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산행
춘천 굴봉산(395m)
한번쯤 길 잃을 각오는 해야
"어~어! 문 닫힌다. 빨리 내려!"
청량리역에서 1시간20분 걸려 도착한 경강역. 어느새 열차는 학생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역에서 내리기 위해 일행은 그들 사이를 헤치며 나와야 했는데 내리기 바로 직전, 기차는 문을 굳게 닫고 가차없이 출발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문 옆의 비상벨을 누르고 손잡이를 당겨봐도 소용없었다. 취재팀은 울며 겨자먹기로 강촌역까지 가야 했다.
"녀석들 참.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많이 탄거야."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아! 이 친구들, 학교 기숙사로 다시 복귀하는 날이네요."
제때에 내리지 못해 울화통이 터지긴 했으나 통로 곳곳에서 쭈그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날 경춘선 열차 안의 분위기는 다른 날과 사뭇 달랐다. 여행객들에 의한 낭만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했다. 발 디딜 틈 없는 객실의 모습은 영락없는 서울 출근길의 그것. 그러나 서정적인 차창 밖 풍경 덕분에 분위기는 활기차 보였다.
현재 경춘선은 단선으로 남춘천에서 청량리로 가는 열차와 청량리에서 남춘천으로 가는 열차가 함께 다닌다.
올 12월, 이 단선은 폐쇄되고 복선전철화가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수원, 천안, 신창까지 전철을 타고 가듯 춘천까지도 전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폐선철로 주변의 관광화사업이 본격화 되고 있다.
"여기 강촌역을 숙박시설로 만드는거야. 저 건물 모양 좀 봐. 이쁘잖아. 저 밑으로는 레일바이크가 다니게 하는거지. 그렇게 하면 여기 대박 날 텐데. 이거는 노다지야!"
"안 그래도 가평역에서 김유정역까지 테마열차, 레일바이크 운행하기로 했답니다. 거기에 맞춰 역도 다시 리뉴얼 한다는데요."
강촌역에서 내린 한국철도산악연맹 구조대 김윤수 대장, 오병건 부대장, 고양차량기지의 이준호(41세)씨가 정겨운 역사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한다.
굴봉산의 들머리는 경강역 바로 앞. 그러나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으니 게획이 한참이나 틀어졌다. 하는 수 없이 택시ㅐ를 잡아타고 다시 경강역으로 이동한다.
"아! 기사님. 경강역 지나서요. 여기, 백양1리 마을회관 앞으로 갑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거기서 산행을 시작하자고."
경강역 맞은편 도로로 진입해 서천초등학교를 지나자 옥수수밭 너머로 정체불명 신축 중인 건물이 보인다. 산속에 '폭' 하고 들어앉은 폼이 마치 메뚜기를 연상케 한다.
"엇, 저기가 새로 지어지는 역인가요?"
"예. 경강역을 대신할 겁니다. 굴봉산역이에요. 새로 신설된 철로는 터널을 많이 지난다고 하네요. 그래서 예전에 경추ㅠㄴ선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낭만이 반감될 것 같아요. 지하철처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서호성(53세) 기사 역시 이설된 철로와 신역사가 익숙하지 않은지 섭섭함을 드러낸다.
굴봉산역을 지나 5분쯤 더 들어가니 백양1리 마을회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한적하기 그지없다. 잠시 동안 주변을 돌아보며 굴봉산을 찾는다. 특별한 산세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안내판이나 표지기 또한 전혀 없어 일행 모두 당황한다. 이리저리 헤매다 지형도에 표시된 도치교를 찾아 민가로 들어선다.
"오늘 영 수상해. 아무래도 길 찾다가 고생 좀 할 것 같은데."
"역 이름을 굴봉산역으로 지었다면 이정표 하나쯤 있어야 할텐데. 이상하네."
별장처럼 보이는 통나무집을 지나니 곧 계곡을 낀 갈림길이다. 때마침 배낭을 멘 사람이 보여 황급히 뛰어가 길을 묻는다.
"산길은 나도 잘 몰라요. 저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고개가 나올건데요. 그쪽이 아마 굴봉산하고 연결된 능선일거에요."
마을 주민 정기철(75세)씨의 설명에 따라 계곡을 건넌다. 이윽고 취재팀은 희미한 산길을 따라 울창한 원시림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계곡이 흐르는 가운데 등산로는 제법 평탄하다. 앞서가던 김대장은 나뭇가지를 꺾어들고 거미줄을 헤치며 걷는다.
"푸드득. 후다닥"
"깜짝이야! 노루가 나를 보고 환장을 하면서 도망가네."
20분쯤 들어왔지만 표지기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뚜렷한 등산로가 없어 계곡을 거슬러 전진한다. 잠시 후, 아까부터 끊어질 것 같았던 길이 드디어 방향을 잃고 흐트러진다. 모두들 우왕좌왕 길을 찾기 시작한다.
"계곡 따라 끝까지 올라가 보죠. 지형도에는 바로 위가 능선이니까."
"아니야, 저기로 가보자. 저기 소나무숲이 길이 좋은데. 그쪽으로 능선에 올라보자."
길이 엇갈리듯 사람들의 의견도 갈리기 시작한다. 이럴 땐 가장 가까운 능선으로 올라치는 것이 상책. 그나마 오르기 편한 왼쪽 소나무 숲길로 방향을 잡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한다.
20분쯤 지났을까. 사람소리가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휙, 탁" 하는 소리, 골프장이다.
"엇! 그린 아니야. 여기까지 올라와 버렸네. 골프장이 그새 더 커진 건가?"
다들 의아해하며 푸른 잔디밭 위에서 굴봉산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근처에서 골프를 치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방향을 물어도 묵묵부답. 위험하니 얼른 내려가라는 핀잔만 듣는다.
다시 모인 취재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다음, 지도를 펴고 굴봉산 능선을 향해 북쪽으로 전진한다. 혹시나 날아오는 골프공에 부상을 당할까 싶어 그린의 모퉁이를 따라 조심조심 이동한다.
10분쯤 지나니 앞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난다. 위험해 보이지만 그 옆으로 살짝 돌아서 오르기로 한다.
절벽 옆에도 여전히 길은 없다. 온 몸을 붙잡고 늘어지는 나뭇가지와 풀숲을 헤치며 바위벽 왼쪽으로 기어오른다.
"그쪽에 길 있습니까?"
"길이 아닌데요. 갈 만 합니다. 얼른 오세요!"
"자. 천천히. 천천히. 시간 많으니까 안전하게 오르자고."
오병건 부대장과 이준호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찾아 나아간다. 잠시 후 "하이고, 여기부터 제 길인가 보네" 라는 오병건 부대장의 외침에 일행 모두 안도의 숨을 쉰다.
위로 난 길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솟아 있는 가파른 코스. 그래도 여태까지 지나온 길보다 다니기가 수월해 별 문제없이 오른다. 봉우리 하나를 넘자 아래 계곡과 이어진 안부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아하~ 여기가 원래 등산로였구나.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거지?"
"아까 마을 어르신 만났을 때 계곡을 건너지 말고 바로 위쪽으로 올랐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어르신 뒤쪽으로도 샛길이 이어져 있는 걸 봤거든요."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해! 아이고 참."
"모두들 군말 없이 그쪽으로 가길래..."
널찍하고 평평한 굴봉산 정상. 표지석이나 안내판은 없었다. 대 여섯 개의 표지기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나마 그곳이 의미 있는 곳임을 표시하고 있었다.
정상 부근 굴 9개는 찾을 수 없었다. 교묘하게 숨겨진 군 시설물이 동굴인 양 자리잡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경강역-(40분)-도치교-(40분)-안부-(5분)-굴봉산 정상-(30분)-196봉-(30분)-임도
경춘선 이설작업으로 인해 경강역 바로 앞에 굴봉산역이 신축중이다. 이에 따라 춘천시 남면을 대표하는 산 중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나 아직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들머리는 경강역 근처와 도치골 중 어느 곳으로 올라도 상관없다. 경강역에서 오르는 길은 긴 능선 탓에 오름길이 다소 지루할 수 있다. 돟치골로 오르면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표지기나 안내판이 없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도치교를 건너면 산으로 들어가는 외길이 이어지며 통나무집을 지나 계곡을 사이에 둔 갈림길이 나온다. 계곡을 건너지 말고 곧바로 위쪽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오른쪽 계곡길은 등산로가 이어지지 않는다. 계곡을 타고 능선까지 올라서면 강촌리조트 골프장이다. 골프장에 올라서더라도 다시 하산하지 말고 그대로 북쪽 능선을 향해 간다. 커바란 바위절벽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산길은 표지기를 따라가면 된다. 중간에 로프 구간이 있어 주의를 해야 한다.
*교통
청량리역에서 경강역으로 가는 무궁화호가 하루 5회(07:55, 11:10, 14:30, 16:10, 17:50, 19:30) 있다. 1시간 25분쯤 걸리며 일반 4,200원이다. 경강역은 간이역이라 자주 정차하지 않으므로 가평역이나 강촌역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강촌역에서 경강역까지 10분쯤 걸리며 요금은 12,000원 정도. 강촌콜택시(033-261-5959). 춘천 시내에서 경강역을 거쳐 백양리로 가는 86번 버스가 하루 5회(05:45, 08:40, 12:40, 16:45, 19:45)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경강역 부근의 펜션과 민박집 등 숙박시설이 많다. 간이역펜션(263-5939), 강촌리버빌(263-8135), 강촌백두산민박(263-0298)이 있다.
경강역 부근에 경강손두부(263-1944)가 맛있다. 두부찌개와 손두부, 깔끔한 반찬이 일품이다. 그외에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정호닭갈비(263-2823)가 있다.
*볼거리
남이섬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있는 남이섬은 본래는 섬이 아니었으나 청평댐 건설로 인해 물이 차 만들어진 북한강의 섬이다. 남이섬 선착장에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면 이 섬의 이름이 유래된 남이장군의 묘소가 있다. 이곳 남이섬에는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밤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의 숲과 각종 놀이시설, 숙박시설, 동물원, 식물원, 유람선까지 완벽하게 조성되어 있는 종합휴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운치를 간직한 곳이다.
강촌역~경강역 강변길 코스는 강촌역에서 100여m쯤 가다가 좌회전한 뒤 기찻길 밑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보던 한강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연인과 가족들이 자주 찾는 코스로 편도 7~8km 정도의 거리며 왕복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강촌 챌린저(산악자전거대회) 코스'는 44km 임도다. 다른 곳에 비해 산길이 넓고 경사가 심하지 않지만 초보자에겐 힘들 수 있다. 산 중간의 문배마을에서 쉬어가면 된다.
문배마을에서 구곡폭포로 이어지는 지름길로 내려올 수 있다.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야 하므로 조금 힘들다.
글쓴이:윤성중 기자
참조:굴봉산
참조:철도산행 춘천 굴봉산
참조:철도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