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말씀 / 열왕기상 19:1-21
요절 / 열왕기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오늘 말씀은 사명을 감당한 후 낙심한 엘리야를 찾아 회복과 희망 그리고 다시 일어나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낙심합니다. 일이 잘되다가도 어떤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닥쳐 곤두박질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낙심될 때, 어떤 일을 하다가 좌절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의 이야기가 아합에 의해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세벨이 노발대발했습니다. 엘리야로 말미암아 바알 선지자가 다 칼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세벨이 칼을 빼어들어 이번에는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고자 맹세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 긴급수배 전단이 쫙 부쳐졌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을 갔습니다. 국경을 넘어 유다로 들어갔고 유서깊은 땅 브엘세바로 들어갔고 거기서 사환을 남겨두고 자신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자 함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광야에서 엘리야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고백했던 그대로였을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마저 생명을 위해 쫓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특별한 열심을 다해 달렸는데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그래도 엘리야는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카락처럼 부수수한 로뎀나무를 발견하고 그 아래 쉬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야의 로뎀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 이 로뎀나무 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로뎀나무 카페 로뎀나무 펜션 심지어 아주 깊은 산골의 전원주택 이름도 로뎀의 집이란 이름으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이 바로 이 로뎀나무입니다. 그 만큼 로뎀나무는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보거나 들어 본 사람들은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 이름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낙심하여 광야로 들어가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기도한 후 그 아래에서 지쳐 잠을 잔 나무입니다. 제가 찾아보니 영어로는 broom tree 라고 번역되었는데 우리말로는 빗자루나무입니다. 사막 지역에 잔가지가 많은 대신에 잎은 많지 않은 그런 나무입니다. 우리가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었듯이 유대인들이 이 나뭇가지를 꺾어 빗자루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나무가 바로 로뎀나무입니다.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가 이 나무 아래까지 와서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갈멜산 위에서 하늘의 불을 청구한 엘리야가 도망자가 되어 스스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신세타령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절망하고 낙담했을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피곤하여 잠도 쏟아집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이대로 자신은 천국으로 갔으면 하는 그런 순간일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생존해나가야 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는 절망과 낙심 속에서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절망과 낙심의 때는 다 있습니다.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우선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천사를 보내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군대있을 때 위출혈로 군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군 장교 몇 분이 문병을 와 먹을 것을 사주고 또 필요한 경비를 주고 갔습니다. 그가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 저는 그가 지금까지도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와서 저를 위로 하고 갔는데 참으로 저에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5절을 보면 천사가 와서 자고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깨운 후에는 자신이 준비한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것을 먹고 마신 후에 또 다시 잠을 잤습니다. 또 천사가 와서 그를 깨우고 똑 같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힘을 얻어 가고자 한 곳으로 온 힘을 다해 나아갔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십 주야를 걸어 들어갔습니다. 사십 주야를 어떻게 갔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성경에 그것에 관하여는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천사가 준비한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갔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준비해준 그 음식물이 도망자가 된 엘리야에게 힘의 원천이 되었다는 뜻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실 한 가지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습니다. 호렙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만난 거룩한 산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2,285미터의 높이의 거대한 산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산입니다. 엘리야가 북쪽 갈멜산에서부터 도망하여 유대광야를 통과하여 사십 주야를 걸어 마침내 이 산에 당도하였습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세벨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특히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머물렀다고 한 것을 보면 그 굴에서 자신의 몸을 숨겼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겁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자신의 사정을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굴에 나가서 산에 서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을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굴 어귀에 서 있는데 먼저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진 후에는 불이 일어났습니다.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불이 있고 난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소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굴 어귀에 섰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이요 지금 함께 하신다는 확신의 음성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그를 찾아와 주시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15절에서 16절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주권자를 바꾸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역사의 선봉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람의 왕으로는 하사엘을 준비셨고 북이스라엘의 왕으로는 예후를 준비하셨고 또 다음 세대의 선지자로는 엘리사를 준비해두었으니 엘리야로 하여금 그들의 머리에 기름을 부우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지금 이스라엘 땅에 엘리야만 남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용사들이 칠천이나 남아 있다고 강한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엘리야는 아마 자신만 목숨을 바쳐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손해 의식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나만 왜 이렇게 희생하는가? 왜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칠천 명이나 되는 순수한 증인들을 숨겨 놓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믿음의 사람들을 숨겨두시고 그 남은 자를 통해 구속역사를 이어가십니다.
호렙산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새로운 사명을 받은 엘리야는 먼저 엘리아를 찾아가 그에게 겉옷을 던져 그를 다음 세대의 선지자로 부릅니다.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엘리사는 열 두 겨리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던 농부였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겨릿소를 취하여 잡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순종하여 엘리야를 따라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낙심하여 도망자가 된 엘리야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 면에서 때론 우리도 로뎀나무 아래에서 재충전하며 또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결코 낙심치 말 것을 한 과부의 한 맺힌 기도의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힘없는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가만히 계시겠냐며 결코 낙망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도와주시는 것처럼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흩어져 사는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샛별처럼 떠오르기까지 숙고하고 주의하라고 권면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반드시 희망이 있고 반드시 생명이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요절 12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경주UBF이모세 2019.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