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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봄이 돼서 그런지 식탁에 냉이국이 자주 올라온다. 삼삼하게 된장을 풀어낸 냉이국은 맛도 좋고 속도 편하다. 식감이 부드러운 냉이나물 무침도 별미다. 냉이는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전령사 같다. 아니 봄을 건강하게 지내라는 보약 같다.
냉이는 초기 한글 표기로 나이 또는 낭이 등의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투리로 나생이 또는 나숭개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제채(薺菜)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사방 곳곳에서[濟濟] 자란다고 해서 제(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생긴 모양이 사방으로 가지런한 모양으로 자라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제(齊)에는 ‘같다, 가지런하다. 똑같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냉이는 십자화과에 속한 냉이속 식물로 땅에 붙어서 옆으로 펼쳐서 자란다. 비슷한 모양의 식물로는 국화과인 씀바귀, 민들레와 지칭개 등이 있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땅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지기(地氣)를 품고 있어 진정작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과는 달라도 이들 식물은 공통적으로 어혈을 제거하고 소염작용을 하며 간 해독에 좋다.
냉이의 약성은 따뜻하다. <본초강목>에는 ‘냉이는 맛이 달고 성질은 따뜻하고 독은 없다’고 했다. 최근 간행된 서적에는 성질이 냉(冷)하다고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의서에는 성질이 따뜻하다고 기록돼 있다.
냉이는 오장(五臟)을 보한다. <식료본초>에는 ‘오장의 부족함을 보한다’고 했다. <본초정화>에는 ‘속을 조화롭게 하고 오장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이에 중국에서는 냉이국을 백세를 살게 한다고 해서 백세갱(百歲羹)이라고도 불렀다. 갱(羹) 자는 국을 의미하는 한자어다. 냉이는 채소인데도 단백질은 물론 비타민(A, B 등), 미네랄(칼슘이나 철분 등)이 풍부해 봄철 피로 해소에도 좋다.
냉이는 눈을 밝게 한다. <본초정화>에는 ‘냉이죽은 눈을 밝게 하고 간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또 <의방합편>에는 ‘옛날 채서산이란 사람은 글을 읽을 때 항상 냉이를 씹어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본서에는 배고픔의 해결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굳이 냉이를 선택한 이유는 아마 시력을 보호하려는 속 깊은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한의학에서 눈은 간과 상통한다. 많은 한의서에서 냉이가 ‘간기(肝氣)를 통하게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냉이에는 콜린이 풍부해 간 해독에도 좋다.
<별초단방>에는 ‘냉이씨는 주로 간기(肝氣)가 막힌 것을 치료하고 눈을 맑게 한다.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고 또 어린뿌리와 같이 쌀죽을 끓여 복용하면 피를 간으로 이끌 수 있다’고 했다. 눈을 밝게 하는 데는 특히 냉이씨가 좋다. <본초강목>에는 ‘냉이씨는 눈을 밝게 하고 눈이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중략) 오래 복용하면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냉이씨를 제자(薺子) 또는 석명자(菥蓂子)라고 한다. 석명자라는 이름을 보면 눈이 어두운 증상[명(冥)]을 끊는다[석(析)]는 의미가 있다. 눈이 침침할 때 특히 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물본초>에는 절명자(䓆蓂子)라고 했는데 역시 절(折)에도 ‘끊다, 부러뜨리다’라는 의미가 있다. 만일 냉이씨가 없다면 냉이 자체만으로도 줄기와 잎, 뿌리를 함께 죽으로 쑤어 먹어도 좋겠다. 일명 냉이죽인 제채죽(薺菜粥)이다.
냉이는 피로 해소는 물론 눈이 침침한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 좋고 장염이나 염증성장질환에 의한 설사에도 도움이 된다. 그야말로 봄 보약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냉이는 눈병에 점안제로도 사용했다. 냉이 뿌리를 제채근(薺菜根)이라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냉이뿌리는 눈병을 치료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갑자기 눈에 충혈이 생기고 아프고 튀어나오려 하면서 눈알에 모래가 끼인 듯 껄끄러운 증상에는 냉이 잎과 뿌리를 찧어 낸 즙을 점안해준다’고 했다. 요즘이야 안전하고 효과적인 안약이 많으니 그냥 과거 민간요법으로 사용했다는 정도로 알아두면 좋겠다.
냉이는 장염으로 인한 설사를 치료한다. <동의보감>에는 ‘적백리(赤白痢)에 주로 쓴다. 뿌리와 잎을 태운 재를 가루 내어 미음에 타서 먹으면 효과가 아주 좋다’고 했다. 적백리란 식중독이나 장염으로 인한 혈변[적(赤)]이나 점액변[백(白)] 등을 동반한 급성설사를 말한다. 일부 문헌에는 생강과 함께 달여 먹거나 꿀물에 타서 먹으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일부 한약재 중에는 설사나 장출혈, 자궁출혈 등에 초(炒) 또는 초탄(炒炭)이라고 해서 냉이를 태워 넣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냉이를 태워 재를 내지 않더라도 냉이는 그 자체로 장 건강에 좋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도 좋고 염증성장질환에 의한 설사에도 도움이 된다.
냉이는 과거 복용법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먼 옛날 냉이줄기는 등불에 불을 붙이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냉이 줄기 끝에 불을 붙여 등불 심지에 불을 이어주는 막대[도등장(挑燈杖)]로 사용하는데 개미나 나방을 쫓을 수 있으므로 호생초(護生草)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등장(挑燈杖)은 등잔의 심지에 불을 붙이거나 심지를 돋우어 불을 더 밝게 하는데 사용되는 막대다. <의본>에는 등불을 켜는 법으로 ‘냉이대를 응달에서 말려 등장(燈杖)을 만들면 모든 벌레가 영영 등잔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냉이꽃도 벌레를 쫓는 용도로 사용됐다. <의종손익>에는 ‘냉이꽃으로 침상 밑을 비비면 좀이 없어진다’고 했다. 또 <본초강목>에는 ‘냉이꽃을 돗자리의 아래에 두면 벌레를 물리친다. 또한 모기와 나방을 쫓아낸다’고 했다. 요즘 사용하는 태우는 모기향은 원재료 식물로 국화과인 제충국을 기피제로 주로 사용하는데 냉이도 활용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조선초기의 <사가집>에 기록된 냉이[薺]를 찬미한 한시 한 편을 소개한다.
해석해보면 ‘먹을 고기라고는 원래 없지만 / 봄 부뚜막의 냉이가 향기롭네 / 국에 넣어 끓이면 아주 맛나고 / 밥이 더 먹혀 속도 든든하구려 / 보드랍기론 어찌 꼭 타락뿐이랴 / 달기는 엿보다 훨씬 낫네 / 손님이 오거든 내 자랑하고 싶어라 / 이게 바로 제일가는 고량진미라고’ 하는 시다. 조상들은 냉이만으로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겼다.
올 들녘에 냉이는 얼마나 빨리 싹을 틔웠을까. <산림경제>에는 매년 일곱 가지 채소를 심었다가 이듬해 봄철 가장 먼저 나오는 채소로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한다. 그중 냉이가 먼저 나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만일 냉이가 먼저 나왔다면 앞다퉈 캐 먹어보자. 우리 몸에도 건강한 풍년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