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과 선행의 승리
창세기 13:5~9
찬송가 212장(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성경에 보면, 긍휼과 선행이 궁극적인 복된 결실을 맺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오늘 본문 말씀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더불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두 사람 간의 목자간에 다툼이 있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우선 선택권을 주어서 롯이 원하는 지역으로 가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그 결과 롯은 동쪽 물이 많은 땅을 택하여 갔으나 아브라함은 서쪽의 산지와 사막을 택하여 양떼를 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양보와 배려를 선으로 바꾸셔서 요단강 서쪽 모든 전역을 다 보여주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의 땅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긍휼을 베푼 대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드넓은 요단 서쪽 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그가 신임하는 심복 늙은 종에게 밧단 아람으로 가서 아들 이삭의 짝인 며느리감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 종이 낙타 열 필을 이끌고 떠나 메소포다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러 거기서 한 우물 곁에서 기도합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세기 24:12~14)
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나왔습니다. 설명하자면, 아브라함의 형제 집안의 손녀뻘에 해당하는 처녀입니다. 리브가가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우물에서 올라오니, 아브라함의 종이 달려가서 물을 달라고 하자, 리브가는 급하게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마시기를 다하매 말하기를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처녀 리브가는 한 낯선 나그네를 위하여 청하지도 아니한 일을 자원하여 나서서 봉사합니다. 그래도 한 마리 낙타라면 괜찮다 할 것입니다. 무려 열 필의 낙타에게 물을 다 길어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큰 플라스틱 콜라병이 3리터인데, 한 마리 낙타가 마실 수 있는 양이 200리터입니다. 더욱이 먼 여행을 걸어온 낙타 한 마리가 얼마나 목이 마르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낙타 열 마리를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는 이 처녀는 얼마나 대단한 헌신의 열정을 가진 것입니까? 그 나그네의 목을 시원하게 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목말라 힘들어하는 낙타들의 목마름까지 긍휼히 여기고 그 깊은 우물 아래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 길어오기를 적어도 서른 번 정도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긍휼한 마음을 갖고 헌신하는 그 처녀를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을 주신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리브가의 이런 긍휼의 마음은 훗날 다윗의 증조모 룻에게도 이어졌으니, 룻은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차서 구만리 같은 자기의 청춘을 내려놓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려고 고향 산천을 떠납니다. 그리고 낯선 유대 땅 베들레헴에 와서 이삭 줍기를 시작하며 어머니를 봉양합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와 같은 따뜻한 긍휼의 사람을 예비하셔서 룻을 돌보게 해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하여 보아스와 결혼한 룻을 통하여 얻게 된 증손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 승천 후 교회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자 사람들 마음 속에 긍휼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그 중에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자 제자는 선행과 구제에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죽게 되자 사람들은 그냥 그녀를 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사람을 급히 보내 가까운 룻다라는 동네에 와 있는 베드로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도착하자 욥바의 과부들과 성도들이 함께 다비다의 몸을 눕혀 놓은 다락방에 올라가서 다비다가 살았을 적에 성도들과 과부들에게 지어주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면서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다비다의 긍휼과 선행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고서 사람들을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기를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켜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녀의 살아난 것을 보여주니, 그들이 다들 감격하고 감사하며 사람들에게 알리니 온 욥바 사람들이 알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비다의 긍휼과 자선이 하나님께서 그녀를 다시 살려주시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주님을 증거하다가 신성모독 죄로 고발당하여 결국 사형을 당하여 돌팔매를 맞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긍휼어린 기도의 응답으로 사도 바울이 그 후에 주님께 돌아오는 은혜를 입었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그의 사역 마지막 시기 순교를 앞둔 시점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디모데후서 4:16)
하나님 나라의 방해꾼이요 교회를 박해하기 위하여 폭행과 살인까지 허용했던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한량없는 긍휼과 자비를 기억하고서, 바울 본인도 자기를 응당히 돕고 끝까지 지켜주어야 할 동지들로부터 버림을 당할 때에 기꺼이 그 배신한 자들을 긍휼히 여겨 용서해줍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훌륭한 믿음의 용사들도 많고 의를 위하여 감연히 나서 의를 지킨 믿음의 용사들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늘 긍휼과 자비를 행하려고 몸부림친 훌륭한 분들도 많이 기념되고 있습니다. 존 후스라는 위대한 순교자의 철저한 성경적 신앙을 이어받으려고 천주교의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견뎌온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 지방의 형제단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주교 세력에 의하여 늘 이단으로 몰리고 온갖 박해를 받으며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진젤돌프라는 독일 백작이 나서서 자기의 영지 헤른후트를 개방하여 그들이 마음껏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라비안 성도들은 헤른후트에서 마음껏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수많은 선교사님들을 파송하는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갑니다. 영국의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도 이 모라비안 교도들이 인도하는 한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선교의 실패 때문에 생겨난 깊은 침체를 이기고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 다시 불꽃같이 피어오르는 복음 사역을 재개하였습니다. 이렇듯 진젤돌프의 긍휼의 사역이 많은 영적 열매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7)
라는 말씀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주님은 긍휼의 사역을 통하여 많은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 모두 한평생 긍휼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