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초경(初更, 초저녁)쯤 되어서 귀신(鬼神)이 나왔다고 소동이 벌어져
온 마을이 진동(振動)하니 허무한 일이다.
고을로부터 포 쏘는 소리와 두드리는 소리가
일각(一刻, 15분)이나 계속하여 온 마을이 소동하니
밤이 새도록 두렵고 무서우나 흔적이 없는 일이다.”
이는 370년 전 남평조씨라는 한 여성이 쓴 《병자일기(丙子日記)》의
정축년 7월 28일 기록으로 귀신 소동이 난 얘기입니다.
▲ 남평조씨가 병자호란 때 3년 10개월 동안 쓴 《병자일기(丙子日記)》,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제공)
이 일기에는 남평조씨가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을 당하여
피난길에서 가족을 잃고 찾아다닌 이야기는 물론
종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림을 꾸려간 이야기,
이웃집에 불이 나거나 도깨비불 때문에 온 마을 사람이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
종이 도둑 떼에게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온 이야기 같은
당시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마치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담겨 있지요.
심지어는 적군이 밀려온다는 소문에 겁이 난 나머지
큰길로 나갈 수 없어서 작은 길로 밀려가다가
많은 피난민 행렬 속에서 아이들을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눈앞에 보는 듯하니
병자호란 당시에 백성들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듯합니다.
이 책 《병자일기》는 조선조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내고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해진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이자 정경부인(貞敬夫人)인
남평조씨가 인조 14년(1636) 12월부터 인조 18년(1640) 8월까지
3년 10개월에 걸쳐 기록한 한글 필사본 일기입니다.
일기는 몹시 아팠다거나 정신없이 바쁜 몇 날을 빼고는 거의 날마다 썼습니다.
《병자일기》는 사가(私家)의 부녀자가 한글로 쓴 것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훌륭한 수필문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