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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누가복음16:1-31
오늘 말씀은 재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하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버는 수입의 많은 부분은 먹고 마시는데 씁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재물도 또 먹고 마시기 위해 소중히 보관합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재물을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이 소중한 <재물을 어떻게 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를 가르켜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자본주의 시대, 물질주의 시대에 올바른 성경적 물질관을 잘 배우심으로 지혜롭고 충성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물질을 친구를 사귀는데 써야 합니다.(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빚진 자들의 액수를 보니 그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이 부자에게는 재산을 관리하는 한 청지기가 있었는데, 이 청지기가 부자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청지기는 자기 돈이 아니니까 법인카드로 회도 먹고 소고기도 먹고 펑펑 썼던 것 같습니다. 백화점을 다니며 명품도 사고, 관용차를 고급 승용차로 바꾸고, 회삿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등 주인의 재산을 제 돈처럼 썼습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에게 큰 손실을 안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단단히 화가 난 주인은 청지기를 해고시키고자 하였습니다. 해고 소식을 들은 청지기는 난감해져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땅 팔 힘이 없는 것을 보니 그는 체력이 약한 사람이고, 빌어먹을 체면이 없는 것을 보니 자존심은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에게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해고당한 후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빚진 채무자들의 빚을 감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전액을 탕감해주면 안 되니까 적당한 선에서 삭감해주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렀습니다. 기름 백 말 빚진 자는 오십이라 쓰게 했습니다. 밀 백 석 빚진 자에게는 팔십이라 쓰게 했습니다. 아주 통 큰 할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빚졌던 사람들은 청지기에 대해 좋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이 일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런 미친 사람을 보았나” 하고 노발대발했습니까?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한 점을 주목하고는 그 지혜를 칭찬했습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이 청지기가 거듭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끼쳤는데 어떤 이유로 청지기를 칭찬하였을까요? 8절을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일을 지혜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고 빛의 아들들은 믿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는 불신자들이 세상 사는데 있어서는 믿는 성도들보다 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란 민첩하고 기민함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장사하는 것을 보면 민첩하고 기민함이 있습니다. 반면 성도들은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순진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민첩하고 기민하게 일을 처리하였기 때문 이였습니다. 그러면 옳지 않은 청지기는 어떤 점에서 지혜로웠습니까?
(1) 그는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물질에는 많은 관심을 갖지만 물질로 사람을 사귀는 데는 무관심합니다. 특히 상황이 힘들수록 의지할 것은 돈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모양으로든 돈을 벌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돈보다도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기에게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하여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는 재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주인의 재산이지만 재물을 투자하여 사람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세상 재물로 사람을 얻는데 귀하게 썼습니다.
민족운동가 남궁억 선생이나 이승만 같은 선구자들은 돈으로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키우고 나라의 인물을 키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세운 학교를 통하여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었습니다. 9절을 보면 예수님은 불의의 제물, 즉 세상 제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이는 재물을 사람을 얻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쓰는 것을 보면 지혜로운 자인가 어리석은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먹고 마시는데 다 써버립니다. 그러고도 돈이 여유가 있으면 쾌락을 추구하는데 씁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헬스 기구를 사고 건강 치료기를 사거나 혹은 골프같은 취미활동을 위해 물질을 씁니다. 대부분 자기와 가족을 위해 씁니다. 물질을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돈을 올바로 쓰지 않을 때 본문 말씀을 보면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것이요, 이로 인해 화를 입게 됩니다. 물질은 친구를 사귀는데 쓰는 것이 가장 가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상 재물로 사귀라는 친구는 누구를 말합니까?
1) 먼저 영원한 친구 되신 예수님을 얻는데 세상 재물을 써야 합니다. 이는 가장 값지고 지혜로운 사용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한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 예수님을 친구 삼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다음으로 우리가 사귀어야 할 친구는 바로 다음 세대들입니다.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데 귀하게 써야 합니다. 복음사역은 사람을 살리는 사역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지만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일처럼 귀하고 가치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아낌없이 물질을 써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을 잃더라고 물질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물질을 좀 손해보더라도 사람을 얻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잘 키운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도 더 귀한 무형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 성공하려면 먼저 사람을 사귀어서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역사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12제자를 부르시고 사람을 인재로 양성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사람을 얻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3)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사귀어야 할 친구는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전도하는데 세상 물질을 써야 합니다. 성경에는 남을 도와줌으로써 자신이 윤택하게 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밥을 사주기도 하고 바쁜 시간을 내어 방문하기도 해야 합니다.
(2) 그가 지혜로운 이유는 그는 장래를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당장의 유익보다 해고당한 후를 생각하고 민첩하게 장래를 준비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장래를 생각지 않고 그때그때 당장의 이익을 따라 행동합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내일이 없고 오늘 뿐입니다. 그들은 내일 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오늘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고자 합니다. 미련한 자는 이 세상에서 육신이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고 이 땅에서의 삶에는 충실하지만 죽음너머의 세계를 위해서는 무관심하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출세나 물질을 얻는 데만 온통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현재보다 장래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더 중시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한창 젊을 때에도 20년, 30년 후를 생각하고 인생 기초를 견고하게 쌓습니다. 더 나아가 죽음너머의 세계를 생각하고 자신의 전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 투자합니다. 이런 자는 어리석은 자 같으나 참으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예수님과 다음세대를 양성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 쓰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나님 나라에 저축하는 것입니다(마6:20). 우리가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 죽을 때에 그들이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안내하게 됩니다. ‘재물이 없어질 때’란 재물이 필요 없어질 때, 곧 죽을 때를 말합니다. 죽을 때는 아무리 부자라도 한 푼도 못가져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날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고(딤전 6:7.,8), 소유를 드려 생명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둘째는 세상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이 말씀에서 충성이란 신뢰 받을만하다(trustworthy)는 뜻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란 물질을 의미하며 물질에 있어서 신뢰받을만한 자는 큰 것에도 신뢰가 되고 지극히 작은 것, 즉 물질에 있어서 신뢰가 안되는 자는 큰 것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신뢰를 받는데 있어서 지극히 작은 것 즉 물질 부분에 있어서부터 신뢰를 받아야 큰 일에도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작은 물질에서 정직하지 못하면 큰 일에서도 정직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이 세상 물질을 쓰는데 있어서 주님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주님께서는 참된 것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물질 부분에 있어서 주님께 신뢰받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인 돈을 슬쩍 주머니에 자꾸 넣는다면 이것은 충성이 아니요, 주인은 그 어떤 일도 그에게 맡길 수가 없게 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는 지혜는 있었지만 지극히 작은 부분 즉 세상 재물에 있어서 주인에게 신뢰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도 신뢰되어야 큰 것, 즉 더 많은 물질도 맡기고 참된 것, 즉 영원한 것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사람들이 신뢰해 주지 않는다고, 큰 일을 맡겨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합니다. 그러나 큰 직분을 요구하기 전에 지금 작은 부분, 즉 물질부터 묵묵히 충성해야 합니다. 그 충성심을 통해 장차 큰 것도 맡을 수 있게 됩니다.
13절을 보시면. 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지극히 작은 물질에 있어서도 정직하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이 부분에서 정직하지 못하면 맘몬, 즉 물질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되 물질을 사랑하고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세속적이고 불의한 속성이 있기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섬겨야 할 분이시고 재물은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작은 것에나 큰 것에나 묵묵히 충성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물질로 충성하지 않으면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19절이하)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며 자기 의에 가득 찬 자들이요, 사람 앞에서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이 많아야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흔히 자매들은 고급브랜드 옷을 입고 외모가 예뻐야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외모같은 것을 가지고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 율법에 맞게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이야기를 끝맺십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아주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부자는 비싼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는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 그들의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청했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얼마나 가련한 모습입니까! 나사로는 그 부자가 생전에 세상 재물로 사귀었어야 할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지 않음으로 죽어서 큰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 고운 옷을 입고 맛집만 찾아다니며 즐겼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재물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재물로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 방울 물로 혀끝이 서늘하기를 바라는 비참한 자가 되었습니다.
27,28절을 보면. 부자는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보내 자기의 다섯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 고통 받는 곳으로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의 종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에게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더라도 권함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증거 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없어 보입니다.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증거 해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사귀시고 다음세대를 더 사귀고 이웃을 사귀어서 재물을 쓰는데 있어서 하나님께 충성을 인정받는 자들이 다 되시어서 주님께서 더 많은 것을, 참된 것을 즉 구원을 받으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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