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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 1 지형도 도엽명 화천 갈말 일동 포천 성동 서울 김포 개성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산 부근 분수령에서 서남 방향으로 한줄기를 내어 한강과 임진강의 수계를 가르며 흐르는 산줄기로써 백암산 법수령을 지나 휴전선에 접근하면 벌집처럼 요새화 되어 있다는 오성산이 북녘의 척후병이 듯 철책 넘어 대성산은 동장군의 척후병으로 남녘을 지킨다(조석필의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한강의 북쪽 울타리로써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 지나 포천에서 의정부길 여는 축석령을 넘으면 이 땅의 수도가 열린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도봉 북한산 솟구치고 노고산 지나 비산비야의 고양 땅을 누비다가 그래도 아쉬운 듯 견달 고봉산을 빗고 한강 하구 장명산에서 그 흐름을 멈추는 산줄기이다 그런데 실제로 장명산을 답사한 결과 어느 책에서 말하는 채석장이 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고 교하환경이라는 회사가 건축물 쓰레기를 매립하는 매립지이며 (산을 파내고 거기에 쓰레기를 매립하는 것이다 흙팔아 좋고 쓰레기 수거료 받아서 좋고 꿩먹고 알먹고다) 한강 하구에서 공릉천을 타고 한참 내륙으로 들어온 곳 공릉천변 남쪽에 있는 산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그 당시에 수도를 지키는 수호신격인 도봉산 삼각산(북한산)을 산경표에 끌어드리기 위하여 지금의 한북정맥이 된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보다더 산줄기 형태가 뚜렷하여 생활권을 가르는 경계(수도권과 파주권)를 분수령으로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그리 간 것도 같은 생각을 해본다
산경표의 원리대로 한다면 도봉산 오기 전 한강봉과 챌봉 사이에서 서진하는 산줄기를 따라 고령산 개명산 박달산 월롱산 기간봉을 지나 한강 하구에 있는 오두산(鰲頭山) 통일 전망대에서 끝이나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산경표(山經表)에서 확인해 봐도 장명산은 교하 동쪽 3리에 있는 산이라고 표기하고 오두산은 교하 서쪽 7리이고 한수단강합기하(漢水煓江合其下)라고 표기하고 있다 장명산은 교하라는 마을에서 동쪽 즉 내륙으로 3리 즉 1.62km 떨어져 있고 오두산은 교하마을에서 서쪽으로 즉 바닷가로 7리 3.78km 떨어진 곳에 한강물이 여울지는 두 강과 합쳐지는 그 아래에 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예전의 우리나라 1리는 지금의 거리로 환산을 해보면 약0.54km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언젠가는 한번 답사를 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어 2002년 7월 한북기맥이라고 칭하고 답사를 완료 하였다 [신경수님 글] |
★산행코스: 수피령-복계산갈림-복계산4지점(현위치)-△943-x892(이정목)-△953.6봉 전위봉(공터)_실내고개 갈림(임도)
-헬기장-임도-헬기장-△1,151.9-복주산정상(1,152)-복주산1지점(현위치)-하오현(463지방도)-검단동
[산행지도]
이른아침 서둘러 동서울터미널에서 다목리행 버스에 올라 7시 30분 출발했다. 버스는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 도착 이곳에서
승객이 거의 하차한다. 승객 중 한 명과 나를 태운 버스는 56번 국도를 따라 음식점과 군부대가 즐비한 도로따라 실내고개를
지나 다목리 종점에 내린다.
다목리에는 군인생필품을 파는 곳과 상점이 몇 곳 있고 다목보건진료소, 다목초교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보
건진료소 쪽으로 56번 국도로 이어지며 461번 지방도로 따라 상서면으로 이어지게 된다.
군인생필품 파는 가게에 들러 택시운행을 물어 보았으나 사창리에서 오게 된다기에 할 수 없이 보건소쪽으로 걸어 가다 1톤트럭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차는 사창리와 육단리를 오가며 도로관리를 하는 아저씨였기에 더욱 반가웠다.
[수피령水皮嶺]
수피령은 해발 780m고지의 숲을 실어 나르는 고개라는 뜻으로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와 화천군 다목리
를 잇는 국도 제56호선의 고개이다.
대성산전적비에서 숨을 고르며 등산 채비를 한다. 대성산전적비는 1951년 국군2사단 17연대가 대성산 1042고지에서 활동 중인
중공군 제58사단 177연대 병력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피아간에 희생을 당한 전지로 한국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장소이며, 승임
고개, 삼천봉과 비조봉 일대까지 적의 공격기세을 분쇄하였으며 대성산 전투 장병들의 영웅적인 면을 볼 수 있는 한국전쟁의 아
픈 역사를 가지고 안보의 소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북정맥은 남과 북을 잇는 산줄기로서 의미가 크다.
이내 너른 길따라 오름짓을 한다. 수피령 절개지 위 한북정맥 대성산과 적근산, 삼천봉의 철원군과 화천군을 가르는 경계
를 언제인가 걷게 될 날이 오길 기다리는 것은 오직 통일뿐, 배낭끈을 당긴다.
노랗게 피어오른 금마타리꽃이 내 키만큼 쑤욱 올라왔다.
가을이 성큼 문턱에 있는 듯한데 구름낀 하늘은 비를 재촉하는 가 보다.
너른 길을 버리고 왼쪽 산으로 오르면 산에 와 있다는 느낌으로 닿고 재미도 솔솔해지기 시작한다. 북동쪽 산줄기를 보노
라면 대성산(△1,174.7)이 먼저 맞는다.
나무들이 울울창창 1,000미터급 산에 가득하여 오랫만에 산에 왔다는 기분은 배가 된다.
[전망대]에 선다.
바로 코앞에 있는 듯 하늘에 닿아있는 녹색 산들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한눈에 펼쳐진다. 대성산의 산줄기를 눈으로 그어보고
사진의 오른쪽 끝 손톱만큼 보이는 정상이 적근산(△1,078.1)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눈을 돌려 대성산 동쪽으로 근남면과 김
화읍의 이름모를 산들이 즐비하다.
철원은 한국군과 북한군을 드넓은 곡창지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웟지만 결국 그 자리는 철조망에 가려져 DMZ가 차
지했다고 하니 그 DMZ는 남과 북을 갈라 놓았다.
[눈빛승마]
눈빛이라는 이름은 꽃 때문에 붙여졌는데 하얀 꽃이 마치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 핀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고 하여 눈이 더 갔다.
여기에
좁쌀풀,등골나물, 오이방풀, 삽주, 동자꽃 중 오이방풀이 지천으로 피어 꽃 향연이 이어진다. 가는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던
길도 잡목지대의 고목숲의 사잇길을 걷게 된다.
[복계산△1.057.2] 으로 가는 북서쪽 길에도 표지기가 붙고 정맥은 남쪽으로 길을 잇게 된다. 복계산 매월대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과 8의사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이 일대 산촌으로 은거하여 소
일하던 곳으로 복계산 기슭 해발 595m 산정에 위치한 깎아서 세운듯한 40m 높이의 층암절벽(일명:선암)이 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홉선비는 이 암반에 바둑판을 새겨놓고 바둑을 두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던 곳이라 전해오며 그 후 사람들
은 김시습의 호를 빌어 매월대라고 부른다고 하니 언젠가 찾아갈 날 있으랴,
나무와 나란히 혹은 불뚝 솟은 기암을 눈요기하며 길을 따르며
[복계산 1.1im, 수피령 1.9km와 복주산 10.3km]의 이정목을 지난다.
나무와 바위가 어울어져 풍경을 만들고
하늘을 가린 나무들은 녹색터널을 만들어 길을 놓았다.
잠시 조망이 트였다. 복주산(△1,152)같았다.
길은 흰로프줄로 이어져 갔고 기암들이 구경꺼리가 되고 산정보다 산속의 풍경이었다. 또 기암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사면으로
돌아 간다,
[기암]
[기암]
[기암]
[기암]
암릉을 쳐다보며 걷고 어느새 철원소방서에서 세워놓은 현위치 안내판은 '복계산 4지점입니다'와 만나고 '복계산 2.9km, 수피령
3.7km의 온길 과 복주산 8.5km'의 갈길을 알려주는 이정목을 지난다.
[병조회풀]하늘색, 또는 보라색, 흰색 중 보라색이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흔적이 여기저기 목격되며 활엽수가 우거진 곳을 좋아하기에 이곳의 환경이 좋은가 보다. 멧돼지가 파
놓은 땅위 흔적은 살벌하여 눈빛승마와 오이방풀꽃이 채워준다. 그 꽃뿐이랴 둥근이질풀과 미역취까지 길을 열어 주기에 세
상 좋다.
[△943]봉의 삼각점은 수풀은 덮고 있었다.
또 참나무숲 사이를 지나
[복계산 5.8km, 수피령 6.6km와 복주산 5.6km]의 이정목을 지나
복주산으로 가는 이정목은 수시로 복주산의 거리를 알려준다. 5.3km의 이정목을 지나 4.6km의 복주산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목앞에 서면 너른 공터에 이른다. x892봉의 이정목이 위치해 있다. 서쪽 △953.6봉의 전위봉이기도 하다.
너른공터에서 보이는 이름모를 산들의 조망이 터진다. 복주산이 아닐까.
[진지]
공터를 내려서노라면 진지와
진지 위 알 수 없는 용도의 시설물이 있고
로프줄이 길따라 이어진다.
[까실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짚신나물, 동자꽃 등 숲 속의 꽃길를 걷는다. 구름속 1,000m 아래 높은 산들이 오르막 내리막도 별로 없는
자연휴양림이 따로 없는 듯 청량한 기운이 가득 차 있다. 깊섶 그늘을 빠져 나온 시원한 바람이 산길 따라 스치듯 가벼이
불어 온다.
여름이 간다는 것을 알려 주는가 보다.
[복계산 방향 9.2km, 복주산휴양림 2.7km, 복주산 3km]의 이정목 옆에는 철원소방서의 안내판에는 복주산 6지점으로
현위치를 표기하였다. 복주산휴양림으로 가는 길목은 나무계단으로 연결되어 내려가게 되는 갈림 길이다.
나무 숲은 빡빡하지 않고 적당히 나무 간 여유가 있어 보기에 편안하고 걷기 수월하다. 내리막의 급경사도 오르막의 오름짓도
없고 문득 트인 길따라 걷는 산이 산뜻하게 솟았다. 가야 할 길 그대로 앞을 보고 가게 되는 것.
걸음이 천천히 짙은 초록색 기운을 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동자꽃]
역시 그늘지고 참나무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숲 속에서 동자꽃이 홀로 꽃을 피웠다. 예삿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용케도
생명력을 보여주는 근성을 보았다. 이제 얼마 후면 씨앗을 만들고 있을 것이리.
꽃잎이 말라가고 있다.
오르막에 못쓰는 차바퀴를 이용한 길을 따라 오르니
너른 임도따라 내려가면 실내고개에 닿는다. [복주산 정상 2.63km, 복주산 휴양림 3.39km, 실내고개(화천방향)]의 이정목
으로 발걸음도 따라 붙고
백령도 발견 소형 무인기와 파주 발견 무형 무인기를 사진에 담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무인기 발견시 신고 하라는 육군 제6885
부대장의 안내판과 산정에 세워진 시설물 아래 작은 공터를 지난다.
헬기장을 지나면
너른임도의 길로 시작된다.
[짚신나물]이 너른길에 채워져 있고 오이방풀꽃이 피어 보랏빛 향연에 이곳의 아픈 상처의 상흔도 잊고 가는지 모른다.
이정목의 복주산 정상 2.12km를 지나
산사면의 너른 길따라
[나무뿌리의 끈질긴 생명력]과 세월의 흔적 같은 것이 길에 배어 있다.
[헬기장]
둥근이질풀을 만나며 가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발길이 멈춘다. 금마타리가 훌쩍 커서 꽃을 피우고 세멘헬기장 가를 메웠다.
쑥부쟁이도 빛을 발하고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저 산너머 잠곡저수지가 잠시 풍경을 보여주니 그곳의 물안개 장관을 이루는 둘레길을 생각해 본다.
너른길은 오솔길로 바뀌어 복주산으로 남진하면서 철원군과 화천군의 경계를 따르는 길은 똑 같다.
찢기고 찢긴 흔적은 고스란히 거기 있고 북녁이 보일까 모를 복주산의 오름짓은 아마도 철책 너머의 숨결이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주산인가 했는데..
[삼각점]과 짚신나물
다래넝쿨 우거져 있고 삼각점을 지나면서 암릉구간으로 바위와 밧줄로 이어진 길따라 오르고 내린다. 마치 바위는 친구가
되어 철원군 지역의 휴전선 인근 군민들이 훈련을 하려고 하는게 하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어보았다.
[기암]이 하늘로 솟고
기암이 수호신처럼 나를 지켜보이며
기암이 나를 시험하듯 따라 오르라 한다.
복주산에 닿았다. 1,152m의 산정에 서니
하늘에 닿은 산줄기가 흐르는 겹겹의 산들이 흘러가고 있다. 그 중 앞으로 진행하게 될 광덕산이 중심이 된듯 하다. 광덕산 돔
모양의 기상관측소가 보이는 곳 광덕산 정상도 구름속에서는 또렷하지 않았다.
[복주산 정상]의 표지석은 해발 1,152m의 화천군과 철원군의 경계표기를 하였다.
산림청에서 세운 복주산 등산로 안내도의 옆에 앉아 있자니 비가 내린다. 한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이제는 더 잦아져 내린다.
내려 가자.
비 오는 산길은 한결 한적하고 차분하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오르는 길보다 쉬우니 천천히 가자.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을
정도로 나 홀로 걷는 산길에 익숙해져 뱀이 떼 지어 꿈틀거리는 것 같지 않기에 수월했다.
폐타이어를 조근조근 밟아 내려서니
철원경찰서에서 세운 복주산1지점으로 내려 와 있었다.
[한북정맥 (광덕산방향), 복주산 1.84km]의 이정목은 산림청에서 세워 놓았다. 저 높은 가야 할 길 너머로 광덕산이 산뜻
하게 솟았다.
산이 깊으니 골도 깊겠지.
임도에 언제인가 장마비가 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서며 비포장도로여서 내려가는 것보다 오를생각을 더 많이 걱정하게 된다. 내리던 비
도 그치고 자연 그대로의 길따라 걷는 것처럼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더 좋다.
[하오현] 또는 하오고개였다.
하오현에 설치된 6.25전쟁 전투현장 알림판을 읽어보면 우리가 겪지 않은 전쟁을 다시한 번 얼마나 치열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 호국영위 38위 유해와 유품 1,828점을 발굴했다는 알림판이다.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
를 고양시키며 유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리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림으로써 나라 사랑과 호국 보훈의식을 함양케 하고자 국방부, 육군 제2군단. 제15보병사단, 철원군이 함께 알림판을 설
치하였단다.
2차선 포장로다.
하오재 남쪽으로 2차선 포장도로 내리막은 구불거리고 가바우골과 광덕산 그린농원을 지나 463번 지방도로를 걷고 또
걸으며 검단동 공사를 하고 있는 아저씨들을 만나 시간을 죽인다.
혹, 아저씨들 퇴근할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공사장에 세멘을 나르는 차를 타고 사창리 버스정류장에 내려 준다. 아저씨치고 친절했다는 느낌과 고마움에 몇 번
인사하였다.
사창리 버스터미널에서 산행이 끝인가 하면서 배낭을 정리하고 저녁을 대충 먹고 동서울터니널 버스에 올랐다. 생각해
보면
아픈 숨결과 걸었던 산길의 나무와 바위가 교차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