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시집 『새의 암장』, 1970)
[작품해설]
이 시는 박남수의 후기 대표작 중 하나다. 시인은 이 시에서 관념의 표상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종’을 세련된 감각과 심상의 조형(造形)으로 형상화하여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주지적 계열에 속하는 이 작품은 표현 형식면에서도 시인의 지성적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전 4연이 모두 4행씩인 질서 있는 구성과 함께 각 연의 종결 방법이 동일하다. 즉 1·2연과 3·4연을 각각 부사형과 서술 종결 어미로 끝맺고 있어 주지주의 시인으로 변모한 그의 후기 시 세계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청동의 벽’인 종의 몸체를 ‘칠흑의 감방’으로, 울리지 않는 상태의 종소리을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놓인 ‘억압’이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울려 나오는 종소리를 ‘푸름’ · ‘웃음’ · ‘악기’ · ‘뇌성’ 등으로 변신하며 퍼져 나가는 ‘자유’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 종소리는 ‘청동의 표면’에서 떠난 한 마리 ‘진폭의 새가’된 다음 마침내 ‘광막한 울음’을 우는 거대한 ‘하나의 소리’가 된다. 그리하여 종소리는 인간의 삶과 꿈, 그리고 역사를 잉태하고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퍼져 가는 것이다.
[작가소개]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