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일곱 살 때 그 애는 이미 내 우주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에게서만 나는
묘한 냄새 같은 것이 있다.
집의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사랑에 둘러싸여 자란 사람은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그런 동류의 냄새를 기막히게도 잘 맡아낸다.
항상 외로움에 둘러싸여 자란 그 애는
내 냄새를 그렇게 맡고 내게 다가왔었다.
그 애는 또래 애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도
항상 어딘가 혼자인 듯 겉도는 면이 있었다.
나름 성격도 밝고 여자 애건 남자 애건간에
그 특유의 싹싹함으로 손쉽게 구워삶는 타입이었지만
정작 집에는 항상 혼자 돌아가고
남들 다 있는 핸드폰 하나 없이
항상 주말을 혼자 나는 그런 아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애는 결코 가난한 집 자식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 낡은 지갑 안에는
천원짜리 몇 장, 동전들과 함께 꼬깃꼬깃 접힌
편의점 영수증 따위만 어지럽게 굴러다녔지만
그 아이 아버지는 이 지역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으며
그 애의 어머니는 중학교 선생님 출신으로
근처의 나름 이름있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소위 여사님이었고
두 살 차이나는 그 애의 여동생은
피아노 전공으로 근교의 학생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고 다닌 장래의 기대주였다.
그 애는 내게 혹은 친구들에게
그런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지역 외곽에 있는 그 으리으리한 3층 주택 대신에
학교 근처에 조그만 자취방을 얻어 살았다.
3평이 좀 안 되는 그 습기찬 방에서는
가끔씩 곱등이도 튀어나오고 소위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도 심심찮게 기어나와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 애는 그런 벌레 따위보다
자기 가족들을 더 무서워했다.
성적 학대는 아니야. 맞고 자란 것도 아니야.
그래도 나는 우리 집이 너무 외롭고 무서워.
.
.
.
다가오는 그 애와 어렵사리 친구가 되고
어느 누구도 사귀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그런 것과 다름없는 관계로 발전하며
나는 그 애의 자취방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가끔은 학원까지 빠져가며 두드렸던 문이지만
사실 그 안에 들어가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등을 돌아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그 애는 티비를 봤고
내가 그 애의 만화책들을 읽으며 낄낄대고 있으면
그 애는 내가 빨아 놓은 제 빨래들을 갰다.
어쩌다가는 동네 비디오방에서
오래된 DVD들을 잔뜩 빌려와 보기도 했고
그러던 도중에 서로에게 기대어 발바닥을 서로 맞춰 보고는 했다.
나는 그 방에서 그 애와 키스를 하고 마침내는 그 애와 잤다.
미성년이라는 죄의식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까지 어떤 성적 경험도 전무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거 같다.
성관계 혹은 순결에 대한 어떤 명확한 개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딱히 그것들이 무섭지 않았고
그냥 연인의 사랑에 있어서의
당연한 수순을 밟는다는 느낌으로 그 애에게 안겼다.
지금 돌아보면 올바른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후회는 않는다.
사랑했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억에 있다.
그 애가 내 처음이라는 게 좋았다.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지만
어떤 관념적인 첫 번째가 아니라 몸을 섞음으로서
그 애가 정말 실체적인 기억이 되어
내 몸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게 좋았다.
.
.
.
그 애는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고
열일곱 겨울에
학교 숙직들의 샤워실 수건걸이에 고요히 목을 맸다.
1.6미터도 채 안 되는 그 높이에서
180을 웃도는 그 애가
그 낮은 곳에 목을 매며 얼마나 발악을 했을지
난 가끔 그 고통의 순간을 상상하고
또 곱씹어 보고는 한다.
어떤 말도 남기고 떠나지 않았지만
난 그 애 가족들도 끝내 밝혀내지 못했던
그 애의 자살 원인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그건 그 애가 처음 내게 다가왔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같은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외로운 냄새.
오직 느낌으로만 알아챌 수 있는 것들.
기억에는 영속성이라는 게 있어
나는 그 애가 떠난 뒤 몇 년이 지나고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이 지났어도
아직 제대로 남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상실의 고통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갔다 믿었어도
비슷한 향수 냄새를 맡거나
툭 튀어나온 목의 결후 같은 걸 바라보다가 보면
그 사소한 요소들이 바늘처럼
내 기억의 주머니를 툭 터뜨려
나로 하여금 그 이성과 그 애의 얼굴을
겹쳐보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 내가 누군가를 또다시 사랑하는 게 무서운 건
내가 열일곱 살에서 영원히 멈추어버린 그 아이를
아직껏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이 트라우마를
똑바로 직시하고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는 이상
열일곱 겨울에 못박혀 있는 내 어떤 부분이
영원토록 성인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나 역시 알기 때문이다.
𝚎𝚗𝚍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원래있던 글!
둘다 분위기 진짜 존나 오진다..
미친....둘이 하나 더 찍어줘...현대물로..
와 나 이 글 첨보는데 이런 건 진짜 누가 쓰는걸까?? 넘 궁금 완전 찌통이다
이 둘 무조건이야 다시 안 만나면 나 똥쌀거야ㅜ
글 너무 잘봤어 글쓴아ㅠㅠ아 마음아프다...
너무 좋다ㅠㅠ
이거 실화야?아님 걍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야?
미친 무슨 글이야 너무 좋아,,
너무 잘어울린다 ㅠ
와 사진 진짜 적절하게 잘쓴다
우와..이거 책이야..? 아 떠도는글.. 더보고싶다..
눈물난다ㅜㅠ
와 나 진짜 이 조합 너무 좋아,, 제발 둘이 뭐라도 같이 찍어줬으면🥺
너무좋다 ㅠㅠㅠㅠ
작가님 ㅠㅠㅠㅠㅠ
글 좋다
대박....
너무 좋다..
좋다
너무 좋은데 ㅠㅠ
배경음악 기억난다....
지우지 말아주라...;-; 너무 좋다🥺
와 대박...
좋다...
와,,,와,,,,,와 진짜 대박
와 오졌다 진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