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날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이다. 민재와 혜미의 가슴에 똑같이 새겨진 나비문신은
그것이 박제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강렬
하게 암시한다. 더 큰 문제는, 영화 [나비]도 날지 못하고 그렇게 박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비극적 결말로 최루성 눈물을 뿜어내려는 멜로 영화로 기획되었지만 [나비]는 김현성 감독
의 야심이 가득 찬 작품이다.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위악적 사회를 고발하려는 사회성 영화
의 단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거대한 역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위악적 사회를 동시에 고발하면서 그 속에서 희생되는 남녀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펼쳐 보
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은 웅대했고 스케일은 크게 가려고 했지만, 결과는 개인과 집단이 부딪쳐서 조화
롭게 미학적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닥터 지바고]도 러시아 혁명의 과도기에서 몸부림
치던 남녀의 사랑이야기였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남북전쟁의 격랑 속에서 피어나는
러브스토리가 우리를 더욱 감미롭게 했었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러브스토리들,
가령 [카사블랑카]를 비롯해서 근래의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작들을
꼽을 수 있다.
[나비]의 역사적 배경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기였던 1980년이다. 신군부가 집권하고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으며 소란스러워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직폭력배 사기꾼 부랑아 등
이른바 사회악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 특수훈련을 시켰다. 일반인들과 격리된 그곳에서 엄
청난 인권유린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초법적으로 살해되고 고통받았다고 알려져 있
다.
우리 영화사상 본격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삼청교육대 이야기는 그 자체가 비극적 역사의 산
물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끌어내기에는 최적의 소재
가 될 수도 있다. [나비]의 민재(김민종 분)는, 가령 지방 세차장에서 일하다가 출세 하겠다
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조폭의 일원이 된 [게임의 법칙]의 용대처럼, 성공해서 폼 나게 1
년 뒤 돌아오겠다고 애인 은지(김정은 분)에게 큰 소리 치며 지방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조폭 조직에 들어가지만, 주먹에 눈물이 너무 많아서 그 세계를 떠나, 다시 제비가
되어 캬바레에서 유부녀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텝이 너무 눈물이 많아 제대로
여자를 유혹해서 돈을 털지도 못한다.
민재와 혜미가 다시 만나기까지 영화는 코믹하게 빠른 속도로, 그러나 좌충우돌 우왕좌왕
전개된다. 도대체 장르를 짐작할 수도 없고, 영화적 호흡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조폭 이야기
인가 했더니 제비가 되고, 제비인가 했더니 삼청교육대로 끌려간다. 장르를 갖고 시비걸 생
각은 없다. 장르의 대통합이 유행처럼 번지는 퓨전 비빔밥 짬뽕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한 가
지 장르의 법칙을 고수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야기 전개의 상투성이다.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어
떤 [신동아]나 [월간조선] 같은 시사 월간지나 아니면 [야담과 실화]류의 주간지 뒷 페이지
근처에서 읽은 것 같은 냄새를 솔솔 풍기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김민종의 연기는 진지하고
온 힘을 다해 몸바쳐서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온다. 김정은 역시 [재밌는 영화]
를 찍어서 [가문의 영광]을 잇기 위해 [나비]처럼 훨훨 날려고 필살의 개인기 코믹 연기를
마다하고 눈물 펑펑 흘리며 비장의 최루성 멜로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너무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상투적이며 관습적 코드로는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감독도 제작자도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몰랐나보다. 은지가 허대령
(독고영재 분)의 첩 혜미가 되어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할 때부터 우리는 눈치챌 수 있다. 더
구나 허대령의 심복 황대위(이종원 분)와의 복잡한 애증관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면, 어 이거
아닌데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히려 [나비]를 가장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들은 삼청교육대로 끌려온 민재의 동료들이다.
음기운 양기운 어쩌고 하면서 현란한 수사학으로 강간을 합리화하는 머리 벗겨진 감초 연기
의 도사(엄춘배 분), 어제는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다가 민재의 발차기 한 번 보고 기겁해서
내일은 형님으로 깎듯하게 모시는 도철(이문식 분), 그 외에도 광팔, 돌배 등이 머리 빡빡
깎고 열연한다. 차라리 그쪽에 힘을 집중했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
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나비]의 문제는 역시 시나리오다. 삼청교육대를 소재로 한 권재우 원작을 김현성 감독 본인
과 [국화꽃 향기]를 각색한 김희재, 그리고 송민호 등 3명의 작가가 각색을 했지만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했던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인이다. 영화의 첫 출발은 역시 좋은 시나리오라
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편당 시나리오 고료는 왜 안오르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