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상하이에서 톈진(청진)까지
그러니까. 중국어4급 자격증을 딴 박경옥(수필가), 이번여행에 유난히 들떠있던 안병옥(수필가), 그리고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 우리 셋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경옥이의 중국어4급 실력만큼의 여행만이면 되었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신나는 좌충우돌을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완벽에 가까운 여행이었습니다. 적어도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는 대만족, 대성공이라는 자축을 한 상태였습니다.
가방을 들고 호텔방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습니다.
“비자가 없어! 분명 여행첫날 여기다 두었는데.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놓고 다니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서 여기 두었는데 어디 갔지?”라며 경옥이가 탁자를 가리켰습니다. 순간 셋은 얼어버린 듯 정적이 흘렀습니다. 비자가 없으면 출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호텔 측과 청소하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른다하니, 우리는 차선책으로 호텔에 투숙할 때 비자를 복사해 놓은 것을 복사해 달래서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공항에선 원본 아니면 절대로 출국이 불가능하다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박경옥, 안병옥 수필가의 휴대전화 로밍까지 정지되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모든 것이 경옥의 휴대폰으로 예약과 길 찾기까지 이루어졌었는데 당황스럽고 난감했습니다. 아, 이게 보통일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휴대폰을 살렸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공항에는 우리 말고도 단체비자를 분실해 아우성인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네요. 고백하자면 그 순간 비자 잃어버린 사람이 우리뿐이 아니라는 것이 잠깐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쨌거나 우린 택시를 잡아타고 묵었던 호텔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여행이 얼마나 완벽했으면 “이거 너무 완벽한 거 아니야? 뭔 사고라도 쳐야하는 거잖아!” 라며 깔깔거렸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말이 씨가 된 겁니다. 아, 사고라면 단지 전철에서 병옥언니와 떨어졌던 5분이 전부였으니까요. 언니 먼저 탔는데, 경옥이와 내가 놓쳐버렸습니다. 방향을 살피다가 그렇게 된 것이죠. 그런데 전철이 얼마나 잘 되어있던지 서울보다 배차 간격도 빠르고, 안내표지가 잘 되어있어서 길을 모르는 사람도 척척 찾아갈 수 있습니다. 언니는 다음 역에서 만났으니 사고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죠.
비자를 분실했을 때, 여기저기 알아본 바로는 증명사진, 묵었던 호텔에서 숙박확인서, 호텔관할에 있는 공안에서 ‘비자분실신고서’를 발급받아, 출입국관리소로, 그리고 영사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영사관에서 비자발급 신청하고 기다리면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빠르면 일주일, 아니면 보름 정도 걸린다니 문제였습니다. 경옥이가 바쁜 일이 있어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게 문제였어요. 방법을 알았으니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병옥언니와 나는 슬슬 농담까지 던지며 즐거워합니다. “더 놀고 싫은데, 이참에 잘됐다. 며칠 더 있다가 가면 좋겠다.”고 속닥거립니다.
저녁을 먹고 공안사무실을 찾아갑니다. 가는 길에 증명사진도 찍기로 했어요. 마침 지하철을 오가며 보았던 증명사진자판기를 기억해냈거든요. 사용방법은 모르지만 눈치껏 돈을 집어넣고 기계에 머리를 들이밀고, 이것저것 눌러대니 신기하게도 사진이 찍혀 나왔습니다. 비록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사진 찍기에 성공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것도 추억이라고 깔깔거리며 인증사진 찍는 언니들을 보고 철없는 언지들이라고 경옥이 야단입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정안사거리를 헤매고 다녀요.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체험이 꽤 즐겁습니다. 거리는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해요. 며칠 헤집고 다닌 덕에 이젠 이거리가 제법 친숙합니다.
길가다 젊은 공안을 만서서 사무실을 물었습니다. 키가 훤칠하니 잘생긴 청년입니다. 친절하게 가르쳐줘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았어요. 우린 짧은 언어와 손짓발짓으로 우리가 처한 입장을 설명하고 서류를 발급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안은 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비자분실신고서’ 같은 것은 발급해주는 일이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법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할 수 없이 호텔서류를 먼저 발급받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출입국관리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공안사무실보다 훨씬 더 엄격해서 말이 통하질 않았습니다. 담당자는 아주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우리는 영사관에 전화하여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담당직원을 바꿔달라기에 전화 좀 받아달라고 하니, 담당자는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리며 다시 자리를 떠버립니다. 최악입니다.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철통같은지, 한마디로 엄청난 푸대접입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영사관으로 갑니다. 가는 내내 경옥이는 ‘곤란에 처한 자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남의 나라에 와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냐고. 영사관은 뭐하는 곳이냐!’ 고 야무지게 따지고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사관에 갔을 때는 우리 일로 하여 회의가 이루어졌고, 때문에 직원이 우리를 만나러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영사관직원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톈진으로 가던지, 사람을 사서 비자를 발급받아 오던지. 둘 중에 선택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비자를 발급받았던 회사와 연결해주고, 다행히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다음날 출국할 수 있게 비행기까지 예약 완료되었습니다. 참고로 중국비자는 모두 톈진에서 발급된답니다. 톈진까지 가는 데는 고속기차로 5시간 반이나 걸린다합니다.
“오우! 가자!”
순간 우리는 기차여행에 꽂혔습니다. 기차요금은 우리 돈으로 1인당 십만 원 정도입니다. 그래도 초고속으로 간다니 다행이고, 기차여행이라 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제 그 기차를 타겠냐싶어 들떴어요. 예기치 않은 여행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영사관직원은 상하이기차역으로 가라고 했는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홍차이역에 내려졌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왜 그곳으로 갔는지는 아리송합니다. 아, 거기서도 표는 끊을 수 있지만, 기차는 상하이역에서 타야 한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짐꾼이 수레를 들이대고 우리의 짐을 마구 실어대네요. 영문도 모른 체 수레를 따라가고, 표를 끊는 곳까지 알려 주겠다며 어찌할 새도 없이 마구잡이로 실고 갑니다. 수레를 세우니 무조건 돈을 달라네요. 그래서 짐은 병옥언니가 지키고, 경옥이와 나는 그 남자를 따라 표를 끊으러 갔습니다. 이건 완전히 눈뜨고 코 베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돈은 들었지만 무사히 표를 끊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상하이역으로 왔습니다.
경옥이는 휴대폰으로 톈진에서 묵을 숙소를 찾느라 눈이 빠질 지경인데, 우리는 구경거리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숙소를 찾던 경옥이 “언니들! 비자 잃어버린 사람들 맞아? 환전이나 해와!”라며 언니들의 등을 떠미네요. 휴대전화에 환전이라고 써서 제복 입는 청년에게 보내주니 아주 친절히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환전자판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환전자판기요. 생소했습니다. 우리는 돈이 안 나오면 어쩌나 싶어 일단 1만원을 넣고 이것저것 눌렀습니다. ‘맙소사!’ 돈이 주르르 나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신나던지. 우리는 5만원을 넣고 또 환전을 했습니다. 세상에 기계가 우리 돈을 인식하다니. 새삼 우리나라 위상을 실감합니다. 우리는 자판기 도사가 되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기차는 비싼 만큼 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칸마다 청소하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고요. 화장실 문까지 열어주는 서비스를 해주네요. 큰 가방을 올리지 못해 쩔쩔매니 사람들이 달려들어 도와주고요. 식당 칸에서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예쁜 승무원들은 우리나라 연예인들 얘기에 환호를 하네요. 열풍이 대답니다.
밤11시를 넘기고서야 톈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공항보다도 큰 역사에 놀라 어디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숙소를 찾아야하는 경옥이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또 간당거립니다. 충전소를 물어물어 가던 도중 어디선가 멋진 제복을 입은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약속이 있는지,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면서도 우리를 택시 승차장까지 안내해주네요. 그리고 어느 멋진 아가씨에게 우리를 도와주라며 맡기고 떠납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주소를 내밀면 모두 자신의 휴대폰으로 다시 검색하여,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를 데려다 주라고 하네요. 정말 친절합니다. 아가씨가 택시를 잡아주어 탔는데, 택시기사의 인상이 무섭고 무뚝뚝해 보입니다. 잔뜩 긴장하게 탔는데, 알고 보니 전형적인 남자네요. 그 또한 친절합니다. 택시기사는 주소를 확인한 뒤 정확하게 호텔 앞에 내려주었어요.
우리가 묵을 호텔은 층이 제법 높습니다. 우리 방은 22층이에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저렴한 가격인데 스위트룸입니다. 60평이 넘는 방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대륙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엄청난 규모의 돔으로 된 체육관이 내려다보입니다. 대기오염 때문인지 하늘이 뿌연 것이 좀 아쉽지만요.
톈진은 하루나 이틀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청나라 느낌이 살아있는 고문화거리로 갑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중국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 적당하겠다 싶었습니다. 마음이야 좀 더 머물면서 톈진의 이태리 풍경구역, 청계천 느낌의 허하이강 (河海), 야경의 톈진부두도 가보고 싶었지만, 어젯밤 호텔로 가는 도중에 스치듯 본 원형의 톈진아이와 고문화거리가 전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던 우리들의 상하이여행은 한국사람 하나 없는 기차를 타서 즐거웠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았고, 공안들과 출입국관리원들의 불친절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음에 놀랐음을 짚어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자를 분실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내년 봄, 우리는 쓰촨성으로 갈 것을 약속합니다. 그곳에선 ‘살아보기’를 할 예정입니다. 꼭 가보야 할 곳으로 점찍어 두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습니다.
(2016 리더스에세이 가을호)
(나와 안병옥 수필가)
(내년에 쓰촨성 가는 거다를 외치는 박경옥 수필가)
# 2016년 12월 현재 박경옥 수필가는 쓰촨성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