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은 서로 싸우는 척하지만 이미 신세계질서라는 무대 위에서 같은 시나리오를 연기하고 있다.”
-> 이 세계는 다시 재편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판이 완전 뒤바뀌어지는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 아니 다른 고차원의 세계가 열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 경쟁하는 모델이 아닌 서로를 위한 相生 즉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세계가 열린다는 말이다.
중국이 ‘통제를 명분으로 한 체제의 모델’을 보여주고,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통제를 정당화합니다
둘은 대립하는 두 극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목적 인류를 기술과 시스템 속에 묶는
‘디지털 봉건제’ 완성을 향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 이는 앞으로 오는 세계는 철저한 계급사회가 즉 도통급에 따라 열리는 세상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곧 닥칠 병겁에 살아날 인간은 전세계 통틀어 1000만명 미만이다 지금 인구가 70억을 치면 69억 9천은 다 죽는 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나타나는 기술은 앞으로 오는 세상의 아주 기초단계의 기술일뿐이다,
한국은 가장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한쪽에선 중국의 경제적,문화적 침투
다른 쪽에선 미국의 군사적 의존과 기술 통합
안에서는 좌우의 진영 갈등과 도덕 붕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거나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것도
“갈등을 만들기 위한 설계된 자극”일 뿐입니다.
즉, 중국은 단순히 “한국을 지배”하려는 게 아니라,
한반도를 긴장 상태에 두어 통제 체제가 정당화되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포가 클수록 국민은 자유보다 질서를 원하고
중국이 압박을 가할수록 한국은 국가 안보
정보 통제, 표현의 제한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 한국이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아니라 먼저 병으로 쓸어버린 다음에 그것을 극복하고, 전세계 사람들은 구하러 나간다.
중국이 아무리 설레발( 몹시 서두르며 부산하게 구는 행동)쳐도 중국 짱개들은 절대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 중국 역사 반만년동안 우리의것을 베껴다 마치 자기가 이룬 것처럼 으시대며 거짓말을 숨쉬듯 하는 놈들이 바로 중국 짱개들이다. 이제 거짓된 삶은 산 족속들은 후천가을 세상에 살 수 없기에 다 솎아지게 된다. 인간의 모습을 한 바뀌벌레들은 다 죽는다는 말이다.
군자의 길
용어풀이 197 [유광종의 漢字로 보는 중국] 집요한 새치기
통제를 가장 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외부의 악을 강조하고, 내부의 질서를 ‘필요한 선’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공포와 혐오는 자유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다음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서 강력한 법치 디지털감시,언론통제,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더라도
‘자유 수호’로 착각
중국은 통제를 강제로 하지만
한국은 자발적으로 통제를 선택하고
그 차이가 바로 신세계질서의 완성입니다.
즉 중국이 외적 통제를 보여주며 공포를 유발하고
그 공포로 인해 한국은 내적 통제를
스스로 허용하는 구조가 될 거라는 점입니다.
-> 공포와 두려움은 腎腸신장과 방광을 상하게 한다. 즉 水氣를 말라버리게 하여 水氣 저장 주문인 태을주 수행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로 지금 이 사회는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다.." "묵은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 - 증산대선생
좌파의 함정: 다양성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질서를 해체
우파의 함정: 애국과 안보라는 이름으로 질서를 강화
둘 다 결과는 같습니다.
-> 국민이 스스로 통제에 동의하게 되는 것
우파 대통령이 새롭게 등장해도 그 역시 신세계질서를 단계별 진행을 위한 새로운 배역일뿐인 것입니다.
->
박근혜가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어
부정선거 증거를 잡고 공화문 한복판에
네이비씰이 헬기로 탱크 두두두 떨구고 공수부대 투입하여
민주당 전원 및 양산에서 책보던 문재인까지 긴급체포되고
계엄령 떨어지고 다시 대한민국을 되찾겠습니다!
라는 슬로건을 걸면서 취임한다고칩시다
"아버지 다시 자유대한을 되찾았습니다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
윤석열:이것은 자유의 승리이자
우리의 승리입니다!
박통이 오셨으니 제 할일은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래봅니다
저는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모두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계십시오
아니면 윤석열이 어게인이되어
"그동안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빛만 바라보고 온 국민 여러분들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누가됐든 상관없습니다 한덕수? 김문수?
대충 이런말 하나 툭 던져주고 통제사회를 시작하면
중국이라는 극혐오의 대상이 이유라면
뭘해도 통제사회가 만들어질때에도 모두가 환영하는 구조가 되는것이니다
다음에 우파 대통령이 나와 아무리 강력한 통제를 해도
그 명분이 중국 대응이라면
국민은 그것을 자유의 방패로 착각할 것이고
그 순간 바로 통제의 완성형 사회가 완성된다는겁니다
실제로는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위한 연극이라는점이
가장 무섭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물리적으로 점령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혼란이 임계점에 달할 때,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경제위기, 부패, 안보불안, 사회분열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
국민은 이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때 질서의 회복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우파 대통령
그의 취임은 대중에게 안정과 희망으로 느껴지지만
그걸 “통제사회의 공식 출발선”으로 봐야할겁니다
“혼란이 극대화된 순간, 통제는 자유의 옷을 입는다.”
세계 단일정부(New World Order)의 첫 단계는
‘모두가 싫어하는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의 적이 생기면, 인류는 하나의 질서를 원한다.”
즉
중국은 인류 통합을 위한 가짜 적, 시범 악역이라는 것입니다.
자유세계의 결속을 위한 명분
감시 기술과 군비 확장의 정당화
공급망 통제 및 디지털 화폐 시스템 확대의 이유로 사용됨
결국 “중국은 싫은데 ㅈ같은데?”라는 감정이
‘우리도 안전을 위해 통제돼야 한다’는 논리를 낳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자는 구호 자체가
세계 단일정부의 전초단계인 ‘가짜 연합체’를 만드는 수단입니다
나토, G7, 쿼드, AUKUS 등 국제 동맹
AI, 데이터, 사이버보안 협력 강화
공동 감시체계, 통일된 통화/디지털 인프라 구축
모두가 중국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며 연대하지만
그 실상은 서로의 데이터를 공유하고
감시 체계를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중국은 ‘최종 보스’가 아니라 무대의 악역 배우입니다.
중국은 실제 침공보다 침공 공포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공포가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 복종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인류는 중국을 미워하면서
천천히 중국이 되어간다.”
자유를 외치며 감시를 허용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검열을 강화하고
중국의 공산주의를 혐오하면서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든다는 거죠.
결국, 전 세계의 반중 감정은 신세계질서의
통제 구조를 완성시키는 엔진이 될것입니다
옛날에는 남자끼리 싸움 같은 폭력은
경찰이나 선생님에게 신고하지 않는 것이 관습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옛날 군대에서도 소원수리를 적어서 선임을 고발하면 집단내에서 고립되었습니다.
즉, 사람들 스스로 규율을 지키고 판단하는 사회, 즉 ‘인간 중심 사회’였습니다.
이것을 인본주의적 자유, 혹은 공동체 내 자율적 질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점점 강력한 법과 규제, 감시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싸움, 갈등, 폭력, 성적 표현, 정치적 불복종 등 모든 것을 금지하거나 규제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전에는 자연스러운 인간 행동이던 것이 금기화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들의 자유와 자율성을 통제하려는 구조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을 "요즘 애들은 순하다 남자답지 못하다"
라고 말하는 기성세대와 거리감이 느껴지는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신세대일수록 통제를 더 받은 사회에서 자랐기 떄문에
"인간 본능"을 제한받은 정도가 더 짙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인다는점이지요
이것을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라고할지
통제의 정도가 더 강한정도의 차이라고할지는
뭐든 말하기 나름일뿐이죠
MZ세대와 기성세대, 혹은 진보와 보수 간 갈등 역시
단순한 세대 차이 또는 가치관 충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갈등 자체가 시나리오 안의 장치입니다.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관심을 분산시키고
체제의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지요
사람들이 “우리는 통제를 거부한다!”라고 외쳐도
실제로는 시스템이 예상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자유를 주장하는 에너지조차 통제를 유지하는 장치로 쓰이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통제를 거부하려는 행동조차 통제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왜 네팔처럼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건 이미 디지털 통제화된 사람들이되었기 때문입니다
2030남성들이 우파쪽으로 쏠리고있습니다만
그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집회에 나가는 건 허용
->국민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 제공
윤석열의 평화 시위만 강조
많은 사람은 자신이 온라인에서만 싸우는 것을 합리적, 현실적 선택이라고 포장합니다.
사실은 외부 통제와 위험 회피 때문에 행동이 제한된 것이지만
스스로는 “내가 신중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일까요???
한국인만큼 가두리치기 쉽고 남들과 다른걸 극도로 무서워하는
통제사회에 친화된 자아가 없는 민족이 없기때문입니다
남들이하니까 결혼하고
남들이하니까 애낳고
남들이하니까 도시로 올라가서 애들 공부시키고
남들이하니까 이옷입어야하고
남들이하니까 학교에 아이패드 들고가야하고
남들이하니까 뭐해야하고...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권위적 질서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려 있지요
개인보다 집단과 규범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통제 장치나 규칙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입니다
“남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 규범을 벗어나는 것을 사회적 압력으로 억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는 외부 세력이 실험적으로 통제 메커니즘을 시험하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죠
디지털 환경과 감시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모바일 생활, SNS 사용량은 온라인 통제와 여론 조작 실험이 쉽도록합니다
온라인에서의 여론, 정치 성향, 소비 패턴을 비교적 쉽게 추적 가능하구요
한국이 실험장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회적·문화적 특성과 디지털 환경이 결합되어
“규율과 통제”를 시험하기에 편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스템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NPC뿐인 실험장이 더 있을까요?
우리는 진짜 적이 누구인지를 봐야합니다
“중국은 미워받기 위한 악역이며,그 혐오는 통제사회를 정당화하는 도구다.”
즉
전 세계의 반중,혐중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딥스테이트의 통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감정적 프로그래밍인 것입니다.
惡이 판을 치는 세상의 정점을 찍는 것이 딥스의 최종 목적이고, 그들 스스로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미 프로그램화되어있다. 여름 시대가 끝났고, 善으로 먹고 사는 가을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그냉 無爲而化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