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
사도 6,1-7; 1베드 2,4-9; 요한 14,1-12
부활 제5주일; 2023.5.7.; 이기우 신부
1. 전례의 취지와 말씀의 흐름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생명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하느님이십니다(복음).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사도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사도직으로도 구현할 수 있도록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사도 6,2) 부제 직무가 필요합니다(제1독서). 그리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맡아야 할 이 부제 직무가 복음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민족으로 하여금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제2독서).
2. 문명은 생명의 존엄성에 봉사해야 한다
인간 발전을 위한 봉사는 하느님의 큰 선물인 생명 그 자체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시작됩니다. 잉태의 순간부터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하느님 창조 활동의 결과로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이며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아무리 발달한 첨단 기술도 하느님의 피조물인 그 생명의 오묘한 매카니즘을 모방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따라서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물질문명은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샘이시며 생명의 유일한 목적이신 하느님을 흠숭해야 마땅합니다. 과학과 기술도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에 봉사해야 하며 생명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방어할 목소리조차 갖고 있지 못한 약한 생명에 대해 그 위력을 발휘할 때 과학과 기술의 문명적 효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약한 생명’이란 첫째 산모의 뱃속에서 생명력을 받은 태아이며, 둘째 신체 면역력을 상실해 가는 노인들이며, 셋째 경제력이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진정으로,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생명에 대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참된 발전을 이룩해야 하며, 이를 시민들이 주체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이끌고, 이로써 이에 참여하는 이들이 인간성의 향상을 체험하고 영성의 성숙을 성취하며 하느님과 합일하는 체험을 하도록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천국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어머니 태중에 있는 배아이거나 죽음을 앞둔 노년이든, 질병이나 장애를 지닌 생명이든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진리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자유롭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존중하며 그 풍요로움을 발산시키는 일을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3. 새 천년기의 복음화를 위한 깃발, 문헌 「아시아 교회」
이상은 대희년을 앞두고 아시아 주교들이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아시아 복음화를 화두로 하여 성찰하고 결의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여러 대륙의 주교 시노드들이 열렸지만 유독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생명을 비롯하여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있는 배경과 이유가 바로 아시아 복음화의 절박함과 중차대함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미래를 조망해 볼 때, 첫 천년기에는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등 초대교회의 주요 공동체들이 주축이 된 동방 교회가 주도하였습니다. 동로마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점령당하자 동방 교회도 힘을 잃어버린 두 번째 천년기에는 로마에 교황청을 두고 서유럽을 복음화시킨 서방 교회가 주도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서방 교회는 놀라운 조직력을 발휘하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제 복음화 삼천년기를 시작한 이즈음에 복음화의 주도권은 동방과 서방에 이은 아시아 교회, 특히 한국교회에 주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지던 두 번째 천년기에 아시아의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독보적으로 복음적인 출발을 해서 탄탄한 저력을 형성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를 적대시하던 이슬람교의 위세 때문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었던 중동이나, 다신교를 신봉하는 힌두교에 밀려 별다른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었던 인도는 물론, 서구 학문과 기술을 탐냈던 중국이나, 서양 무기를 탐냈던 일본과 질적으로 다른 특징입니다. 한국의 신앙 선조들은 진리에 대한 구도정신으로 천주교를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설립한 주체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자발성과 주체성의 힘이 이토록 큰 사례는 한국교회가 복음화 2천년 역사상 전무후무하고 유일합니다. 이를 전제로 복음화 제삼천년기를 준비하고자 마련된 기념비적인 문헌 「아시아 교회」의 메시지를 간추려 전해드리겠습니다.
4. 아시아에서 경이롭게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아시아에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계시하셨습니다. “때가 찼을 때”(갈라 4,4) 아시아인의 육신을 취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구세주로 맞아들여준 소수의 유다인들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는 사도들을 통해 당시 문명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향하여 서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계속하여 복음을 전해 온 교회가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 이 제3천년기에는 찬란한 문화와 고등 종교의 발상지인 아시아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땅끝인 한반도에 전해진 복음이 그 자발성과 주체성 그리고 지성적이고 실천적인 면모로 말미암아 복음화 2천년을 통털어 가장 돋보이는 저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아시아 복음화
복음화 제2천년기를 주도하던 서방 교회가 아프리카 선교에는 상인들을 앞세워 노예무역을 방관하였고, 아메리카 선교에는 군인들과 민병대를 앞세워 원주민 대량학살을 방조한 데 비해서, 아시아 선교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앞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식 교회 모델과 서양식 사고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에 아시아 선교는 처음부터 어려웠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 주교들은 16세기 이래 각국에서 박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식 선교방식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하여, 종교와 문화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대화상대로 하는 삼중의 대화 선교를 제안하였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가 목표로 삼은 ‘사랑의 문명’을 아시아 대륙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 복음화의 목표를 이렇게 제시하였습니다.
복음화 제1천년기와 제2천년기의 선교적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삼아 마련된 가톨릭 사회교리는 복음화 제3천년기를 맞이한 이 시기에 아시아 복음화의 교과서로 활용되어야 마땅합니다.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 그리고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교리는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복음입니다.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의 발상지인 아시아는 지구상 인구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절반 이상의 인구가 가난과 억압 그리고 착취로 고통 받고 있는 곳입니다. 고대에 찬란하게 빛나던 아시아의 고등 종교들이 근세 이래로 공동선에 대한 관심을 상실한 결과 민중을 빈곤의 나락에 떨어뜨린 역사를 참고하여 교회는 아시아의 종교들이 사회의 공동선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연대하고 도와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의 교회는 서구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룩한 탐욕스러운 풍요로움을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들이 예수님을 본받아서 깊은 신앙과 넓은 연대, 높은 이상으로 살아가도록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타지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은 사회적 약자로서 각별한 배려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도 이주자들, 여성들과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문화와 피부 색깔, 인종, 신분, 경제적 지위, 사고방식 등에 따른 차별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각별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봉사는 보건과 교육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신으로 이어집니다. 서유럽 각국이 수백 년에 걸친 전쟁의 교훈에서 지금의 유럽 연합을 가까스로 이룩했듯이, 아시아의 나라들도 중동 분쟁, 중앙 아시아 분쟁, 중국의 양안 분쟁, 한반도 분쟁을 끝내고 서로가 각국의 국내 사회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서로 돕고 연대할 수 있도록 교회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전체 아시아인들과 함께 아시아에서는 소수에 불과한 그리스도인들이 실로 역사의 위대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류 공멸을 가져올 군비 경쟁 대신에 군비 축소를 추구해야 하며, 소외 없는 연대의 세계화를 촉진해야 합니다. 과거 지난 세기에 제국주의 정책으로 국제범죄를 일으킨 선진국들이 약소국들에게 지우고 있는 외채는 향후 공동의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도 지혜를 모아 탕감되어야 하며,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생태계와 환경을 적극 보호해야 마땅합니다.
6 새로운 한류가 던져주는 희망
지금은 전 세계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한류 현상을 복음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선택된 겨레이고 거룩한 민족’인 우리가 홍익인간의 이념을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대륙에서 펼쳐 보일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지혜를 청하여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고자 노력한다면, 초대교회 시절에 로마인들이 그러했듯이, 아시아인들도 오랜 종교적 연륜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만 알던 하느님을 선명하게 알게 될 것이고, 아시아인들이 서양 성현으로만 알고 있던 예수님이야말로 동서양의 모든 인류가 걸어야 할 길이시요, 추구해야 할 진리이시며, 살아야 할 생명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2천년 전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가 된 제자들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여 서방을 복음화시키는 큰 일을 이룩하였습니다. 복음화 제3천년기를 맞이한 이제, 우리 교회가 아시아 주교들의 오랜 성찰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충정어린 권고에 따라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동방을 복음화시키는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음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덤도 받을 것입니다.
첫댓글 부활5주일이며 생명주일인 오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찬미 영광드리며
이 글을 씁니다.
잉태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하느님의 활동의 결과로서 기적이며 선물이라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또한
첫천년기는 동방교회가
두번째 천년기는 서방교회가
세번째 천년기는 아시아교회가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드러나리라는 말씀은 큰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깊은신앙과 넓은연대 높은 이상으로 살아가도록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교회가 가난한이들을 위한 가난한교회가 되어야한다는 것도 깊이 와 닿습니다.
강론 말씀안에서
깊이 성찰 하면서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저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다짐하는 오늘 입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 강론에서 간추려 소개해 드린 '아시아 교회' 문헌은, 공의회 이후 결성되어 25년 간 숙고를 거듭한 아시아 주교들의 성찰과, 역시 25년 동안 교황직에 재위하시는 동안 줄곧 기도의 1순위로 올려놓고 기도하신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도가 어우러진 기념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며 앞장설 수 있는 교회는 한국교회밖에 없다는 것도 문헌의 맥락상 자명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