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방명주(北方明珠) - 대련
짙은 안개 속으로 대련항이 서서히 나타날 무렵, 아침 식사를 마쳤다.
날씨가 좋기로 유명한 대련이건만, 갑판에 나서자 말자 등줄기에 땀이 쏟아진다.
무더위에 바람도 잦아드나 보다.
배가 만원이다 보니, 하선을 하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미리 메모해 둔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반갑게 민박집 아저씨가 마중 나온다.
흑룡강성 목단강 출신의 재중 교포이다.
재중 교포라고 하면 빨리 떠오르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조선족이라고 하면 쉬울 것이다.
차를 보니 도요다(豊田)이다.
대련에서는 가장 유명한 민박인데, 자수성가란 사자성어를 잘 설명해 주는 분이다.
우리네 말을 자세히 보면 참 재미있다.
신사대주의 때문인지, 미국에 사는 교포는 재미교포라고 부르면서 깎듯이 대한다.
재일교포도 재일동포라고 말하면서 존중해 준다.
그러나, 중국에 사는 교포는 조선족이라고 부르면서 다소 깔보는 사람들이 많다.
재중 교포들이 가난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조선족이라고 불러도 우리는 동포나 교포라고 불러야 옳다.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휴가철엔 민박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약삭빠른 중국 여관들이, 관광객이 많은 휴가철엔 갑자기 바가지 가격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또, 우리 민족이 하는 민박집에 가면, 1일 2식 정도는 우리식단이 나온다.
느끼한 동북 여행을 앞두고, 우리 밥상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 중국 여행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것이다.
배나 비행기가 도착하면 여기 저기 민박집들에서 호객하러 나오는데, 무조건 따라가면 위험할 수도 있고 아주 열악한 곳일 수도 있다.
미리 지역의 민박집을 검색해 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원래 대련보다는 여순이 더 유명했다.
러시아 통치 기에는 아르투르 항(Порт-Артур)으로 불렸고 후에 일본 통치 기에는 료준(旅順)으로 불렸다.
아르투르라는 이름은 영국 해군 중위 윌리엄 아서(William C.Arthur)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아서 중위는 자신이 지휘하던 부서진 선박을 수리하기 위해 이곳에 정박하였다. 구미 열강은 이 아서 중위의 이름을 딴 지명을 채택하였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소련의 통치를 거쳐 마침내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1950년 다롄 시 등과 뤼다(旅大) 시로 합쳐졌다. 1981년 시 이름이 다롄 시가 되면서 다롄 시 뤼순커우 구가 되었다.
청일전쟁(1894년 ~ 1895년)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 4월 17일)으로 몰고 간다.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대만과 요동반도를 일본에 양도하게 되었다.
요동반도에는 뤼순(Arthur)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나 불평등한 이 조약은 당시 열강의 견제를 받게 되는데 3국 간섭이다. 러시아, 독일 제국, 프랑스의 서방 3개국은 일본에 경고하여(1895년 4월 23일) 요동반도와 여순항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만주를 조차하기에 이르고, 독일은 교주만(현재 칭다오), 프랑스는 황포강 하류(현재 상해)를 사실상 조차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러시아가 만주 전역을 조차하게 된 것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 이외의 부동항을 염원하던 러시아가 남하하여 하얼빈에서 여순항까지 철도를 부설하게 된다. 그러나, 의화단의 난으로 대련역과 여순역이 불타자 이를 구실로 여순항을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1904년 청일 전쟁으로 기고만장해진 일본은 만주에서의 러시아의 전횡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1904년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郷 平八郎)는 여순항을 공격하는데 이것이 바로 러일전쟁의 시작이다.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승리하여 일본이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지금도 일본은 이 지역을 잊을 수 없는지, 이 곳을 거점으로 동북 각 지역에 상권을 뻗고 있다.
마쓰시다(松下)전기의 큰 공장이 여기에 있다.
일본인들이 주로 사는 까닭에 도시는 비교적 깨끗하고, 물가는 비싸다.
곳곳에 일본 요리집이나 술집이 많다.
멀리는 고조선 시대부터 가까이는 청나라 때까지 우리 민족의 삶터였는데, 근세에 이렇게 참혹하게 주인들이 바뀌었다.
대련을 방문할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 있고, 동북 3성의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시내 중심의 중요한 지역에는 우리 교포들이 거의 독점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 3성에서는 가장 기후가 좋고 깨끗한 곳이라서, 대련에 사는 것이야말로 동북3성 주민들의 로망이다.
내몽고쪽으로 가는 열차표를 구했으나 불행히 침대칸은 없다.
앉아서 가는 좌석도 한두 장 달랑 남은 판이라 31일 아침에 떠나는 표를 샀다.
중국도 여행 산업이 활발하여, 여행사들이 침대칸 표를 싹쓸이한다는 후문이다.
열차표를 살 때 실명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도 알 만하다.
24시간을 앉아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하다.
여러 모로 알아봤지만 결국 잉주오(硬座)로 낙찰되었다.
열차표를 사 놓고, 민박집에 같이 투숙한 여행객들과 함께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