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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The GodFather
월드컵 역대 최다골
축구황제 ' 호나우두 '
그라운드 위의 마에스트로
아트사커 ' 지네딘 지단 '
그 이름이 대명사가 되어버린 사나이,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레프 야신이다. 야신의 위대함은 FIFA가 그의 이름을 따 월드컵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상의 타이틀을 <야신 어워드>로 한 것에도 알 수 있다. <야신 어워드>는 야신이 세상을 떠난 4년 뒤인 1994미국월드컵에서부터 이름 지어졌다. 골키퍼가 갖춰야할 모든 능력을 지닌 재능으로 평가 받았던 야신의 가장 두드러진 플레이는, 당시에는 흔치 않던 페널티 외곽까지 커버하는 넓은 수비범위였다. 발군의 순간 판단과 민첩함이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진일보적인 플레이였다. 야신은 자신의 첫 국제무대 도전이었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이어 1960년 유럽 선수권에서 소련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58년부터 70년 대회(마흔 살의 나이에 본선을 밟은 70년 대회 때는 후보)까지 4연속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며 매 대회 소련을 8강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프로팀과 대표팀에서 믿기지 않는 슈퍼 세이브를 쏟아낸 야신은 1963년 골키퍼로서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971년 야신의 은퇴 경기로 치러진 디나모 모스크바와 세계 선발의 경기에는 에우제비오, 바비 찰튼, 게르트 뮐러 등 굴지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참가했고 10만 여명의 구름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야신의 현역 마지막 모습을 추억했다. 말디니-베켄바워-칸나바로-카푸는 국가별 역대 월드컵 베스트에서 소개한 선수들이다. 아주리의 전현직 간판 수비수를 배치했다. 측면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는 말디니를 포함시켜 수비라인의 변동성을 담보코자 했으며 체구는 크지 않지만 대인방어와 함께 커버링이 발군인 칸나바로를 역대 최고의 리베로로 불리는 베켄바워의 파트너로 세워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측면 풀백 오버래핑의 중요성을 감안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화신 카푸를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했다. |
월드컵의 역사는 길다.
당연히 수 많은 스타들이 대회를 통해 명멸했다. 지난 연재를 통해 국가별로 월드컵을 빛낸 스타들을 살피면서 그들의 활약을 되새길 수 있어 행복했다. 마지막 순서는 '나의 월드컵 XI'이다. 이번 선정의 기준은 내가 TV나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감동한 월드컵 스타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골키퍼는 세르지오 고이코체아다. 90년 월드컵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한 고이코체아는 개막 당시만해도 '쩌리'GK였다.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그의 앞에는 주전 골키퍼였던 네리 품피도가 있었다. 하지만, 개막전에서 오밤-비크에게 기념비적인 헤딩골을 내준 품피도가 2차전 소련전에서 다치면서 고이코체아에게 기회가 왔다. 급작스럽게 선발 기회를 잡은 그는 8강 유고슬라비아 전과 4강 이탈리아전에서 연달에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며 아르헨티나를 결승에 올려놨다. 결승에서도 결승골이 된 브레메의 PK골을 거의 막을 뻔했다. (0-1 서독 승) 이 대회 최고 골키퍼로 선정된 고이코체아가 승부차기 승리를 이끈 뒤 포효하며 달려오는 장면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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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지배하고 흐름을 뒤바뀌는 위대한 창조성은 요한 크루이프가 우위일까, 지네딘 지단이 앞설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논쟁이 끊이질 않을, 어쩌면 결론이 나지 않을 영원한 미제일는지 모른다. 고정화된 포지션을 파괴하고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토털풋볼로 세계 축구 전술의 판도를 뒤흔든 크루이프와 판타지스타 시대의 대명사로 환상적인 경기 리딩과 패싱 능력을 발휘한 지단 모두 시대가 낳은 위대한 <질서의 파괴자>였다. 우위를 저울질 하는 게 고통스럽다면 한 팀으로 묶어 뛰게 하는 것은 어떨까. 시대가 다른 두 선수를 한 팀에 묶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전설의 드림팀>이라면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크루이프가 끊임없이 공간을 파고들어 상대 수비를 흔들고 그 빈틈으로 결정적인 스루패스를 넣어주는 지단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물론 크루이프는 부상을 조심해야 하고 지단은 머리 쓰는 일을 주의해야 하지만. 크루이프와 지단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감안해 중앙 미드필드 한 자리는 필드의 대표적 철각 로타르 마테우스를 배치했다. 월드컵 본선 5연속 출전해 25번의 경기에 나서 이 부분 최고 기록을 세운 마테우스의 화수분 같은 스태미나에 대한 기대다. 지단과 크루이프의 수비 부담을 줄이는 최적의 카드로 택했다. |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클래식 스타들의 경우, 나 역시 녹화 화면으로만 경기를 봤을 뿐이다.
그래서 수치나 하이라이트를 넘어선 당시의 위용이나 역할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기 소개하는 이들은 내 축구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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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와 같은 시대에 뛰었다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언젠가 호나우도가 펠레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자신감의 표현이었지만 대선배에 대한 예우와 겸손한 자세 등을 지적 받기도 했던 호나우도다. 일부의 논란을 떠나 호나우도가 지난 시절 축구 황제로 불린 펠레와 견줘지는 존재로 이름을 남긴 것은 분명한 흔적이다. 펠레가 1960년대 전후 4회 월드컵을 거치는 동안 12골을 넣으면서 세계 축구사를 새로 썼듯 호나우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월드컵 역사의 신기원인 15골을 쓸어 담았다. 호나우도의 15골은 역대 월드컵 개인 통산 최다 골이다. 역사와 역사, 전설과 전설의 만남인 펠레와 호나우도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기의 공격수들을 숱하게 배출한 브라질에서도 최강으로 꼽히는 두 선수의 만남은 그 이름값만으로도 상대 수비수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의 투톱이다. 크루이프와 지단의 그것처럼 이들 또한 전제가 필요하다. 펠레와 호나우도 모두 끔찍한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펠레는 유럽프로 무대에서의 경험을, 호나우도는 절제된 계획을 좀 더 채웠어야 하는 일이다. 시대적으로 마라도나는 펠레와 호나우도의 가교 쯤 된다. 펠레 시대가 가고 호나우도 시대가 펼쳐지기 이전 세계축구와 월드컵 무대를 지배한 위대한 플레이어가 마라도나다. 펠레, 호나우도와는 다른 유형의 공격수로 포워드 라인 조합에 있어서도 의미를 둘 수 있는 마라도나 카드다. 펠레와 호나우도가 페널티 박스에서 움직일 때 마라도나가 그 주위를 위성처럼 돌면서 <마라도나다운> 패스와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그림이다. 그 뒤에 지단과 크루이프가 있으니 상대 수비진으로서는 혼이 빠질 일이다. 옥상옥의 상황은 걱정이다. 서로가 자신의 플레이를 앞세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펠레는 그렇다 쳐도 호나우도와 마라도나는 개성이 또렷한 선수들이다. 이들이 자꾸만 개인을 앞세운다면 전차군단의 영원한 주장 마테우스가 준엄하게 꾸짖고 이도 모자라면 지단의 머리가 이들을 향할 지도 모를 일이다. |
이전 세대의 스타들도 물론 대단했을 것이다.
영상으로 보는 그들의 플레이는 지금 봐도 손색이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준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내 나름의 사연을 엮어 직접 본 선수들 위주로 골라보는 중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각자만의 월드컵 XI을 꼽아보면서 2010년 월드컵을 기다리는 마음을 다독거리시길 바란다.) |
첫댓글 벨붕
지단이랑 몇명 뿜빠이 했네
왼쪽 승
왼쪽은 너무할정도로 쩌네
왼쪽은 마치 피파의 식상스쿼드를 보는듯하오
피파에 있는선수는 2명뿐인데요 ㅎ
식상스쿼드처럼 쩐다고여
황선홍, 송종국 많이 애바인듯
황선홍..
지단이 참 대단하긴하네요 거의 축구베스트일레븐내면 들어가있음
왼쪽은 그냥 혼자해도 개쩔거같은선수가 몇명이나
뭐야...황선홍이랑 송종국이 왜 있음...헐...
월드컵에서의 포스만 따진다면 송종국도 뭐....애교로 넣어줄 수는 있는듯요 ㅋ
공격수에 클로제가있길 바랫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