다 오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게 여행 다니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어요^^ 감사합니다~~평온한 주말 하세요~~
오랜만에 본 법주사....문장대에서 고교친구들과 침좀 밷던 추억이 나네요.ㅋㅋ
ㅎㅎㅎ 침 씩이나요^^,,,,쟈철님 행복한 주말 하세요^^
요즘은 어딜가나 입장료.... 아이~~ 짜증스러워요 ㅋㅋ
ㅋㅋㅋㅋ 마자요..그거이 장난이 아니죠^^....ㅎㅎㅎㅎ
속리산 문장대 법주사 - 거닐기에 썩 괜찮은 오솔길과 기분좋은 사찰이었던 기억...오래전에 다녀왔어요 다시 가보고 싶네요 ^^
네...그랬군요^^..아름다운 숲을 소유한 오솔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