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 최후 맞은 ‘수학 천재’ 폭탄테러범
잔인한 폭탄테러범인가, 기술 문명의 위험을 경고한 선지자일까.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81세 남성이 10일 사망하며 남긴 질문이다. 1978∼1995년 과학기술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과학자를 포함한 다수에게 16차례 폭발물 소포를 보내 26명의 사상자를 낸 시어도어 카진스키. 암호명 ‘유너보머’로 불리는 그는 1996년 체포될 때까지 17년간 미국인들이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의 악명을 드높인 건 천재적 두뇌다. 평범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지능지수(IQ) 167로 태어난 카진스키는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하고 25세에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최연소 교수로 부임한다. 대학원 시절 동료 학생들은 “우리가 간신히 문법을 배우는 동안 카진스키는 시를 쓰는 식이었다”고 회고했고, 박사 논문을 심사한 교수들은 “이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수학자는 10명 정도일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2년 후 교수직을 내던지고 몬태나주 외딴곳에 오두막을 지어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카진스키는 살인을 상상하고 폭발물을 만들며 모든 과정을 암호화된 숫자로 일기장에 남겼는데 이를 분석한 심리학자들은 그에게 조현병 증세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젖먹이 시절 병원에 장기 입원하면서 어머니와의 유대를 형성하지 못해 도덕 기준과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다. 천재성도 소외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는 “너무 외롭다. 아무도 날 아껴주지 않는다”고 썼고, 뉴욕타임스는 그가 거쳐 갔던 7개 주를 취재했는데 그의 친구를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카진스키가 현대문명을 거부한 예지자로 부각된 건 1995년 검거 직전 신문에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게재하면서다. 그는 ‘환경 파괴와 기술로 인한 소외가 극에 달했으니 현대 생활의 사회적 산업적 토대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언문은 국내에도 번역본으로 출간됐고, 2018년 두 번째 책 ‘반기술 혁명’이 나왔다. 출판사의 홍보 문구는 이렇다.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 천재가 광기 어린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인터넷의 폐해가 커지면서 카진스키를 ‘사상가’로 추앙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그의 사망 소식에 “그가 옳았을지 모른다”는 트윗을 남겼다. 하지만 카진스키 스스로도 “난 인류를 위해 행동하는 이타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개인적 복수심에서 행동할 뿐”이라고 했다. 천재로 태어나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연쇄 살인을 하고 ‘기술은 인류의 재앙’이라 썼던 그의 다면적 삶은 현대 사회가 갖게 될 병적인 징후들을 앞서 보여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