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나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관광정보에 밝지 못하니 혼자 찾아다니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즈음 교육적이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추억이 될만한 테마여행과의 만남이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일요일이면 질퍽하게 늦잠 자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우리가족에게 기대와 설렘이 더욱더 빨리 눈이 떠지게 하는 일요일로 바꿔진 것이다.
9월 28일 일요일 아침, 오늘은 강진으로 생태체험을 가는 날. 8시30분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출발하여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자 누렇게 익은 황금들판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올망졸망한 산들이 차창에 스쳐가면서 가을 들녘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 불교 미술의 백미 무위사
벽화를 보기 위해선 법당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종교적인 굴레를 떠나서 경건한 곳에 들어가는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에 태어나 처음으로 불교 방식의 절 법으로 경배를 드리고 두 손을 합장했다. 어색한 내 태도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은 진지하게 따라서 그대로 했다. 무위사 에서 500년 전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불교미술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다. 무심하게 지나쳤을 비석 하나에서도 교수님의 설명이 곁들어지니 그것들이 살아서 새롭게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 숲 체험 - 숲 해설자
무위사 자연관찰로 앞에서 숲 해설자 분들과 만났다. 어른과 어린이로 나뉘어 소그룹 숲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내 곁에 있기를 원해서 어린이 그룹에 속해서 숲 체험을 하게 되었다. 숲 속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금방 숲과 동화되었다. 해설자 분이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속에 바구미의 알이 들어있다 라고 하자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숲 여기저기에서 도토리를 주워와 실제 보여달라고 했다. 구멍난 도토리의 반을 자르자 오동통하게 살찐 애벌레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아이들은 아주 큰 보물을 발견한 듯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숲 해설자 분이 들려주는 풀꽃들의 유래와 전설, 살아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스님의 일화를 들려줄 때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살아났다.
숲의 소중함과 자연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 우리 땅에 살고있는 우리 것에 대한 보존가치 등을 강조하셨다.
■ 무덤이 있어 아름다운 집
점심은 허브 향이 가득한 집에서 퓨전 한식요리를 먹었다. 주인 분의 푸짐한 인심과 좀 더 색다르고 새로운 조리법을 시도하는 모습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식사 후 식당주인 분의 안내로 저수지에서 건져낸 어린아이의 무덤, 주인 없는 처녀무덤, 주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개(메리)의 무덤을 자신의 집 뜰에 만들어 놓았으며, 고아로 자라나 얼굴도 모르는 부모의 가묘까지 만들어 모셔놓고 낳아준 은공을 기리는 색다른 집에 가게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도 소홀히 하는 요즘 세상에 연고도 모르는 유골까지 거두어 모셔놓고 정성스레 가꾸는 이의 말씀을 듣고 싶었다.(무덤 가꾸는 주인은 부재 중)
■ 퇴동마을 입석상 & 황대중 장군과 말 무덤
일명 ‘도깨비 바후’라고 불리는 퇴동마을 입석상. 교수님은 입석상 설명에서 아이들이 지루해 할까봐서인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을 흉내내 보라고 하셨다. 시범맨들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모두 크게 한번 웃을 수 있었다. 각자가 상상하는 도깨비의 모습을 그리면서 말이다. 무위사 미륵부처 조각상에서도 느꼈지만 투박하고 꾸밈없고 솜씨 없는 듯 다듬어진 입석 상에서, 난 더 진한 감동과 그 시대를 살았던 서민층의 신앙생활과 소박하고 간절한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용상리 구상마을에는 황대중 장군과 말 무덤이 있었다. 좋은 일에 끼우기엔 버거운 무덤을 또 만나니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황대중 장군이 하늘이 내린 효자로 효성이 지극하여 자신의 왼쪽 허벅지 살을 베어 모친의 병을 낫게 한 그 유명한 분이라는 것과 효건(孝蹇), 충건(忠蹇), 양건(兩蹇) 양건당(兩蹇堂)이라는 단어들이 이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장군이 남원성 싸움에서 전사하자 그의 애마가 주인의 시체를 구상리 까지 가져왔고 황장군의 장례가 끝난 3일 후에 죽었다한다. 애마의 눈물겨운 충정에 감복해 ‘양건당애마지총’이란 말 무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 와보랑께 박물관<강진병영>
우리 아이들은 이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 한다. 엄마인 나에겐 익숙하고 어린 시절에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이 즐비했지만 아이들에겐 참으로 신기한 옛것들이었나 싶다.
전라도 사투리를 수집하고 공부하신 분인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즐비하게 “무담시 찌새붕께”,“뜽금없이 보둠아 부요”,“오매 사삭스렁거”....... 시선 닿는 곳이면 만날 수 있는 전라도 사투리와 주인 분이 젊은 시절 썼던 물건들과 기회 닿는 대로 모았다는 물건들이 박물관처럼 가득 쌓여 있었다.(사실은 박물관이다) 주인 분의 배려로 350년 된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서 부추 전을 먹으면서 전라도 사투리 강의를 들었다. 잘 달구어진 팬에 한 국자 떠 넣어 노릇노릇 부쳐낸 전을 한 입에 쏘옥! 구수한 입담소리, 들판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 잘 익어 고개 숙인 벼이삭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 시골풍경이 담긴 한 폭의 그림 속으로 우리가 들어왔는데도 자연은 우리를 넉넉하게 받아 들였다. 단감 따기 체험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지었다.
이번 여행은 그 고장을 사랑하고 그곳을 지키면서 잊혀진 것들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가꾸어 가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달리는 차 속에서 창 밖을 보았을 때 또 한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월출산 봉오리 봉오리에 솟구쳐있는 바위들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열렬히 우리들을 환송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똑바로 아무리 쳐다봐도 눈부시고 뜨겁지 않는 태양,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석양의 붉은 노을이 한없이 충만하게 나를 만족시켰다.
첫댓글 강진생태학교 강진군농촌관광경영인협회 연락처 433-3377 016-242-8801
참 맛있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