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도 끝도 없는 길 *
아귀의 몸을 받은 상좌
/ 일타큰스님
옛날, 어떤 스님이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깊은 산속 암자에서 상좌와 단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마음씨가 너그러운데다 상좌가 너무나 귀여워,
무엇이든 상좌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스님, 이렇게 할까요?"
"오냐. 네 마음대로 하여라."
"스님, 저렇게 할까요?"
"오냐. 네 마음대로 하여라."
어떤 짓을 하든 야단은 커녕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니
상좌의 버르장머리는 점점 더 없어졌습니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준비하다가도 맛있고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훌떡 집어먹어 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날도 상좌는 부처님께 올릴 두부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두부를 두툼하게 썰어서 지지다가, 어찌나 맛이 있어 보이는지 한덩이를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때 스님이 불쑥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상좌는 입에 들은 두부를 씹을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이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금방 지진 뜨끈뜨끈한 두부를 덩어리째 삼켜버렸으니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좌는 그만 병이 들어 얼마동안 앓다가 죽어버렸습니다.
"내가 박복해서 상좌가 먼저 죽었구나."
탄식을 하면서 상좌를 묻은 스님은 바랑을 짊어지고 그 암자를 떠났습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이 절 저 절을 떠돌아다니다가 그 암자 앞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안으로 들어가보니 절 마당에는 쑥대만 가득하고
암자는 거의 다 허물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상좌의 모습이 선하여 눈을 지그시 감고 상좌의 이름을 한번 불러보았습니다.
"어험, 아무개 있느냐?"
"예, 스님 이제 오십니까?"
머리끝이 쭈뻣해진 스님이 눈을 뜨고 보니,
틀림없는 상좌가 가사자락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스님.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 제가 스님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십니까?
어서 방으로 드십시오. 얼른 점심 진지상을 대령하겠습니다."
상좌의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간 스님은 잠시 후, 방안을 둘러보다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10년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엌으로 나가 안을 훔쳐보았습니다.
상좌는 키득키득 웃으며 부엌 안을 왔다갔다하더니
녹이 벌겋게 슬은 솥뚜껑을 열어 입을 딱 벌리고 '으아아악' 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상좌의 입에서 그동안 훔쳐먹었던 것들이 와락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것들이 솥에 가득 차자 뚜껑을 덮고는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입김을 확 부니
뻘건 불이 나와 금방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놀란 스님은 숨을 죽이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번에는 상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것 한 그릇 먹으면 제놈이 안 죽고 배겨?"
"아하, 내가 아귀(餓鬼) 귀신에게 끌려 들어왔구나."
스님은 바랑을 챙길 여가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었습니다.
부엌에서 나온 상좌는 스님이 없어진 것을 알고 뒤를 쫒았습니다.
스님이 얼마쯤 달아나다 뒤를 돌아보니 머리가 시뻘건 아귀귀신이
뒷덜미를 잡을락말락 쫒아오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산문 밖으로 나오니, 아귀귀신은 자기의 사는 영역 밖이라
더이상 따라오지 못하고 문앞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스님. 저는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갔다가는 다른 아귀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말해 보아라."
"제가 이렇게 아귀귀신이 된 것은 다 스님 때문입니다.
애시당초 스님께서는 저를 야단쳐서 가르치시지는 않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제 맘대로 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죄를 많이 지어 이렇게 아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도량에 가시거든 저를 위해 천도재를 올려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오냐, 알았다. 내가 잘못해서 네가 그렇게 되었으니 네 소원대로 해주겠다.
그러니 삼보(三寶)를 염하고 있거라."
스님은 약속대로 탁발을 하여 공부하는 스님네가 있는 절로 가서 대중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상좌를 위해 재를 정성껏 올려 천도를 해주었습니다.
철저한 가르침에 철저한 배움. 이것은 절집안 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지침입니다.
업(業)을 맺느냐 푸느냐는 나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을 앞세워 그릇됨까지 감싸주면 그것이 서로에게 불행을 안겨주게 됩니다.
매사에 한 생각을 바르게 가져서, 맺힌 업을 풀고 푼 업을 더욱 원만하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 " 일타큰스님의< '윤회와 인연이야기 모음집' >중에서
첫댓글 ()()()
()()()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