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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바로 왼편, 예전에 문간방이었을 법한 공간은 현재 사무실이다. 한옥 특유의 개방성이 돋보이는 대청은 오가는
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오픈된 전시실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적 쓰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공간뿐 아니라
전통 한옥 인테리어 방식을 가장 충실히 따른 공간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선비의 청운의 꿈을 지니라’는 뜻에서 천장을 옥색으로 도배한 작은방과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안방이 대표적이다.
환경과 소통하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은 한옥의 가장 큰 미덕이자 현대인을 사로잡는 매력이다. 계절의 변화는 물론이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안마당으로 내려앉는 햇살은 어떤 마감재로도 재현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 인테리어
소재다. 때문에 안국동 한옥은 채광성과 전망성을 극대화한 인테리어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 사무실과 주방은 안마당을
향해 통유리로 마감해 자연친화적인 열린 공간을 실현했으며, 더불어 동절기의 한기를 효율적으로 막아 한옥의 취약점
을 보완했다.
현대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고심한 건축적 아이디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내뿐 아니라 외부 화장실 또한 실용적으
로 설계돼 있고, 다용도실에도 냉·난방기기가 갖춰져 있어 예전 한옥살이의 불편함을 크게 개선했다.
실제로 이러한 한옥 공간의 현대적 재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입소문이 나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북촌에서 한옥 개·보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곳이 살아 있는 지침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안국동 한옥을 짓는 모든 과정은 《아름지기 한옥 짓는 이야기》라는 책으로도 펴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름지기 사람들은 이곳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월요일부터
금요일(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제외)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어수선함과 번거로움을 사무실 직원들 또한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안국동 한옥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 정선(旌善) 전(全)씨 가문의 150년 된 종택을 기증받아 복원한 한옥 문화체험관 ‘함양한옥’
도 있다. 2004년 한창 함양한옥을 보수하던 중에 종택이 전소되어 공사가 일시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아름지기의 사랑, 세계와 통하다
유물 전시 등은 결국 이 단어들로 귀결된다. 바로 ‘사람’과 ‘문화’다.
그렇다면 아름지기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아름지기 소식>에서 아름지기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신연균 재단이사장을 필두로 국문
학의 거목이자 수필가인 이어령 선생, 동양화단의 거장 서세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부인인 정민자 여사가 고문을
맡고 있다. 운영위원진 또한 범상치 않다.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부인 송광자 여사, 신세계
그룹 이명희 회장과 딸인 정유경 부회장, 신라교역 박준형 회장의 부인 정춘자 여사가 활동하고 있다. 문화계 각 분야의
유명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이 구입해 더욱 유명해진 ‘소나무 사진’
의 사진작가 배병우, 건축가 승효상과 최욱,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안상수, 임히주 현대미술관회 상임고문 등 쟁쟁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문화에 대한 남다른 식견의 소유자들이 만났고, 뜻을 모았고,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전, 아름지기 사람들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첫 번째 해외 전시 프로젝트다. 지난 6월 10일부터 21일까지 런던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우리
옷-배자전>을 연 것이다. 이번에도 아름지기 사람들의 뜻은 매우 소박했다. 한국 의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고,
전통문화의 현대적 활용을 제안해보고 싶었다. 신연균 재단이사장은 전시 소개 책자 머리말에 “전통이라는 이름 속에서
놓쳐버리기 쉬운 우리 고유의 미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우리네 문화의 아름다움, 세계에도
통했을까?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화려한 게스트들이 그 답을 대신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촌인 마이클
왕자는 배자의 아름다움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뿐 아니라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대영박물관 고위
관계자, 한국인으로 널리 알려진 로더미어 자작부인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비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아름지기재단은 누구에게나 소통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전통문화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좁히고 열린 문화의 장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문화사랑’이라는 공통분모만 있으면 된다. 재단 관계자는 “이질감을 극복하고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뜻을 전했다.
라이프스타일이 문화의 핵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요즘, 아름지기재단의 우리문화사랑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명쾌하다.
사람이 더욱 사람다울 수 있는 한국적 공간문화 만들기. 그곳에는 잔향 깊은 사람들이 사는 내음이 배어난다. 비 오는
어느 오후, 나무 향 감도는 ‘안국동 한옥’에서 그네들의 향기에 기꺼이 취할 수 있었던 이유다.
/ 여성조선
취재 김정원·송안나 기자 | 사진 신승희, 아름지기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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