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지영의 삶과 사랑에 대한 고백, 자기성찰의 기록을 담은 책. <상처 없는 영혼>(1996) 이후 10년 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산문집이다. 기형도의 '빈 집', 김남주의 '철창에 기대어', 자크 프레베르의 '이 사랑' 등 그의 문학적 토대를 이루었던 39편의 시(詩)와 각각의 시편들에서 이끌어낸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나를 모욕하고,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사랑"을 용서한다. "너무 무서워서 늘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나의 길고 길었던 삶", "분노를 일으킬 만큼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인색한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삶과 사랑에 관한 솔직한 고백과 자기성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생의 한가운데에서 상처받은 사랑을 치유하고 세상과 자신의 삶을 향해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민다.
시와 문학을 꿈꿔왔던 시절의 기억, 여성으로서의 삶과 생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 사랑의 상처와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되는 더 큰 사랑과 용서 등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착한 여자>,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는 작가 공지영의 문학적 성취, 그 바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잘못된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나이를 많이 먹은 지금 나는 고개를 저어봅니다. 잘못된 것이었다 해도 그것 역시 사랑일 수는 없을까요? 그것이 비참하고 쓸쓸하고 비참하고 쓸쓸하고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현실만 남기고 끝났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이제 사랑이었다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의 그와 그때의 나를 이제 똑같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똑같이 말입니다.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지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공지영 (작가프로필 보기) - 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1세기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한국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로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상처 없는 영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등이 있다.
오늘은 더 작은 한 방울의 물로 내려 깊이 스미고 싶습니다. 따뜻한 어둠 속에 웅크려 있고만 싶습니다. 언젠가 맑은 햇살 아래 샘물로 솟아오른다든가 강으로 흘러가 바다에 도달한다든가 이런 지당한 생각은 말로 그저 머물러 있고만 싶습니다. - 공지영
공지영 (지은이) | 황금나침반
|
첫댓글 사공님과 대전에서 만났을 때 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한 번 읽고 다시 읽는 중입니다. 밑줄 그어가며..반복을 싫어하는 터이라 거듭 읽은 책은 여태껏 어린왕자뿐이었습니다. 그만큼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은 책이었습니다..다시 한 번 사공님께 감사드리며..한 번 더 읽은 후 독후감을 써보려 합니다...
독후감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