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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점성술의 종류 Ⅲ. 점성술의 기원 Ⅳ. 점성술과 12宮 Ⅴ. 프톨레마이오스 Ⅵ. 결론 |
Ⅰ. 서론
구약성서의 첫 머리에 있는 모세의 五經 중 마지막 책인 신명기(申命記:Deuteronomy) 4장 19절을 보면
―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민족들이나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
라고 되어있다.
마치 시시껄렁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여타의 찬밥(?) 민족들이나 가지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뒤집어 보면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천체의 숭배나 연구를 인정하기도 한 것 같은 알쏭달쏭한 말이다.
여하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것이 점(占)보는 방법이요, 점(占)에 관한 내용이다.
점(占)을 보는 방법에도 무속인(巫俗人)과 같이 영감(靈感)이나 신(神)의 계시에 의한 방법이 있는가 하면 천체 운행에서 얻어지는 일정한 자료에 의해 법칙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토대로 점(占) 또는 운명(運命)을 예측하는 방법도 있는데, 동양에서는 명리사주학(命理四柱學), 기문둔갑(奇門遁甲) 등이 대표적 학문이고, 서양에서는 점성술(占星術)이 대표라 할 수 있다.
사실 엄격히 따지자면 점성술(占星術)이 서양 것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이론(異論)도 만만치는 않다.
다만 현재에는 동양 3개국 한국, 중국, 일본에서보다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많이 사용하므로 편의상 서양 점성술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나까야마 시게루(中山茂)씨가 쓴 占星術(동서과학史상의 위치)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글이 있다.
― 제 2차 대전 중에 영국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다음과 같은 소문이 떠돌았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占星術師의 말에 따라 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영국군 첩보부도 같은 派의 점성술사를 고용하여 적의 작전을 알아내서 그 虛點을 찌르고 있다.」
戰時中 미국의 전쟁 영화에 히틀러가 점성술을 이용하는 장면이 있었고, 수십명의 점성술사를 고용하였다는 소문이 通俗占星書에 실려 있다. ―
사실 여부를 지금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전쟁이라는 큰 도박을 놓고 그 누구인들 불안하지 않으리요.
히틀러가 아니라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나는 안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아 새국어사전에서는 점성(占星)과 점성술(占星術)을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점성(占星)
별의 모양‧밝기‧자리 등을 보아서 나라나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
점성술(占星術)
별의 모양이나 밝기 또는 자리 등을 보아서 나라의 안위(安危)와 백성의 길흉 및 천변지이(天變地異) 따위를
점치는 술법.
점성(占星)에서는 <천변 점성술>과 <숙명 점성술>을 섞어 설명하고 있고, 점성술(占星術)에서는 천변 점성술만을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사전을 찾아보자.
부산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金勝東씨가 편저(編著)한 《역사상사전(易思想辭典)》에서는 점성술(占星術)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별을 신성시하여 그것이 개인 및 사회생활에 중요한 관련을 갖는다는 신앙에 의거하여 천체 운행의 관찰로써 사상(事象)‧사건의 원인을 찾고 장래를 예측하려는 주술(呪術).
두산 세계대백과 사전에서는 점성술을 어떻게 기술했나 살펴보자.
천체 현상을 보아 인간의 운명이나 장래를 점치는 방법. 고대에는 점성술과 과학적 천문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했다.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인류의 생활은 깊은 관계가 있으며, 비는 동‧식물의 생활을 도와주기도 하나 때로는
푹풍과 뇌우가 되어 공포를 느끼게 하는 등, 모든 자연현상은 하늘(天)이 관장하는 것으로 믿었으므로 하늘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사상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그 변화에 따라 점을 치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바빌로니아의 신관(神官)들이 뛰어난 점성술의 권위자였으며 천공(天空)의 현상과 지상의 일들을 논리정연하게 결부시키는 방법을 정립시켰다. 해와 달의 정연한 운행을 보고 우주에는 법칙과 질서를 지배하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모든 천체는 신성하며 전능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이처럼 점성술이 발달한 바탕에는 천공에 대한 신앙과 더불어 과학적인 천문지식이 필요했다. 이들은 해와 달 이외에도 수성‧금성‧목성‧토성의 5개 행성도 신성한 힘을 지니고 있는 유력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성(恒星)이나 혜성(彗星)‧일식 등, 특수한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갖가지 다양한 점성술이 생겨났다.
바빌로니아에서는 BC.2000년경에 이미 몇 가지의 성좌(星座)를 알고 있었으며, BC. 6세기경에는 황도 12궁(黃道十二宮)의 지식이 완성되었고 이 황도의 지식은 그 후의 점성술에 특히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은 주로 제국과 제왕의 운명을 점치는데 주력했을 뿐 일반 국민은 별로 문제 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점성술이 그리스에 전해지자 BC. 3세기경부터 일반에게 널리 퍼져 개인이 태어났을 때, 또는 점을 칠 때의 천체의 상태를 기록한 호로스코프(Horoscope:점성용 天宮圖, 12宮圖)에 의해 그 개인의 운명이나 장래를 점쳤다.
이 호로스코프에서 황도 12궁의 어느 궁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느냐가 중요한 문제점이었으나, 동시에 행성이 어느 궁에 있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12궁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목성은 재산‧명예‧아름다움을 주고, 이에 대해 토성은 가난 등의 불행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리스에 전해진 점성술은 매우 복잡해져 모든 과학과 깊이 연관되었으며, 행성(해‧달을 포함해서)과 색채‧금속‧각종 동식물과 대응시켰고, 그 대응물은 각각 그 행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연금술(鍊金術)과도 깊은 관계가 생겨났다.
또 인체의 각 부분과 행성을 대응시켰고 때로는 12궁에 각각 인체의 각 부분을 갖다 맞추었으며, 병이나 각 기관(器官)의 이상(異常)은 천체현상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점성술과 아울러 예로부터 하루하루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는 식물이 자라는 기간이라고 생각했으며, 보름달 이후에는 농사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적합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7일마다 흉일(凶日)을 설정한 것은 예로부터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7일 주기의 사상이 후에 칠요일(七曜日)의 바탕이 되었다.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점성술은 인도에도 전해졌다.
황도 12궁과 그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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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12궁의 이름 |
현재의 성좌명 |
계절 |
지배종속 |
성 |
행성 |
한자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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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백양궁 |
양자리(Aries) |
봄 |
지배 |
남 |
화성 |
白羊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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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금우궁 |
황소자리(Taurus) |
여 |
금성 |
金牛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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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쌍자궁 |
쌍둥이자리(Gemini) |
남 |
수성 |
雙子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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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거해궁 |
게자리(Cancer) |
여름 |
여 |
달 |
巨蟹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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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사자궁 |
사자자리(Leo) |
남 |
해 |
獅子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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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처녀궁 |
처녀자리(Virgo) |
여 |
수성 |
處女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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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천칭궁 |
저울자리(Libra) |
가을 |
종속 |
남 |
금성 |
天秤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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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천갈궁 |
전갈자리(Scorpius) |
여 |
화성 |
天蝎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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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인마궁 |
궁수자리(Sagittaris) |
남 |
목성 |
人馬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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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마갈궁 |
염소자리(Capricornus) |
겨울 |
여 |
토성 |
磨羯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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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보병궁 |
물병자리(Aquarius) |
남 |
토성 |
寶甁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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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쌍어궁 |
물고기자리(Pisces) |
여 |
목성 |
雙魚宮 | ||
중국에서는 독자적으로 점성술이 발달했는데 바빌로니아나 그리스의 점성술과 아주 비슷하나 이 두 점성술의 상호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BC. 5세기경에 행성의 운행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행성 중에서는 세성(歲星:木星)을 가장 중시했으며 이 별이 약 12년 동안에 하늘을 일주하므로 천공(天空)이 12등분한 12차(次)의 어느 위치에 세성이 있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점쳤다.
12차는 각각 지상의 나라들과 짝을 짓고 이를 분야(分野)라고 했다. 중국에서도 점성술의 대상은 국가와 지배자였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점성술이 모든 과학과 관계했던 것처럼 중국에서는 음양설 혹은 오행설(五行說)을 매개로 하여 점성술과 모든 과학이 결부되었다. 음양설과 오행설의 발생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아마도 일‧월 혹은 5개의 행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의미에서 점성술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점성술을 뒷받침하는 사상을 친인상관설(天人相關說:漢代)이라고 했으며 이 사상은 그리스의 마크로코스모스와 마이크로코스모스와의 대응과 유사하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의 점성술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서양에서 중시한 황도 12궁에 대해 중국에는 12차가 있는데 12차는 황도가 아닌 적도(赤道)라는 점이다.
서양의 점성술은 그리스에서 아라비아를 거쳐 다시 중세의 유럽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점성술이 오행설로 정형화(定型化)한 데 반해 서양에서는 호로스코프가 널리 행해졌다.
특히 서양의 근세 천문학은 점성술을 타파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독일의 유명한 천문학자 J. 케플러(1571~1630) 조차도 점성술로 생활을 꾸렸을 정도로 17세기까지도 점성술이 성행했었다. 케플러는 행성(특히 화성)의 운동에 관한 3가지 법칙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케플러의 법칙」이라고 한다.
Ⅱ. 점성술의 종류
A. 천변점성술
BC 7세기경의 아슈르바니팔왕의 서고(書庫)에서 나온 설형문자(楔形文字) 점토판(粘土板)에 나타난 점성술 기록과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천관서(千官書)〉라는 장(章)에서 이론이 정리되고, 《전한서(前漢書)》이래 정사(正史)인 《천문지(天文志)》에 나오는 점성술은 그 방법에서나 내용에 있어 아주 비슷하다.
그것은 일식(日蝕)이나 혜성 또는 신성(新星)의 출현과 같은 천변(天變)을 지상(地上)의 사건과 결부시켜 장래의 재앙 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가령 어쩌다가 일식이 일어나고 때마침 지상에서는 천자(天子)가 암살되었다고 하자. 일식이 예측할 수 있는 것임을 몰랐던 고대인은 그것을 천변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상의 사건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다음에 일식이 생겼을 때 또 천자가 암살되리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하여 천변과 지상의 사건간에 상관관계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쌓여 하나의 이론체계를 형성한 것이 천변점성술이라는 것이다.
그 원리는 일기예보와 같은 경험주의에 바탕을 둔다.
천변은 어떤 한 지방의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천변은 어떤 사람에게는 작용을 미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천하 및 국가적 현상이다.
천변점성술의 발상지인 바빌로니아나 고대 중국의 동양적 전제주의 아래서의 점성술은 군자(君子)를 위한 것이었고, 군자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점칠 수 있는 지상의 재앙은 군자와 그 일족(一族)의 죽음, 홍수와 기근, 외적의 침입, 전승전패(戰勝戰敗) 등과 같은 군자의 관심사에 한정되었다.
군자는 그 지식을 독점하려고 하였으며, 점성술사를 높은 보수로 고용하여 자신의 정책 고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점성술은 한 나라의 최고 기밀로써 민간에 유포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상례였다.
천변점성술은 경험주의에서 출발한 것이며, 과학적 천문학의 발달과 함께 일식과 같은 이상현상에도 법칙성이 발견됨으로써 천변점성술이 차지하는 영역은 차차 좁아졌다.
B. 숙명점성술
어떤 일정한 시각(時刻)에서의 천체의 위치나 배치에 따라 개인의 운세를 점치는 점성술을 숙명점성술(宿命占星術)이라고 한다.
이것은 천하나 국가의 사상(事象)을 점치는 천변점성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은 생탄시 (또는 수태시)에서의 황도(黃道) 12궁(宮)의 일(日)‧월(月)‧5혹성의 위치관계를 적은 호로스코프(horoscope)에 의한 점성술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호로스코프는 BC 41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점토판에 나오는 것인데, 체계화되어 융성한 것은 헬레니즘시대이다.
서양 고대 천문학의 집대성으로 알려진 《알마게스트》의 저자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테트라비블로스》라는 점성술 저서가 있어 이것이 현대 서양점성술의 주류인 호로스코프 점성술의 가장 오래된 고전이 되었다.
이에 의하면 천문학은 제1의 과학이고, 천상의 현상이 지상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는 점성술은 제2의 과학이며, 제1의 과학의 응용으로서, 제1의 과학만큼 확실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호로스코프를 그리는 데는 3개의 요소, 즉 ① 생탄시의 12위(位), ② 황도 12궁(宮), ③ 해와 달 등 혹성의 위치가 있다.
12위란 생탄시의 황도를 지평선을 중심으로 하여 12분(分)하고, 제 1위를 생명, 제 2위를 재산이라고 하는 식으로, 점쳐야 할 대상을 각위(各位)에 할당한다.
황도 12궁은 천구(天球)에 고정하여 나날이 회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궁(各宮) 사이에 친소(親疎) 관계가 있다.
그 위에 있는 일월(日月) 5혹성에는 남성적‧여성적이라고 하는 성질이 부여된다. 이 3가지 요소의 관계로 개인의 장래나 성격 등을 상세하게 나타낸다.
호로스코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탄시의 혹성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천문계산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스람 제국의 술탄처럼 자기의 운세를 점치기 위해 천문대를 만들고 천문학자를 고용하여 관측케 함으로써 점성술이 천문학을 육성하는데 공헌한 일도 있다.
천문학자 J. 케플러가 점성술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유명한 예이다.
또한 호로스코프 점성술은 태어날 당시의 천체의 위치에 의해 개인의 운명이 엄밀하게 규정된다고 하는 숙명관과 운명 결정론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천변점성술과 같이 예보(豫報)에 의해 닥쳐올 재액(災厄)을 피하는 방재적(防災的) 의미는 없다.
Ⅲ. 점성술의 기원
고대인들이 하늘에 대한 신앙을 일찍부터 가졌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지만, 문헌을 통해 점성술의 기원을 찾아보자면 BC 1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정착했었던 칼데아(Chaldea)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바빌론의 도시에 있던 신전(神殿)에서 쐐기 문자 서판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서판에는 고대 천문학(점성술의 모체 내지 원형적 상태)에 관한 기록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서양 점성술의 최고(最古) 기원은 칼데아(Chaldea)이다.
칼데아인은 BC 1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정착했었고, BC 625년에 신(新)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워 번영했던 셈족의 한 지류이다.
칼데아의 점성술을 논하기 전에 이 지역 메소포타미아의 상고 역사를 간단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BC 5000년 경 이 땅에 첫 이민이 들어와 셈족과 반(反) 셈족이 서로 혼합하여 최초의 농경사회를 형성했었고, 생활이 차츰 복잡해지면서 BC 3500년 경에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양하(兩河)를 따라 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후 수메르의 도시국가 시대를 거쳐 BC 2350년 경에 셈족인 사르곤 왕이 아카드 왕국을 건설했고 그들의 언어 및 문화가 북(北) 수메르 문화의 일부를 이루었다.
다시 BC 2000년 경에 아라비아를 원주지로 하는 셈계 유목민의 하나인 아모리족이 시리아 방면에서 침입하여 바빌론을 거점으로 하는 소왕국을 세웠으며, 그 6대 왕 함무라비(BC 1792~1750)가 이 지역을 통일하고 소아시아, 시리아, 엘람까지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아무루 왕조(바빌로 제 1왕조)를 이룩했다.
이것이 고(古) 바빌로니아 제국이다.
그 후 아시 BC 1000년 경에 아시리아가 침입하여 니네베를 수도로 하여 BC 606년 까지 이곳을 다스렸다. 아시리아인들은 문명화한 바빌론의 도시와 그 신전에 있던 쐐기문자 서판들을 소중히 보관했는데, 이 서판 중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관련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시리아 왕이었던 아수르바니팔은 자신의 도서관에 초기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그때까지의 점토판 문서들을 모아들였고, 이 때 후기의 텍스트들에서 상당히 자세한 천문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이 시대의 서판들을 번역해보면 점성술사들이 전쟁이나 풍년의 가능성을 예측하여 정기적으로 군주에게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점성술이 초창기에는 주로 천변(天變) 점성술이었음이 짐작된다.
시대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개인의 운명을 중시하게 되고, 수명과 건강과 체질까지도 점성술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리스 사람 히포크라테스(BC 460~377)는 환자의 체질이 출생시의 행성들의 위치와 관계가 있다고 굳게 믿었으며, 자신의 제자들에게 점성술을 모르는 의사는 돌팔이라고 강조하였다.
로마의 시저와 그 지배계층 대부분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서 점성술을 인정하여 그 판단에 귀 기울였었다.
기독교도 신약 이전의 구약 성경 시절에는 점성술을 인정했던 흔적이 많다.
예수 탄생 때 등장하는 세명의 동방박사는 그리스어 원본에는 점성술사로 묘사되어 있다.
― 기독교 자체의 전통에 입각하여 볼 때, 세명의 현인(그리스어 원본에는 점성술사로 되어 있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한 것이 별이었다는 사실, 그것도 중요한 논의의 과제였다. 성령이 크리스트의 탄생을 고지하기 위해 별을 사용하는 마당에 어떻게 별에 대한 연구를 비난 할 수 있겠는가? ―
인도 사상의 핵인 베다(Veda)란 거룩한 지혜, 즉 신의 계시라 생각되었고, 과학조차도 신의 뜻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제사를 계절 따라 바르게 드리기 위해 천체의 운행이 관측됨으로써 천문학이 생겼고, 이 천문학이란 것이 바꾸어 말하자면 점성학인 것이다.
인도의 점성술이 중국으로 넘어와 번역되어 탄생한 학문이 칠정사여(七政四餘)학이고, 나중에 이것이 나뉘어져 간지술(干支術)을 주축으로 하는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과 12궁에 별들을 배치하는 자미두수(紫微斗數)가 성립된다.
Ⅳ. 占星術과 12宮
동양에서도 육임학(六壬學)과 자미두수(紫微斗數)라는 학문에서는 12宮을 사용한다. 참고로 육임과 자미두수의 12궁을 잠시 살펴보자.
A. 육임과 12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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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궁(命宮) |
2. 재백궁(財帛宮) |
3. 형제궁(兄弟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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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택궁(田宅宮) |
5. 자녀궁(子女宮) |
6. 노복궁(奴僕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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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부처궁(夫妻宮) |
8. 질액궁(疾厄宮) |
9. 천이궁(遷移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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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록궁(官祿宮) |
11. 복덕궁(福德宮) |
12. 부모궁(父母宮) |
B. 자미두수와 12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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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궁(命宮) |
2. 형제궁(兄弟宮) |
3. 부처궁(夫妻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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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녀궁(子女宮) |
5. 재백궁(財帛宮) |
6. 질액궁(疾厄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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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이궁(遷移宮) |
8. 노복궁(奴僕宮) |
9. 관록궁(官祿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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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전택궁(田宅宮) |
11. 복덕궁(福德宮) |
12. 부모궁(父母宮) |
동양의 같은 공간에서 발전되어 온 비슷한 학문임에도 12宮의 명칭 위치가 다르다.
이것은 이러한 학문들의 폐쇄성과 자기류(自己流)가 강함을 단적으로 나타낸 좋지 않은 점이라 하겠다.
이것들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겠지만 9宮을 이용하는 기문둔갑을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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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감궁(一坎宮). |
2곤궁(二坤宮). |
3진궁(三震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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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손궁(四巽宮). |
5중궁(五中宮). |
6건궁(六乾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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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태궁(七兌宮). |
8간궁(八艮宮). |
9이궁(九離宮). |
이렇게 낙서구궁(洛書九宮)을 이용하고 있다.
서양 점성술에서도 12궁 개념이 있는데 위(位)라고 칭하기도 하고 하우스(House)라고 부르는데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어떤 의미가 설정된 궁(宮)에 어떠한 별이 비추는가에 의하여 운명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양력 3월 21일~4월 20일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양좌(羊坐)이며, 양좌의 사람은 기력이 충실하고 용감하여 평상시든 어려운 상황에서든 선두에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기질의 소유자이다.”
라고 하는 식의 아마추어적 또는 하수(下手)적인 관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급의 관점이다.
흔히 우리나라에도 쥐띠는 어떻고 범띠는 어떻고 하는 등의 형편 없는 하수(下手)의 관점과 부부궁에 태양성이 있으니 배우자가 강하고 영민하다라는 고급의 관점이 있듯, 서양 점성술에도 하늘과 땅 차이의 관점이 있는 것이다.
Ⅴ. 프톨레마이오스
거대한 점성술의 이론체계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프톨레마이오스(AD. 100~178)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그리스의 천문 점성학자였으며 동시에 수학, 지리, 음악, 광학, 해시계 제작술 등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의 소유자이자 고대 과학의 연구가였다. 그는 자신의 「알마게스트」 속에 300개의 새로운 항성들을 추가했고 행성들의 운행에 관한 설명을 수록했다.
그의 이론은 16세기까지 서양의 천문 점성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 이전의 학자들, 특히 아폴로니우스와 히파르쿠스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체계화한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 시스템’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그 주위에서 천구상의 동심 궤도를 운행한다고 되어 있다. 후일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반전된 이 지구의 중심의 우주론이 그의 점성학 이론을 부당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점성학이 행성들의 실제 위치와는 무관하게 지구에서 본 그들의 방향과 재박궁, 좌상만을 논하기 때문이다.
점성학에 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작업은 「테트라비블로스」로 결실을 이루었으며, 그는 이 논문 속에 고대의 모든 지식을 끌어넣어 그 이론을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좌상은 분류하고 12궁과 행성들 사이의 지배관계를 확립했으며 판단의 기초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 시대 천문학과 물리학의 관점에서 점성술의 작용 기반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내용들이 이 기념비적인 서적의 골자를 이루는데, 천체 역학에 대한 그의 이해가 지구 중심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약간의 기묘한 모순을 범하게 만든다.
그리고 4대 원소의 이론에 기반을 둔 12궁과 행성들의 지배 관계는 현대의 입장에서 볼 때 약간 임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2대 극성에 고나한 그의 이론은 드 보르로 하여금 모든 것을 성(性)의 관점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그를 포로이트에 견주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견을 배제한 서술 방식으로 방대‧다양한 지식 체계들을 계통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공로가 막대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점성술의 올바른 사용법 및 판단에 있어서 경험의 중요성, 피상담자의 교육 정도와 환경 등을 고려할 필요성, 이런 것들을 강조하여 윤리적인 강령을 수립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Ⅵ. 결론
점성술(占星術)도 넓은 의미에서는 역리학(易理學)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주로 서구권에만 전승, 보급되어 왔을 뿐인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 지나친 긍정과 지나친 부정적 입장을 벗어나 다시 한번 투명성 있게 연구 검토하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은 이미 明나라때 《天文書四類》라는 이름으로 《테트라비블로스》를 번역하였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테트라비블로스》의 번역본조차 없다.
너무 학문적으로 후진하여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아! 아름다운 서울의 찬가만을 부를 때가 아니다.
한국의 역학계를 유식하게 르네쌍스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