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마태25~26)
원문은 '아버지'와 '하늘과 땅의 주님'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여기서 '아버지'에 해당하는 '파테르'(pater)는 호격이다.
사실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마태오 복음
11장 27절에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의 독특한 친밀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마태26,39.42).
하지만 유다인들은 이것을 빌미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죽이고자 했다(요한5,18).
'아버지'라는 호칭은 그만큼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성을
드러내는데 적합한 용어였지만, 무지한 유다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하느님을 망령되이
부르는 신성모독적 언행으로 비쳐진 것이다.
한편,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말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사도17,24).
그리고 창세기 14장 19절에도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Maker of heaven and earth)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14장 19절에서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른 영원한 대사제였다(히브6,20).
멜키체덱보다 이천여 년 뒤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예표하는 구약의 인물인
멜키체덱과 같은 말로써 하느님을 호칭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주되심을
다시 한번 확증하셨던 것이다.
창조주이시기에 당신이 가지는 창조물에 대한 주권(이사64,8)을 높여 표현한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호칭은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께 바쳐야 할 또 하나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 '이것'은 무엇인가?
원문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타우타'; tauta: '아우타'; auta; them)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한 가지 사실이나 가르침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건과 가르침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의 주된 관심사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이며, 앞의 마태오 복음 11장
20~24절의 예수님의 책망과 심판 경고의 주된 이유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한다.
한편, 본문에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와 '철부지'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슬기롭다는'에 해당하는 '쉬네톤'(syneton)은 '이해력을 가진', '신중한', '학식이 있는',
'지성을 갖춘'이란 뜻이다.
보통 자칭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마태23,24).
그러나 단지 그들만이 아니고, 마태오 복음 11장 16절에 나오는 '이 세대', 즉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을 받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든 불신자들을 언급한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철부지들'로 번역된 '네피오이스'(nepiois)는 '젖먹이', '경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의 제자들'
혹은 '순박한 사람들'을 말한다.
결국 본문은 많이 배워서 자기 스스로 사리분별에 신중하고 학식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지혜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제 젖먹이처럼 경험없고 순박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지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의 아이러니같은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누구에게 당신의 진리를 나타내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얻어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끝으로,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에서
'아버지'로 직역된 '호 파테르'(ho pater)에서 정관사 '호'(ho)가 사용된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일반적인 부자(父子)관계가 아니라 유일하고 특이한 부자(父子)
관계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요한10,14.15).
더군다나 '뜻'으로 번역된 '유도키아'(eudokia)는 '좋다', '잘되다'는 뜻의
부사 '유'(eu)와 '생각'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도키아'(dokia)의 합성어로서
원래 '선의'(good will), '기쁘신 뜻'(good pleasure), '은혜로운 뜻'(gracious will)
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고 자비로운 뜻을 알고 있는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감격적인 표현이 잘 담겨져 있다.
즉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 당신의 뜻을 감추든지 감추지 않는지는 순전히 하느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음에 대한 예수님의 전적인 동의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