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6. (해남군 민간정원 1호 문가든 )

[월출산여우]

동행 6. (해남군 민간정원 1호 문가든 )




주말 석가탄신일과 월요일 대체휴무일까지 계속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이렇게 밖으로 움직일 수 없는 날에는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해마다 보리 수확철인 이맘때면 미숫가루를 준비하고 탱글탱글 매실이 굵어지면 매실과 복분자 액기스를 담궈 일 년 동안 가족들의 건강식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번거롭게 준비는 하지만 준비하는 마음과 정성만큼 잘 먹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차츰 양도 줄이고 가짓수도 줄일 생각이다. 또한 올해는 남편을 비롯한 아이들의 두피와 머릿결에 좋다는 검정콩과 검정깨 그리고 검정쌀의 비율을 맞추어 만들어 볼 계획이어서 집안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11시 쯤 볕이 들면서 비가 개인다.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어디든 나가보아야 할 일이었다. 이제부터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면 여름이 지나도록 트레킹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반나절이 지났으니 가까운 곳을 생각하다 해남 달마산에 있는 도솔암을 가보기로 한다. 간단히 채비를 하고 나서려는데 마치 아들에게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날이 맑아지니 어디든 떠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함께 하고자 전화를 한 것이다. 아들은 서둘러 집으로 달려와 주었고 우리는 도솔암을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웬걸 한참을 달리는데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가 오락가락 할 때에는 참 그지없이 애매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가까운 카페를 검색하여 차 한 잔 마시고 오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해남군 제1호 민간정원이라는 문가든을 찾았다. 가다가 멈춘 그 자리에서 네비의 안내로 30여 킬로 달리다 보니 작은 저수지 위에 문가든이라는 카페가 들어 앉아 있다. 겉으로는 이런 곳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아심을 무색하게 저수지 뷰를 중심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날씨가 궂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연인들의 도란거림이 오늘의 날씨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문가든은 50여 년 전 저수지 제방으로 토석이 반출된 약 12,000m2의 황폐지를 밭과 과수원으로 경작하다가 집터를 닦고 각종 묘목을 심어 현재의 정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어느 지역을 가도 아름다운 수목원과 정원카페가 있어서 일상의 무료함이거나 자잘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제격이며 누구나 할 것 없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자아내는 시대적 카페 정서가 참 좋다. 이 곳 문가든에도 200여종의 수목과 초화류가 식재되어있어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자연주의 정원으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 여름날 비오면 흑석이 되고 겨울날 눈이 오면 백석이 되는 땅끝 해남의 명산 흑석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비오는 이런 날 '문가든(Moon Garden’에서 저수지와 자연 풍광 속 '멍'타임을 즐기며 힐링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한 자연미를 살려 조성한 이 곳 정원에는 황칠나무와 후박나무 등 200여종의 수목과 초화류가 식재돼 있어 꽃은 릴레이로 피고 지고 계절마다 변화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카페 방향으로의 저수지 둘레 길은 차 한 잔손에 들고 산책하기에 그만일뿐더러 날이 좋았더라면 어디든 앉아도 쉼이 되는 이곳에 아들과 나는 뜻밖의 힐링코스로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각자의 생각으로 멍 때리다가 한참을 함께 걷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그다지 멀리 오지는 않았지만 오는 길에 아들에게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고백처럼 나누며 돌아왔다. 그것은 아들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고 미안해지는 마음을 언젠가는 멍석을 깔아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딸보다는 아들아이에게 많이 소홀했었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나중에 자라서 무엇을 할 것인지 꿈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었고 아들은 오로지 미술을 하겠다는 꿈과 의지가 또렸 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딸아이에게로 더해 졌으며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 나는 딸의 멘토가 되어 주었었다. 그런 반면 아들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많이 소홀했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 결과는 내가 신경 써주지 않았던 만큼 빈자리가 확연하니 가슴이 많이 아프다. 아들아이는 성인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그 무엇으로든 억지를 부려본 적이 없으며 엄마 아빠를 졸라본 적이 없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술을 전공 했던 터라 홍대를 지원했다가 낙방의 고배를 맞이했을 때 재수를 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잠시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단번에 거절했던 일, 아들은 두 번 다시 그 말을 꺼내보지 않고 포기해 주었던 지난날이 내가 평생 아픔이 될 줄은 몰랐다. 미대를 졸업하고도 진로에 관하여 아들아이와 마주 앉아 의논이나 길잡이가 되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 나는 왜 그랬을까? 물론 요즘 젊은이들의 자녀교육이나 환경과 정서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아들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지 못했음에 이러한 미안함을 고백했다. 아들은 괜찮았다고 말한다. 엄마가 아프고 미안한 것은 엄마 생각일 뿐 아들은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다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마음을 전하면서 아들로부터 어떠한 위로의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건만 그동안의 마음이 살짝 치유되면서 스스로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아들에게 멍석을 깔아 마음을 꺼내 놓을 기회를 갖는 것이 아니라 아들은 늘 나에게 기회를 주고 끝내는 엄마의 아린마음을 아들이 치유해주곤 한다.
오늘 비록 고속도로를 달리며 여행의 맛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더욱 소중한 아들의 마음 안에서 나의 안온함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