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 안동 원천마을을 다녀와서
방수미
초록 알알이 탐스럽다. 청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씹는다. 청포도의 상큼한 맛이 좋다. 가슴에 담아놓았던 시詩 한 편 꺼낸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략)
안동은 이육사 시인의 고향이다. 이육사 시인의 유년 시절을 뒤쫓아 원천(원촌)마을에 갔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는 띄엄띄엄 집들이 떨어져 있다. 한때는 큰 마을을 이루었을 동네는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었고, 시인의 생가도 그때 헐렸다. 안동시는 위대한 시인의 생가 목재를 뜯어다가 시내에 다시 지었다. 하지만 재료만 같을 뿐, 구조도 다르고 항상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대신의 원천마을에는 이육사 시인의 따님이신 이옥비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옥 민박이 있다. 이옥비 선생님은 안동 태생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문학과 얼을 지키기 위해 안동에 사신다. ‘옥비沃非, 기름지게 살지 말라.’ 평생을 청빈하게 사셨던 아버지가 딸에게 남겨준 이름이다. 이옥비 선생님이 사시는 고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옥비沃非’ 그 자체였다. 대청마루에 서니 낙동강이 한 손에 잡히고, 왕모산이 한눈에 보인다. 시인은 어린 시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좋은 곳에서 자라셨다.
고택은 문도 담도 없다. 너른 마당에 온갖 꽃들이 있고, 청포도가 여물고 있는 작은 포도나무가 한그루 심겨 있다. 마치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처럼 들뜬 나는 한참 청포도를 바라보았다.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었더니 약간 신맛이 났다. 저녁때 이옥비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다식에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들었다. 하룻밤 과객은 그 시간이 오래가도록 붙들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정갈한 상을 차려주셔서 대청마루에 앉아 생각지도 못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집 앞 안내판에 쓰인 ‘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유의 집’이라는 글귀만 보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안동에 흔하게 있는 고택이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안채로 통하는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에 온몸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이육사 시인의 따님이 사신다. 우리는 운이 좋았고, 그곳에 머물 수가 있었다.
안동을 처음 찾았을 때는 칠월이었다. 꼭 칠월에 가고 싶었다.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니까. 고택에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에 갔다. 이육사 시인 탄생 백 주년에 개관한 문학관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과 유품을 잘 전시해놓아 어른들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이육사 시인의 뜻을 기리기 좋은 곳이다. 곳곳에 시비와 이육사 시인의 동상도 있다. 산 너머에는 이육사 시인의 묘소도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를 쓰던 시인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투사였다. 북경에서 모질게 고문당하고 돌아가셨지만, 다행히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어린 시절 육 형제가 뛰어놀던 곳에서 영원한 잠을 주무신다.
이육사 시인의 시 중에서 「청포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이육사 시인의 모든 시가 아름답지만 「청포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더 좋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의 청년이 ‘해방’이라는 희망을 품었기에 죽는 순간까지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인은 힘들 때마다 시를 지었고, 시를 통해 자신과 조국과 민족을 위로한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기다리던 청포靑袍를 입은 손님은 찾아왔다. 「청포도」를 만난 이래 이육사 시인의 시집을 사고 이육사 시인의 평전을 읽었다. 그렇게 이육사 시인이 다녔던 길을 나도 눈으로 따라다녔다. 오랫동안 이육사 시인의 언저리에서 시인과 함께한다.
대청마루에 앉아 왕모산을 바라보며 민족시인 이육사를 생각한다. 그의 시는 시리고 아프고 희망차다. 간결한 시에는 무한한 것이 담겨있다. 시인의 고향에 머무니 이육사 시인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육사 시인은 나의 삶과 문학의 원천이다. 시인이 지켜온 절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어떤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방향도 제시한다. 최소한 내가 존경하는 시인의 이름을 내세울 때 부끄러움이 없이 살도록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스 고전 『일리아스』를 보면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일찍 죽는 것은 아버지의 가장 큰 슬픔이다. 트로이아 전쟁에 참여한 젊은 전사들이 죽어갈 때 『일리아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탄식하듯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한다. 이육사 시인과 이옥비 선생님을 보면서 호메로스가 말한 것을 생각한다. 정말로 신神이 있어서, 독립운동 끝에 고초를 겪고 일찍 죽어갈 시인이 안타까워 자식을 만들어주신 것은 아닌지. 서울에서 북경으로 압송될 때 이옥비 선생님은 아기였고, 시인은 ‘옥비야, 아빠 다녀올게’하고 가셨다. 그러나 돌아오시지 못했다. 아기는 자라 지금 아버지의 재산인 시와 독립운동을 지키고 알린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도 중국 공산당에게 처형당하기 전에 그를 보살펴주던 여인에게 아들을 남겼다. 그는 아들의 탄생 소식을 편지로 알았고, 아들을 만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만 남을 뻔했던 김산이 ‘장지락’이라는 진짜 이름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인 고영광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옥비 선생님과 고영광 선생님의 모습이 한 장면에 잡혔다. 내가 존경하는 두 분의 모습이 자녀분들을 통해 보였다. 자식들이 있어서 아버지들의 영광은 계승된다.
이육사 시인 덕분에 오월의 봄, 칠월의 여름, 시월의 가을, 안동의 세 계절을 만났다. 이옥비 선생님께서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인 고택이 아름답다며 겨울에도 꼭 오라고 하신다. 대청마루에 앉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한 폭의 수묵화이다.
칠월의 안동은 여기저기에 포도가 익어가는 내음으로 가득하다. 안동시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를 주제로 와인을 만든다. 달큼한 레드 와인도 있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도 있다. 유리병에는 시詩 「청포도」가 새겨져 있다. 금빛이 도는 청포도 와인을 한 잔 따라놓고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을 조용히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