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성의 역사와 유래
고구려와 백제 건국 신화 속 문학산
[한국아트뉴스=어랑] 문학산성의 역사는 고대 삼국시대의 전설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에게는 부인 소서노와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있었다.
그러나 주몽의 첫째 아들인 유리왕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리는 결국 고구려의 태자가 되었고, 뒤이어 고구려 2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에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 남하 과정은 훗날 백제 건국의 시작이 되었다.
비류와 미추홀, 그리고 문학산성
형인 비류는 바닷가 지역인 미추홀을 선택하였다.
오늘날 인천 일대로 알려진 미추홀은 당시 바다와 강이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였다.
전설에 따르면 비류는 이곳에 터를 잡고 문학산 일대에 산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문학산성의 기원으로 이야기된다.
문학산은 해발은 높지 않지만 인천 앞바다와 한강 하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고대 국가들이 군사적 거점으로 삼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미추홀은 바닷물이 짜고 땅이 습해 생활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비류 세력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후 온조가 세운 나라와 통합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온조와 위례성
동생 온조는 한강 유역의 위례성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
위례성은 현재 서울 송파구 일대 풍납토성·몽촌토성 지역으로 추정된다.
온조는 풍부한 물과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국가를 발전시켰고,
훗날 이것이 백제로 성장하게 된다.
결국 백제의 중심은 온조 계열로 이어졌으며, 비류와 미추홀의 이야기는 인천 지역 건국 설화로 남게 되었다.
문학산의 이름 유래
문학산 217 m은 옛 이름으로 “미추홀산”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문학산”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문학(文鶴)’이라는 이름에는
학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명산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산세가 수려하고 선비 문화와 관련이 깊어 문학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국가 통신망 역할도 수행하였다.
서해안의 긴급 상황이나 외적의 침입 소식을 한양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군사 시설이었다.
현재의 문학산성
오늘날의 문학산성은 일부 성곽 흔적과 봉수대가 남아 있으며,
인천 시민들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탐방지이자 산행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문학산 정상에 오르면
인천항과 서해바다, 송도국제도시, 한강 하류까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문학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건국 신화, 미추홀의 역사, 그리고 인천의 뿌리가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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