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를 읽으신 분은 <후서>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기억하실 지 모릅니다.
"애당초 제 원고를 보시고 출판을 주선하여 주신 분은 지금 불교방송의 홍사성 상무님이셨습니다. '일본에 유학 갔다 온 불교학자들이 적지 않지만, 우리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불교를 말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기록으로 남길 만하다"고 하시면서, 어떤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떤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더 보고 다듬은 원고가 그 출판사로 넘어간 지, 1년이 훨씬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출판계약은 하였지만 영업부 쪽에서 도저히 계산이 서지 않느나고 반대하여 책을 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형편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우리 중에 누가 일본불교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까?"(개정판, 288-289쪽)
여기서 그 출판사는 "불교시대사"입니다. 제게 전화로 책을 못 내주겠다고 통보를 해오신 분이 고광영 선생님입니다.
거기 <후서>에서도 섰습니다만, 만약 불교시대사에서 책을 순조롭게 내주었더라면
책장 속에 그 책을 꽂아놓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잡지 "일본불교사 공부방"을 낸다든가, 일본불교사강좌기행을 한다든가, 그 연장선상에서 마침내
이 일본불교사연구소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귀국후 제 전공공부와 연구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속에서 "이삭줍기" 정도로
이 책을 내려고 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고, 책을 못 내게 되자, 저는 그 순간
출판사나 고광영 선생에 대한 원망 보다는
"이 풍토를 갈아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광영 선생은 어떻게 보면, 우리 연구소의 산파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고광영선생의 부탁 --- 그 보다는 홍사성 선생의 부탁 --- 을 사양한 일도 있습니다.
"불교평론"을 창간할 때 입니다. 고광영 선생이 제 연구실로 찾아와서, 편집위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지만,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간곡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때는 전임강사가 처음 되어서 공부에 여념이 없을 때입니다. 시간강사 시절에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한 일이 있었습니까?
밥 먹고 살아가는 일에, 백화도량 운영비 마련에 급급했고, 전국을 뛰어다니면서
천수경 강의를 하기에 바빴던 세월 아닙니까?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보직변경으로 발령내주셔서 교수가 되었고, "월급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양했습니다.
그러고 또 십수년이 지나서, 2008년 겨울인가 2009년 봄인가
다시 "불교평론" 편집위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때는 고광영 선생님이 아닌 분으로부터 청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1월에 "불교대학 부학장" 보직을 하게 되어서, 할 수 없이 다시 "편집위원을 보직 마치고 나서 하자"고 유예신청을 하였습니다.
결국 "불교평론" 편집위원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아닙니다.
고광영 선생이 별세했다고 하니, 그와 나의 짧은 인연이 떠오릅니다. 사실, 저는 고광영선생과는
깊은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다 홍사성 선생님 인연이 깔린 일입니다. 홍선생님은 사실상 저를 키워주신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상가에서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네요.
얼굴이 너무 수척해서 못 알아볼 지경이었는데요. 술을 안 드시던데, 그때는 ---
건강이 안 좋구나, 걱정했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인연을 버릴 줄을 몰랐습니다.
그 분이 쓴 글을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작년 연말에 작고한 안옥선 선생에 대해서 쓴 "추모사"였습니다.
짧게 살고, 한참 일할 나이에 떠나간 도반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쓰시더니
주위에 많은 안타까움을 선사하고는 또 떠나고 말았습니다.
고광영 선생님,
세상에서의 이런저런 인연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마시고
왕생 극락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우리 "일본불교사연구소"도 잘 좀 지켜봐 주십시오.
일본불교 책들도 쉽게 쉽게 출판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갈 테니까요.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합장
첫댓글 김호성 선생님과 인연이 그러했군요. 학문 서적 출판에 열정이 대단한 친구인데 말이죠. 제가 동국대 연구소로 옮긴 후 ... 친구들도 제대로 못보고 못챙기고 살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끙끙 몸살을 앓으면서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제가 인간이 아니라 논문 제조기계인 듯 해서요. 삶이 참 허망한데 말이죠.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마음도 몸도 앓느라고 어제 특강 참석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_()_
저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논문제조기계" 말입니다. 공장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한번 나사 조이면, 금방 또 나사 조여야 할 제품이 다가오고 ---. 동전 넣고 야구공 치는 데 있는 느낌도 있어요. 한번 휘두르고 나면 금방 또 오지요. 야구공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덕에 논문 쓰는 것 아닙니까? 자유로 한가하면 써지겠어요? 우루루 써야지요. 그래서 바쁜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선생님은 논문 이제 거의 다 쓰지 않았나요? 저는 6월에 발표까지 하나 더 해주기로 했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