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2024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뉴욕의 상황이 심각했을 때입니다. 한국에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다행히 저는 큰 어려움 없이 팬데믹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텍사스에 토네이도와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비바람이 있었습니다. 뉴스를 접한 분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텍사스가 워낙 큰 지역이기에 제가 속한 동네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강풍으로 ‘전기’가 나갔습니다. 전기가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답답한 것이 많았습니다. 서랍을 열어보니 초가 있어서 급한 대로 불을 밝혔습니다. 다행히 전기는 3시간 있다가 복구되었습니다. 전기는 늘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공기와 같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우리의 생활에도 큰 불편함이 있을 겁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포스의 불덩이를 훔쳐다 인류에게 전해주었고, 그 불로 인해 인류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기만큼 현대의 인류 문명을 만들어 낸 에너지도 없을 것입니다. 전기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모든 걸 아시는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도, 들의 꽃도 다 먹이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기 때문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많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소의 고삐에 달린 줄을 잡고 걸으면 커다란 소는 아무런 저항 없이, 어린아이 뒤를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면 재물, 권력, 업적은 마치 소가 어린아이를 따라가듯이 주어질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느님의 뜻은 찾지 않고 먼저 재물, 권력, 업적만을 쫓기에 재물이라는 램프 안에, 권력이라는 램프 안에, 업적이라는 램프 안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3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3가지 소원은 아니지만 3가지 질문에 충실한 사람은 3가지 소원이 아니라, 원하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할 일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이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1997년 8월과 9월에 두 분의 여성이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한 분은 시골의 소녀에서 영국 황태자의 아내가 되었던 ‘다이애나 황태자 비’였습니다. 다른 한 분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마더 테레사는 더욱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외모, 막강한 권력, 엄청난 재물을 지녔던 분은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 갑니다. 주름진 얼굴, 가난한 삶, 겸손한 마음을 지녔던 분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있습니다. 인생은 늘 밝고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련의 때에는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그 힘을 더불어 사는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한 마음,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이 땅은 곧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열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인은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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