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류시화
행성의 북반구에서 절반의 생을 보냈다
곧 일생이 될 것이다
서른 살 이후 자살을 시도한 적 없다. 아 불온한 삶
사랑은 언제나 벼랑에 서 있었다
나를 만난 사람은 다 떠나갔다
가족력은 방랑이었다
아버지는 농부였으나 자식은 몇 대 위
유목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새벽부터 길 나서 부지런히 걸었지만 아직 이만큼밖에 오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계속해서 가면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것이
밑도 끝도 없는 사상이었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고, 정신이 자주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었으므로
그 생은 아직 유효하다
적들이 사라진 세상
그래서 모두가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세상을 떠나
갠지스 강가에 앉아 있곤 했다
모국어의 영토에 산수유 피었는가 그려보면서
화장터 불빛 바라보며 삼십 대와 사십 대를 보냈다
고통 받은 것은 이질감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의 이물감이었다
밀교를 믿고 성직자보다는 샤먼을 믿고
연어의 회귀를 믿는다
사랑이 끝난 것을 믿고, 그럼에도 사랑보다 오래가는 것은 없음을 믿는다
배추흰나비가 우주와 교감한다는 것을 믿고
그대신 정치인이 된 혁명가들을 믿지 않는다
자주 기다린다 시를
단어들의 번쩍이는 비늘을
까맣고 까만 밤의 바다에서
집어등集語燈을 켜고
파도 속에 등 푸른 물고기 떼처럼 밀려오는
시어詩魚(poetic fish)들 상상하며
멀리 돌을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
던진 손을 떠나
돌 하나가 자신의 전부를 다해 날아가는 것을
무엇을 일별하고 떠날 줄 모르지만
죽으면 가벼운 운구가 되기를 바란다. 아 부박한 삶
누구의 어깨에도 짐이 되지 않기를
다만 적멸에 들기를
겨울에 목련의 봉오리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안에 접혀져 있는 흰 꽃들을
어둠이 오면 목련들이 저의 방에서 불을 켜는 것을
이 세상 모든 비유와 상징들을 한 곳에 모은다 해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불가사의한 부재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