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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5. 베르겐그륀(1892~1964) 「대폭군과 재판」
나치 종교탄압에 저항한 대표작
“대지에 충실할 때 위기 극복” 강조
「대 폭군=히틀러」「재판=특수범죄 조직」상징
「대폭군의 죄 고백」에선 통쾌함보다 인간성 느껴
19세기 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神)의 사망을 진단했던 니이체(Friedrich von Nietsche 1844~1900) 가 그의 주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ustra. 1883) 」에서 생(生)의 철학을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킨 이후 독일문학은 물론 서양문학에서는 점차적으로 기독교적 인도주의(人道主義)정신이 그 자취를 감추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이 경이적인 진단을 직접 체험하기에 이르렀고 제2차대전이 끝난 이후부터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와 불안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하이데카, 까뮤, 싸르트르는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zialismus) 철학으로서 인류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으나 이와 역비례로 불안과 초조는 회의와 불신을 거쳐 절망상황에 까지 기하급수로 가속될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무신론적(無神論的) 실존주의 사상의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유신론적(有神論的) 사상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으니 이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밑바침으로한 문학사상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본(Bonn) 과 인스부르크(Innsbruck) 대학교에서 주로 기독교 문학을 강의했던 그랜쯔만(Werner Grenzmann) 교수는 그의 유명한 저서「문학과 신앙 (Dichtung und Glaube) 」에서 현대 독일문학을 작가들의 대세계적(對世界的) 해설 내지 대세계적 태도에 따라서 3단계로 나누었다.
그 첫째 단계는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 1955), 헤르만 헷쎄(Herman Hesse1877-1966)를 중심으로 한 회의와 불신의 문학이고, 그 둘째 단계는 이 회의와 불신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다 끝내는 절망ㆍ변신ㆍ난파되어 버린 프란쯔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문학이며 마지막 셋째번 단계는 신이 창조한 영원한 질서의 실제성(實際性)을 믿는 가운데 세계구조(世界構造)의 전체성(全體性)을 인식하여 끊임없이 명시(明示:die offenbarung) 하려고 했던 가톨릭문화이라했다.
이 셋째번 단계에 속하는 대표적 작가들로는 베르너 베르겐그륀(Werner Bergengruen1892~1964) 게르투루트 르 포르(Gertrud Le Fort), 슈테판 안데레스(Stefan Anderes) 이다.
그런데 이들「신앙의 작가」들 중에서 국내외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는 바로 베르겐그륀이다. 베르겐그륀이야말로 독일 현대종교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일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사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거인적 존재이다.
II
베르겐그륀은 그 당시에는 러시아 영토였던 독일어 사용지역인 발트해(海) 연안의 리가(Riga)에서 의사의 아들로 1892년 9월 16일 세상에 태어났다. 1914년 8월까지 뮌헨, 베틀린, 마르부르크 대학 등에서 법학, 역사학, 문예학, 자연과학 등을 두루 연구하여 작가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자원입대하여 동부전선에서 조국 독일을 위해 싸웠고 전쟁이 끝난후 1924년부터 신문사와 출판사에 근무하는 한편 자유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의 처녀작「아튜움의 법칙 (das Gesetz des Atumㆍ1923) 」을 발표했다. 그 후 1936년 베를린에서 거주할 당시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이후 자기와 작품경향이 유사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바있는 라인홀트 슈나이더(Reinhold Schneider 1903~1958) 와 친교를 맺어나간다.
나치스의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대폭군으로 등장하면서부터 가톨릭적 인도주의를 내세운 베르겐그륀의 작품들을 토마스 만, 헤르만 헷쎄, 프란쯔 카프카, 게르트루트 르 포르, 슈테판 안데레스, 라인홀트 슈나이더의 작품들과 함께 분서(焚書)로 낙인 찍히고 만다. 그 후 국내망명작가(國內亡命作家)로 뮌헨 교외에 있는 졸른(Solln)에 정주하면서 역사소설을 쓰는데 전념한다. 제2차대전이 끝난후 1946년에는 독일을 떠나 1958년까지 취리히에서 계속 창작생활을 했다.
그러나 남미(南美)의 여러 군사독재사회에서 해방신학이 고개를 쳐들고 구라파의 정통자본주의(正統資本主義) 사회에서 하인리히 뵐의 사회주의 가톨릭사상이 범람하기 시작할 즈음하여 1964년 9월 4일 세상을 떠난다.
III
베르겐그륀은 형이상학적인 보편성 즉 기독적인 신앙과 신념밑에서 창작하여 널리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현대 독일문학의 거인적 존재로서 그에게 있어서는 신앙에 대한 정열이 모든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시공적(時空的)인 면에서 광활한 안목을 지녔으니 해박한 역사지식을 밑바침으로 하여 현대로부터 고대로 이르는 시대상(時代相)을 면밀주도하게 재현시켜 주었을 뿐아니라 장편과 단편 그리고 시작(詩作)을 통해서 그의 고향 리가를 중심으로 구라파 각 지역은 물론 동양에 까지 작품의 무대를 광범위하게 확대해나가면서 인간과 신의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 나갔다. 그는 무수히 많은 지역을 여행함으로써 창작의 생명력을 얻었고 여행에서 접한 모든 작품의 대상들을 신의 심장과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영원한 질서로서 간주했다. 다시 말해서 절망과 위기의 시대에 신앙을 간직하고 관명에 빠짐이 없이 구체적인 명시(明示)로서 인간의 위치와 영원한 질서를 끊임없이 고지(告知)했던 것이다. 영원한 질서의 명시자로서 베르겐그륀의 사명은 자기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로 하여금 영원한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그 질서를 명시하여 줌과 동시에 그네들로 하여금 복잡한 시험과 유혹속에서 투쟁케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러한 위기가 만연된 유혹속에서 던져진 자연의 티끌이지만 그리스도적 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투쟁함으로써 신의 영원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극한상황에 직면한 인간은 불완전하고 위험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타락할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모든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는 구원의 길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제받기 위해서는 각자가 도덕과 윤리의 세계에 자신을 적용시키고 신이 제시한 영원한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유한 특권, 즐 자아를 규정하고 자유롭게 도덕과 윤리를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그 자체로서 비극성(悲劇性)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겐그륀은 중세의 가톨릭작가도 아니고 19세기의 그것도 아닌 위기의 세기인 현대의 가톨릭 작가이다. 그의 주인공들도 카프카의 주인공들처럼 예기치 못했던 불분명한 위험, 불안, 공포에서 좌절의 극한 상황에까지 쫓긴다.
그러나 위기의 정점에서 카프카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모든 마스크를 단순하게 떨쳐버리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자기의 존재를 개방한다. 「Ja」 (긍정)가 아니면「Nein」 (부정)이 욕구되는 최후의 결단상황속에서 원시적 신앙으로 귀의하여 자신의 실존속에 신의 창조물인 위기의 현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신의 실제성인 현대 세계를 무조건 단순하게 자신들의 의지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위기의 극한상황을 초극하게 된다. 난파 직전에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받고 승리의 개가를 높이 외치는 파우스트적 인간상으로 다시 부활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들은 각계 각층에 속하는 인간들로서, 또한 사회적 내지 지적(知的)인 면에서 천차만별한 인간들로서 단순한 야인(野人)이 있는가 하면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와 교활한 자가 있고 , 열광적(熱狂的) 인물 내지 광신적 인물을 다루는가 하면, 잘 조화된 성격의 인물을 다룬다. 회의론자와 죄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성인성녀가 등장한다. 보호된 권력층과 버림받은 창녀계급이 등장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최고의 사법권이며 독재자인 대폭군과 그의 범죄조직인 하수인들이 머리를 쳐든다.
IV
20세기의 성서라고 할수 있는 베르겐그륀의「대폭군과 재판 Der GroB tyrann und das Gericht」은 그의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도록 애독되는 작품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제3제국시대에 히틀러의 가혹한 종교탄압에 항거하면서 쓴 레지스탕스 문학으로서 마침내는 독서금지령이 내려진 작품이다. 왜냐하면 작품제목인「대폭군과 재판」이란 명칭에서「대폭군」이란 표현은 전제ㆍ독재ㆍ억압ㆍ부자유 등의 어휘와 함께 히틀러를 암시하고 「재판」은 그의 손바닥 속에서 놀아나는 특수범죄조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히틀러가 자신을「영도자 (Fuhrer) 」라고 부르게 했듯이 대폭군은 자기스스로를 「각하 (Herrlichkeit) 」로 호칭케했다. 이밖에도 대폭군에게 자식이 없다는 사실, 미천한 출신, 그리고 그가 건축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등은 히틀러에게도 적용될수 있는 전지적 요소들이며, 대폭군과 주교와의 화해에 관한 대목은 나치스와 교황 비오 12세간의 조약을 기억나게 한다. 비밀경찰의 총수인 네스폴리의 비밀염탐제도와 공작정치도 나치 통제국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폭군이 통회하는 모습과 히틀러의 자살장면은 유사하다고 할수 없다.
「대폭군과 재판」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창작된 역사소설로서 작품의 무대는 르네상스시대에 이탈리아의 가공적 도시국가인「캇사노」이다. 캇사노의 군주인 대폭군 자신이 자신의 측근인 수사(修士)를 살해하는데서 대장편의 막은 오른다. 대폭군은 그 수사를 암살한 범인을 빨리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니 그 엄명은 그 시(市)의 보안경시총감(保安警視總監) 네스폴리에게 직접 하달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의 성질이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재판과정에서 대폭군 자신이 자기 입으로 밝혔듯이 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군주인 자기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대폭군의 간계와 조작으로 인해서 캇사노의 각계 각층의 시민들은 무질서한 혼돈속에서 방황하게 되고 비밀경찰의 총수였던 네스폴리 자신도 자신의 지위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범인을 마구 조작해 낸다.
이런 간계와 조작은 대폭군의 직계인 네스폴리 뿐만 아니라 사자(死者)인 판돌포 콘피니와 그의 아들인 디오메데 신부(神父), 심지어는 창녀에 이르기까지 사방팔방으로 유혹과 위험을 자아내며 양심의 위기를 조성한다. 형형색색의 위험은 내적 외적으로 뚫고 들어오며 시민들을 익숙한 생활의 균형에서 사정없이 떼어버리며 마침내 그네들은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호간에 간계와 조작을 마구 교환한다.
한편 대폭군은 자신이 연출한 위기의 무질서를 절대자라는 고고한 위치에서 여유만만하게 내려보면서, 그 속에서 난무하는 인간들의 베일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가고 있었다.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세계의 재판관인, 즉 신의 위치까지 끌어 올려놓고는 그곳으로부터 인간의 양심이 상황에따라서 얼마나 가변적(可變的)일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 무질서한 위기의 극한상황을 자신의 천국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대폭군이 이끌어낸 결론은「인간은 얼마나 유혹되기 쉬운가! 」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인식이 바로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대폭군에게「양심」이란 말에 대해 눈을 뜨게 한 사람은 사회적 신분이 몸담고 있는 성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나 학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과는 거리가 먼 계층의 인물로서 힘도 없고 가진것도 없고 배운것도 없는 단순ㆍ소박한 성격의 소유자인 염색공 슈페로네였다.
법정에서 대폭군의 대각선(對角線)인 슈페로네의 인류애적인 희생정신은 확고부동하게 접합되었던 대폭군의 간계와 그로 인해 오염된 캇사노시(市)의 모든 위험을 부수어 버리며 이런 극도의 위기상황속에서 대폭군은 물론 그의 시민들은 모든 마스크와 갑옷을 떨어버리고는 자기네들의 실존인 본래의 모습을 공개한다.
「긍정」이 아니면「부정」의 최후적 결단이 요구되는 극한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신과 운명에 포기하려는 슈페로네의 가식없는 단순성과 희생정신은 대폭군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고백할 수 있는 단순성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위 자체가 유혹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인간의 존엄성을 한껏 모독했던 자기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유혹에 약한 존재였음을 깨닫게된다. 한날 보잘 것 없는 근로자인 슈페로네로 인해 대폭군은 영원한 질서 속에서 성스러운 것을 볼 수 있는 보다 드높은 규정에 도달하게 된다.
카프카의 인간들은 복잡한 미궁으로 인해 절망과 희의 속에서 실종, 좌절, 변신 내지 난파되었으나, 베르겐그륀의 대폭군과 그의 시민들은 위협과 좌절에 신의 의지에게 단순히 자기자신들을 포기함으로써 극한상황에서의 위기를 극복한다. 베르겐그룬은 복잡한 미궁속에서 신의 실제성인 대지에 충실함은 물론 신의 의지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현대적 파멸의 위기를 그복할 수 있다고 겸손한 언질을 던진다.
또 하나의 다른 가톨릭 작가인 슈테판 안데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써 베르겐그륀의 가톨릭적 문학사상을 결론지어 준다.
『신은 이 세상이 불안전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한 것이다. 우리는 신의 유토피아인 영원한 질서이다.그러나 생성(生成) 되고 있는 미완성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김광요ㆍ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