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45-50 스데반은 광야시대의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들어와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 장막과 성전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러한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시지 않으신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모세를 밀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밀친 것이라 했다. 그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빌론으로 옮겨버리겠다고 하셨다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만든 장막을 형상으로 부른 것도 장막 자체를 우상으로 섬긴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버리고 성막과 성전 자체만 섬긴 우상숭배가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 이어진다. 45절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모세가 본 모형대로 만들어 준 장막은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차지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것을 가나안 땅으로 가지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여호수아는 예수이다. 본래 예수님의 이름은 여호수아와 똑같은 이름으로 흔히 쓰이던 이름이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여호수아와 예수로 구별해서 쓰는 것 뿐이다. 그 모형인 장막은 다윗 시대까지 계속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거짓 신들의 모형을 섬기던 가나안 사람들을 내쫓아 주신 것은 하나님만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하나님 대신 모세가 만들어 준 모형인 증거의 장막을 계속 물려주면서 섬겼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섬기면서 장막을 기념물로 남겨두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하나님 말씀은 자기들 중심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장막을 섬기니 결국 몰렉신의 장막과 레판신의 별들을 섬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처럼 어느 장소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다. 광야에서 그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함께 하셨던 기념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 백성들에게 임하셨지 장막 안에 갇혀 있으신 적이 없다.
4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발견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윗은 야곱의 집안을 위해 장막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전을 짓게 해 달라는 간구였다. 그런데 47절에서 야곱의 집안을 위해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라는 것이다. 스데반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미 45절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 준 모형이었던 장막을 우상처럼 섬겼던 것이다. 스데반의 요점은 하나님은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만들어준 장막만 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형을 숭배하는 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음으로서 본격적으로 성전 숭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밀어 내고서 하나님 대신 성전을 섬긴 것이 바로 곁길로 빠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48절은 아주 강한 반대를 나타내는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스데반은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성전을 지었어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한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라도 그 자체가 섬김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이방신들과 마찬가지이다. 49절은 이사야 66:1-2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님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만한 곳이 어디냐?" 라고 하셨다. 50절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하늘과 땅도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네가지 시대중 어느 시대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특정한 장소에 제한된 적이 없었다. 이 네가지 시대 내내 반복된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아브라함에게 임하셨다. 이집트에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족장들은 요셉을 떠밀어서 하나님을 떠밀어 버린 것이다. 광야에서는 모세와 함께 하시며 그 백성들을 이끄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모세를 떠밀어서 하나님을 떠밀어 버린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오셔서도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떠밀어 버리고 손으로 만든 장막과 성전을 하나님으로 삼아 섬겼다.
중세의 교회 건물들은 정말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이다. 오늘날 카톨릭 교회들 뿐만 아니라 개신교 교회들의 건물도 화려함과 웅장함은 중세 교회 못지 않다. 건물을 아름답게 짓고 그 곳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건물 자체가 거룩한 곳은 아닌 것이다. 요한의 말처럼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예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게 여기고 받으며 늘 간직하고 순종해야 할 것은 성막이나 성전이나 교회 건물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스데반이 지적한 것은 하나님 말씀은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이 나타나 자기들을 잘살게 해 줄 것이라며 진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거부하여 죽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내 생각에 맞는 말씀만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며 내 자신을 우상으로 삼기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