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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4 프랑스 폴 베르렌느 「지혜시집」
참다운 신앙ㆍ회심드러낸 서정시의 걸작
올바른 생활위한 삶속의 「지혜」 간구
선ㆍ악 사이 인간적 갈등 묘사 뛰어나
프랑스 상징주의 3대시인… 주옥 같은 종교시 탄생시켜
폴 베르렌느(Paul Verlaine)는 말라르메(Mallarme) 렝보(Rimbaud)와 더불어 프랑스 상징주의의 3대시인 중 하나이다. 세 시인 모두 근대시의 아버지격인 보들레르 (Baudelaire)의 제자로서 베르렌느도 보들레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르렌느는 누구보다도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서정시인으로서-특히 후기에는 가톨릭 서정시인으로서-전통적인 운율을 깨고 기수음절(奇數音範)의 시행을 교묘하게 구사하여 새로운 운율(韻律)과 음악적인 효과를 창조했다.
베르렌느는 1974년 자기제자 시인인 샤틀르 모리스(Charles Morice)가 자기에게 시의 미학(美學)을 문의했을때 그 응답으로 쓴 시 「시법(1' Art Poetique)」에서 음악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무엇보다도 음악성을/그러기 위하여 기수음절의 시를 택하라 … /아직도 언제나 음악성을…』
이 시의 두 구절(무엇보다도 음악성을/아직도 언제나 음악성을)을 외치면서 젊은 상주의 시인들이 상징주의 운동의 구호로 삼았다.
베르렌느는 시의 소재(素材)에서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우수ㆍ우울한(Saturnien)」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을 보들레르는 우수(Ie spleen)라고 했고 말라르메는 권태(I'en nuㆍie)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의 우수는 인간의 원죄(原罪)때문에 생긴 것이며 이들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베르렌느의 첫 시집이「우수시집(Poemes saturniens)」(1866)인바 이 시집의 표제는 바로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시집에 유명한 다음시「가을의 노래(Ia Chaㆍnson d'automne)」가 수록되어 있다. 「가을날/바이올린의/긴 흐느낌은/단조로운 가락으로/내 마음을 상하게 하네…」
베르렌느의 인생과 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세 번의 만남이 있다. 우선 자기 부인 마틸드 모테(Mathilde Maute)와의 만남이요, 마지막으로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하느님과 만남으로써 그는 다시 가톨릭 신앙으로 회두(回頭)하게 된다.
베르렌느는 자기 친구의 여동생인 16세의 마틸드 모테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어 그의 우울증은 깨끗이 낫게 된다. 그녀와의 약혼기념으로 발표한 시집이「기쁜 노래(Ia Bonne Chanson)」(1670)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순수한 사랑과 정열을 묘사했으며, 안정되고 평화로운 감정을 잘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1871년 9월에 그는 렝보를 알게 된다. 이 천재시인은 삽시간에 베르렌느를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혼생활을 파탕으로 이끈다. 그는 렝보와 함께 방랑생활을 계속하기 위하여 자기 부인과 별거한다. 1872년 7월 파리를 떠나 벨기에와 영국으로 가서 방랑생활을 한다.
베르렌느는 자기보다 10세 아래인 렝보에게 자기 가정생활을 희생하면서 모든 것을 바쳤으나 렝보는 자기 재능과 시간을 잠시 제공한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와 함께 하던 음주(飮酒)와 방랑생활은 언젠가는 청산해야 할 모험이었다.
1973년 7월 브뤼셀의 어떤 호텔에서 베르렌느는 자기를 떠나려는 렝보와 다투다가, 술에 취한 나머지 권총 두 발을 렝보에게 쏘아 손에 가벼운 상처를 입힌다. 그는 2년간 복역하는 유죄 선고를 받고 브뤼셀의 감옥에 3개월 있다가 몽스(Mons) 형무소로 이송된다.
그는 감옥에서 자기 부인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심적으로 몹시 동요하며 다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 그는 소년시절에 가톨릭 신앙을 버린 이후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가톨릭교를 증오하면서 하느님과 등지고 만다.
베르렌느는 형무소에 들어가는 그날부터 시를 쓴다. 그는 형무소에서 1874년에 시집「가사없는 연가 (Romancessans paroles)」를 발표한다. 이 시집은 렝보와 함께 한 방랑생활을 소재로 썼기 때문에 렝보의 영향에 영국 색채가 가미된 작품이다. 자기 부인과 헤어지면서 느낀 쓰라린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시집에서 그의 침울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거리에 비가 오듯/내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내 가슴에 스며드는/이 셀레임은 무엇일까?』
또한 형무소에서 우리가 고찰하려는「지혜시집(Sagesse)」의 일부를 쓰게 된다. 이 시집의 다른 일부는 출옥한 후 7년간에 걸쳐 써서 1881년에 발표했다. 그는 감옥에서 쓴 시들을「독방의 감옥(Ce IIulairement)」이란 이름을 붙였다가 후에「지혜시집」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전 작품을 통하여 그는 같은 어조와 심정으로 묘사했다.
베르렌느는 감옥에서 과거의 방탕생활을 참회하고, 자기 부인에게 용서를 청하는 내용의 글을 써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할 것을 호소했으나, 자기 부인은 거절하고 법적으로 이혼수속을 마친다.
부인의 이혼소식은 그를 하느님 품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그는 의지할 사람 없이는 혼자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나약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신앙적인 회심(回心)이 이루어진다.
그는 감옥에서 자기의 비참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뼈저리게 후회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감방에서의 고뇌와 고통이 그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르렌느의 옥중수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그 때에 무엇이 또 누가 갑자기 나를 잠에서 깨워 잠자리에서 뛰쳐나오게 하고 옷을 입을 겨를도 없이 벽위에 걸린 예수님의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는 곧 고백신부를 오도록 간청하여 그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다시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고백신부에게 고백성사를 보고 사죄(赦罪)는 되었으나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사면(赦免)은 받지 못했다』라고 그는 기록했다. 그를 십자고상 앞에 무릎끓게 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섭리일 것이다.
「지혜시집」은 베르렌느가 가톨릭으로 희두한 후 경건한 신앙심과 과거를 참회하는 심정이 잘 묘사된 가톨릭 서정시의 걸작품이다. 이 시집은 프랑스 종교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몇편의 시를 탄생시켰다.
그는 과거에 대한 참회를「지붕 위에 하늘이 있다 (Leciel est par-dessus le toit)」에 잘 묘사했다. 자기 부인에게 용서를 청하는 내용으로「다정한 노래를 들어다오(Ecoutez la chanson biendouce)」의 시를 썼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심을 「하느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Mon dieu ma dit…)」에서 표현했다.
「지혜시집」에서 베르렌느는 자기 과거를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겸허하게 참다운 신앙심과 삶의 「지혜(sagesse)」를 추구했다.
그는 교만한 증오와 육욕의 음성을 거부하고 하느님 사랑에 순종했다.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에게 자신을 의탁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에 심취하여 앞으로 올바른 생활을 할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는 뜻에서「지혜시집」이란 표제를 붙였다.
이 시집은 3부로 되어있다. 제1부에서는 베르렌느의 마음속에서 투쟁하는 선과 악의 갈등, 제2부에서는 신앙심을 토로하는 아름다운 기도, 제3부에서는 종교에 관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소재로 하고있다.
그는 이 시집 서문에서 자신이「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회두했으니 앞으로는 옛날의 그릇된 버릇을 일삼지 않겠으며 죄인들의 지긋지긋하고 가증스러운 품행에서-과거에는 비록 자신이 그러긴 했지만-벗어나겠다는 결심등을 장황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집의 가치는 아주 다른 여러가지 소재로 쓴 시편들로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뉘우치는 마음과 경건한 신앙심이 스며있는 시들이 반드시 가장 훌륭한 시라고는 할수 없다. 우리가 가장 감동을 받는 것은 그토록 절실하게 회개한 시인이 은근한 미련을 가지고 과거의 자기 자신을 묘사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 사이에서 투쟁하던 인간적인 갈등을 묘사한 점이다. 그는 과거 자기를 유혹하던 모든 것들을 연민의 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베르렌느의 「지혜시집」에 수록된 아름다운 몇 편의 대표적인 시를 살펴보자.
우선「지붕 위에 하늘이 있다」는 장중한 운률과 괴로운 심정을 달래는 가락으로 시인이 참회하는 슬픔과 불안을 나타내고 있다.
지붕 위의 하늘은/그토록 푸르고 조용하다! /지붕 위의 나무는/잔가지를 흔들고 있다.
하늘 위에 보이는 종은/조용히 울려퍼진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 한 마리가/한탄을 노래한다.
하느님, 하느님, 소박하고 조용한/삶이 저기 있습니다. /저 평화로운 소음이/시가지에서 들려옵니다!
오! 너는 무엇을 했지? 여기 서서/너는 끊임없이 울면서/여기/ 서있는 너는 젊은 시절에/무엇을 했는지 말해 보아라.
위의 시 첫 연에서는 감옥의 창살 너머로 옆 건물 위에 보이는 시각적(視覺的)인 관경을 묘사했다. 하늘은 상징적으로 자유를 나타낸다.
둘째 연에서는 청각적(聽覺的)인 인상을 묘사했다.
3연에서는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음일 들으면서 자기 신세를 하느님께 한탄한다. 갇힌 시인에게는 벽 너머 열린 공간속의 삶이 실제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소박의 고통을 한탄한다.
이 시는 생기있는 문체와 허식없는 표현 때문에 프랑스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작품이다. 베르렌느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완벽한 시 중에 하나로 후 1878년 자기의 과거를 참회하고 자기 부인과 다시 결합하자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다음 시「다정한 노래를 들어다오」를 마틸드 모테에게 보내지만 역시 거절 당한다.
「다정한 노래를 들어다오/그대를 위하여 우는 노래를/그 노래는 신중하고 경쾌하여/이끼 위에 물방울의 떨림 같은 노래다…」
「예지시집」제2부는 모두 기도하는 내용이다. 베르렌느는 죄책감에 빠져서 자기 마음속에 벌어지는 갈등과 신앙심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과의 대화로 표현했다. 그는 감옥에서 하느님과 만난 후에 신비로운 기쁨을 느끼게 되며 그는 희열에 도취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느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내 아들아,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는 보았지/창에 찔린 내 옆구리를, 피흘리며 빛나는 내 심장을/막달레나가 눈물로 씻은 못박힌 내 발을/너의 죄로 괴로워하는 내 팔을 보았지…」
Ⅷ『! 주님, 어찌된 일입니까? /아! 저는 엄청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당신의 음성은 나에게 선(善)과 악(惡)을 동시에 생각케 합니다/그 선과 악은 모두 같은 매력을 가졌습니다.』
「지혜시집」은 베르렌느처럼 감옥에서 쓴 프랑스와 비용(Francois Villon)의「유언집(Grand Testement)」을 연상케하고 파스칼(Pascal)의「예수님의 신비(Mystere de Jesus)」를 생각케하는 장엄한 가톨릭 서정시집이다.
「지혜시집」에 대한 응답으로 1883년에 쓴 시집「옛날과 오늘(Jadis et Naguere)」(1883)이 있다. 이 시집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선을 추구하는 노력과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사이에서 생기는 내적 갈등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베르렌느는 구원받을「현자(賢者)」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출옥후에 식어가는 신앙심을 유지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베르렌느가 출옥 후에 쓴 시에서는 선과 악 사이에서 투쟁하는 내적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현실과 이상, 육체와 정신, 이상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열망과 그를 타락시키는 나약한 성격 사이에서 방황했고 투쟁했다.
베르렌느는 선과 악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시를 썼다. 보들레르는 악에서 꽃을 피운 시집「악의 꽃」을 썼지만, 베르렌느는 선과 악의 양면에서 모두 꽃을 피운「지혜시집」을 썼다.
그는 일생 동안 추문으로 얼룩진 비참한 불행을 체험하면서 처절한 심정과 희한을 묘사함과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느끼는 경건한 신앙심과 기쁨을 아름다운 가락으로 노래했다. 「지혜시집」은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잃어볼만한 걸작이다.
조규철ㆍ데오도시오ㆍ서울 청담동본당ㆍ한국불어불문학회장ㆍ한국외대불문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