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초 시집 『까치독사』
다시 살 수 없는 유일한 생,
정감어린 토속어로 노래하는 삶의 그 특별한 정경
산과 산 사이 작은 마을 위쪽
칡넝쿨 걷어낸 둬뙈기를 둘러보는데
밭의 경계 삼은 왕돌 그늘에 배 깔고
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 마리
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
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내 낌새를 살핀다
누군가에게 되알지게 얻어터져
창자가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데
꺼낸 무기라는 게 기껏 제 목숨뿐인 저것이
네 일만은 아닌 것 같은 저것이
저만치 물러난 산그늘처럼 무겁다
—「까치독사」 전문
1998년 《시안》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지역 문단에서 활동해온 이병초 시인의 세번째 시집 『까치독사』가 출간되었다. 토속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질박한 언어로 일상의 특별함을 노래하며 ‘오래된 새로움’의 묘미를 보여주었던 두번째 시집 『살구꽃 피고』(작가 2009)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추상적인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언어, 표준어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지역어를 살려 쓰는 자신만의 색채가 도드라진 시세계를 활짝 펼쳐 보인다. 감칠맛 나고 정감어린 “우리 말씨에 엉겨 번지는 사람 냄새”(시인의 말)가 은은하게 퍼지는 정결한 시편들이 뭉클한 공감을 자아내며 아늑하게 와 닿는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절로 우러나는 시가 “‘까치독사’의 치명적인 독 같은 노래와 한몸이 되어 절정의 가객으로 빛나는”, 우직한 “전라도 사나이의 징하디징한 순정의, 사랑의, 열혈의”(박남준, 추천사) 시집이다.
저 초록색 갈피를 뒤적거리다보면 그 속엔 알 품는 까투리가 친정집 주소 적으려다 솔가지 못 빠져나간 반달을 베낄 것 같고
축축한 겨드랑이 말리며 열차 바퀴 소리를 가만가만 재우던 채송화는 어디에 피었나 깜짝 마실 나왔다가 연둣빛 부리를 내민 옥수수알을 반갑게 쪼아댈 것도 같고
—「봄산」 전문
문신 시인이 발문에서 밝혔듯이, 이병초 시인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복기하기’라는 의미로서 무언가를 베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눈곱도 안 뗀 어린것의 눈망울 같은”(「풍경 속의 그늘」) 삶의 정경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소나무 그늘도 솥 걸었던 자리도 없어지고/ 삐비가 허옇게들 쇠”(「삐비꽃」)어버린 지난 시절을 복기함으로써 과거를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폐와 심장 어디께 팍 짜부라져 있을 목숨”(「빛나는 시절」)으로 현재를 살아가면서 “배도 안 딴 희뜩희뜩한 기억들이 날것으로 뒤엉켜”(「편지」) 있는 삶의 내력을 되짚어가며 “공동변소 같았던 날들” 속에서 “때론 흉터가 끼닛거리였”(「소서(小暑)」)고 “사람 몸같이 따순 게 없다”(「새소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
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
—「써레」 전문
시인은 또 “어떤 놈 후리러 왔냐는 삿대질에 몰려 누런 백열전구 아래 빨래처럼 널브러졌던”(「만남」) 들몰댁, “새벽까지 쫄쫄이 패 말린 꾼처럼 눈 깔고 살았”(「저녁나절」)던 영호 성, “육이오 때 맞은 총알들이/여태 허벅지에 백혀 있던 즈아부지”(「입관(入棺)」), “인민군 들이닥쳤을 때 구장질 했다고 총살 직전까지 갔다는 외할아버지”(「겨울밤」), “행주를 쥐어짜듯 볼에 팬 반달을 지우며 창밖 나뭇잎들 휘감고 도는 바람 소리에 한눈파는”(「군산집」) 군산댁처럼 곡절 많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육성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애틋한 마음으로 노래한다. 이러자고 시인은 문득문득 “눈물도 따스했던 그 봄날” “압구정동 봉은사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나는 카수가 되고 싶었다”(「색소폰 소리」)고 지난 일을 되새기며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즈아부지 즈아부지
아덜떨이랑 시렁배미 눈곱배미
억척겉이 지어낼 팅게
눈 펜안히 감으시소잉
몸땡이는 캄캄허게 식었드래도
귀는 열어둔다는디 즈아부지
시방 내 소리 듣고 있지라
입때껏 뼈 빠졌어도
요게 머냐고
술에 곤죽이 되어가꼬
대문간에 고꾸라질 적마다
차라리 디지라고
칵 디저불먼 부좃돈이라도 벌제
무신 년의 복이 요로코롬 휘어졌디야
막 쏘아붙인 거 참말로 미난허요
그거 내 분에
내 숨넘어간 소리였응게
고깝게 생각허덜 말고
후제 거그서 만날 때까장
펜안허소잉
(…)
거그 가먼
징글징글헌 농사 안 짓는당게로
지게바작 우그 거름찜
암디나 부려불고 가소잉
새벽일에 골병든 즈아부지
고생 많었소잉
—「입관(入棺)」 부분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큰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끝전에 뒨전거렸던 자리”(「마늘」)이거나 “맨살에 와 닿는 실바람에 화악 쏠리던 시절”(「산문(山門)」)이거나 가끔은 “윗니 드러내놓고 웃던 꽃시절”(「문신」)을 못내 그리워하며 아득한 추억에 마냥 젖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앞이 너무 잘 보여서 앞이 캉캄허”(「군산집」)고 “살아갈수록 뒤가 허한”(「만남」) 현실로 돌아와 “풀 말고도 뽑아버려야 할 것들”(「그」)이 너무 많은 세상을 탄하면서 “남들 쉴 때 나도 쉬는 아름다운 세상”(「빛나는 시절」)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만두피같이 얇아진 마음 더는 터지지 말자고”(「답장」) 다짐하면서 “코끝이 시려도 해 뜨는 쪽에 머리를 두”(「독방」)고 “오지디오진 세상”(「군산집」)을 야물게 살아가는 것이다.
바닷속으로 터널도 뚫는 시절에
어떻게 304 명이 바닷물에 갇혀 떼죽음당할 수 있느냐고
파도는 제 몸 이랑 이랑에 번뜩이는 촉기를
비수처럼 꺼내어 들고
저 뒤에서부터 몸을 날려
산산이 박살난다
이게 나라입니까? 우리가 먹잇감입니까! 팻말에 적힌 고교생의 글씨가 바위를 내리찍으며 박살날 때마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세월호 참살’이라고 피 마르는 팽목항
—「참살(慘殺)」 부분
끝으로, 시집을 일별하면 알 수 있듯이 이병초 시인은 지역의 고유한 토속어를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 ‘깜밥’(누룽지), ‘티끄락’(티끌), ‘달구새끼’(닭), ‘말캉’(마루), ‘놋달챙이’(끝이 닳아서 무뎌진 놋숟가락), ‘소캐’(솜), 솔갱이’(솔가지) 등 생활 언어로서의 방언의 말맛을 충분히 살려낸다. 「입관(入棺)」 「윷놀이」 「군산집」 등은 특히 주목할 만하거니와, 그중에서도 표준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순전히 구어로만 대사를 꾸민 「윷놀이」는 익살과 해학이 어우러진 판소리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걸쭉한 입담이 구성진 그의 시에서는 “돈도 빽도 없는 것들이 여그 좆 빨러 왔냐”(「저녁나절」), “양놈덜은 똥고녁으로 붙어먹것소잉?”(「윷놀이」), “좆심으로 안되먼 혓심으로 붙어봐야 허능 게 인생 아니겄어?”(「군산집」) 같은 육담도 외설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따듯한 정감을 안겨주면서 오롯한 시어로서 빛을 발한다.
으런 야그허는디 워떤 시러베아덜놈이 흔 삼베바지 불알 삐지디끼 요렇게 삐드러짐서 걸레방구 뀌고 지랄이냐잉 가래침으로 마빡을 뚫어버릴 팅게 허고 자픈 말이 새벽 좆겉이 불퉁불퉁허드라도 쪼매 참어라잉
머라고라? 쑤꾸 들어간 것까장 삼만원이 걸린 윷판인디 시방 우아래 따지게 생겼어라? 옛날얘기 꺼내는 놈치고 제 집구석 부잣집 아닌 놈 웂고, 미나리 새순 겉은 첫사랑에, 니롱내롱 외입질에, 지까짓 거시 열일곱명허고 맞짱 깠다는 칫수 아닌 놈 웂다더니 워너니 아재도 그 칫수라닝게 단박에 다섯 모 걸은 따논 당상일 것잉만, 내 참 드러서 똥 쌀 자리가 웂당게
—「윷놀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