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기로 서울시립대… “인상 필요” vs “학생 부담”
도입 12년째, 찬반 의견 격돌
총선-대선마다 여야 공약 경쟁… 2012년 박원순 시장 때 시행
시의회 권력 바뀌자 지원 삭감… 학생-교수 “싼 등록금 좋지만
시설 열악-연구 투자 악영향”… 시립대, 정상화 공론委 가동
9일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정책 재검토 회의가 열린 동대문구 시립대 본관 앞에 시립대의 상징인 장산곶매 조형물이 보인다. 2012년 도입된 ‘반값등록금’은 최근 서울시의회 지원금이 삭감되면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서울 시립대 제공
《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본관에서는 2012년부터 12년째 시행 중인 ‘반값등록금’ 유지 여부를 놓고 학교 내외 관계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회의의 공식 명칭은 ‘서울시립대 등록금 정상화 공론화 위원회’. 올해 5월 첫 회의에 이은 두 번째 회의다. 위원회는 교수와 재학생 등 학내 위원 5명, 서울시 및 시의회 관계자, 재정·회계·법률 전문가 등 총 18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반값등록금 유지를 원하는 측에선 등록금 인상 찬성(46.7%)과 반대(47.9%) 의견이 비슷하다는 학교 측의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학생 의견이 과소 대표됐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설문은 올 2월 시립대 재학생, 학부모, 졸업생, 교직원, 시민 각 2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학생 대표 위원은 “반값등록금은 정권과 관계없이 이행돼야 할 서울시와 학생들 간의 약속”이라며 “학생과 소통 없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등록금 인상에 찬성하는 외부 전문가 위원은 “학교 재정을 고려할 때 국립대 수준의 등록금 인상을 피할 순 없다”며 “다만 학생이 감내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공약으로 시작된 ‘반값등록금’
반값등록금 논의의 시작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장학금을 늘리고 사립대 민간 기부를 활성화해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교육비 부담 반으로 줄이기 대책안’으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전체 대학 등록금 중 3조 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일부를 다른 방안에서 찾으면 등록금을 반액으로 줄일 수 있다”며 힘을 보탰다. 이에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학 선(先)무상교육제’로 맞불을 놨다. 실제론 졸업 후 등록금을 갚아야 하는 ‘후불제’ 성격이었지만, ‘무상’을 키워드로 대학생과 학부모 표심 잡기에 나선 것이다.
2007년 대선 후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선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 반값등록금 논쟁을 다시 촉발한 것 역시 정치권이다. 2011년 재·보궐선거,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은 반값등록금을 포함한 ‘무상복지 시리즈’를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도 이에 맞서 반값등록금을 재추진하려다 내홍을 겪었다.
결국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듬해인 2012년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면서 반값등록금은 현실화됐다. 200만∼300만 원가량이었던 서울시립대 한 학기 등록금은 인문사회계열 약 102만 원, 공학계열 135만 원 등으로 줄었고, 올해까지 12년째 동결됐다. 올해 서울시립대 학생 1인당 평균 연간 등록금은 약 239만 원으로 사립대 평균 757만3700원, 국·공립대 평균 420만5600원에 크게 못 미친다.
●경쟁력 떨어지고 학생들 “시설 뒤처져”
10년 넘게 지속된 시립대 반값등록금 정책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면서다. 시의회 권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갔고, 서울시의회는 올해 시립대 지원 예산을 서울시가 제출한 577억 원에서 100억 원 삭감했다.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의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춘 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예산 삭감을 주도한 국민의힘 소속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반값등록금 시행 후 서울시립대의 경쟁력이 악화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의 세계대학순위에서 서울시립대는 2012년 500위권에서 2022년 800위권으로 밀려났다. 서울 소재 대학의 평균 휴학률(22.9%)보다 높은 시립대의 휴학률(27.9%)도 반값등록금의 폐단이라는 게 김 의장의 주장이다. 김 의장은 “등록금 부담이 적으니 ‘반수’를 위해 거쳐 가는 대학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대학이 돼 버렸다”며 “반값등록금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시립대 내부에서도 반값등록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총학생회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817명 중 61.4%가 ‘반값등록금이 향후 교육의 질이나 학생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2016년 박원순 시장이 ‘무상등록금’을 시행하려 하자 학생 다수가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다.
9일 시립대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체로 반값등록금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등록금을 올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문사회계열 19학번인 김모 씨는 “입학 성적이 비슷한 학교들과 비교했을 때 다양한 강의 개설이나 시설 개선 면에서 뒤처진다고 느낀다”며 “적절한 비용을 내고 그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계열 A 교수는 “학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사립대라면 ‘반값’ 인하의 체감 효과가 컸겠지만, 이미 국공립대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 서울시립대가 굳이 반값등록금 정책을 펼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도시과학대 B 교수는 “당시에도 교육비 투자가 줄어 우수 교원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 교육의 질이 악화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는데, 반값등록금 시행 후 기자재 교체 등 연구 투자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 외풍’ 우려도… “학생 피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측에선 일부 지표에서 학교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를 반값등록금에서 찾아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공학계열 C 교수는 “줄어든 등록금 수입을 시에서 보전받았기 때문에 학교 교육비 투자 여력엔 큰 차이가 없었다”며 “다만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곳에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검토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미 학교의 대표 브랜드가 된 ‘반값등록금’을 굳이 없앨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무학과 4학년 이모 씨는 “등록금 부담이 줄어들면서 그 돈을 해외 연수나 여행에 쓰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친구들이 많다. 아르바이트 대신 공부할 시간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인상 찬반 양측 모두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학교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것이다. 반값등록금의 시작도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이었는데, 폐지 역시 정치인들의 입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다. 최근의 반값등록금 논란도 ‘박원순표 정책 지우기’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시립대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외부 자극이 정체된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고, 지금 학교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맞다”면서도 “시의회가 예산 100억 원을 깎으면서 당장 그 피해를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예산 삭감에 맞춰 올해 살림을 줄였다. 슈퍼컴퓨터 등 실험기자재 확충비 40억 원, 운영지원비 및 강의실 공사비 36억 원, 장학금 17억 원, 비전임교원 인건비 6억 원가량이 감축됐다. 서울시와 시의회는 이달 의회에서 삭감 예산을 재편성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학교 측도 구성원들의 정확한 의견 수렴을 위한 추가 설문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