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의 중역이 자신의 승용차 기사를 채용하려고 벼룩시장에 광고를 냈습니다. 이를 보고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썩 생김이 마음에 들고 활기 있게 보여 그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너무 난폭하게 하자 불안이 고조된 중역이 기사를 불러 물었습니다.
“전에 당신은 무엇을 했소?” “트럭 운전을 했습니다.” “뭘 싣고 다니는 트럭이었소?” “벽돌을 날랐지요.” “아, 그랬군. 미안하지만 당신은 해고요. 더는 불안해서 당신이 모는 차를 탈 수 없소.” 이 중역은 다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그는 차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몰고 다녔습니다.
마음이 편한 중역이 느긋하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전에 무엇을 했소?” “트럭을 몰았습니다.” “아니, 무엇을 싣고 다녔길래 이리 운전이 조심스럽소?” “아, 예. 저는 계란을 배달하는 트럭이었거든요.” 당신은 무엇을 싣고 다니고 있습니까? 당신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언행심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내면에 세상만을 가득 담고 있다면 당신의 겉모습을 경건으로 무장해도 세상풍류가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 속에 악을 머금은 이리가 있다면 아무리 철저한 양의 옷을 입어도 표독한 발톱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속사람이 예수로 인하여 거듭났다면 거룩을 가장치 않아도 당신의 표정하나로 하나님의 사람임을 나타낼 수 있고, 건네는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인자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화(化)된 사람은 무표정의 얼굴에서도 온유가 흐르며, 말하지 않아도 감동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외향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난무한 옷차림 속에 정숙이 있을 수 없고, 거칠고 난잡한 말 속에 교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무례하고 교만한 사람 속에 예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예수를 모신 사람은 예수의 형체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욕당할 거리는 없습니다. 남을 해치는 사기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과 화평과 온유와 평강이 있을 뿐입니다.
나가서 크리스천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을 대하는 자들이 다 알아서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예수를 싣고 있다면 절대 난폭한 운전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을 험하게 몰아 남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을 위험한 길로 내몰지 않습니다. 물 흐르듯 순탄하게 인생이 운전되어질 것입니다.
믿소사 아이들에게도 물 흐르듯 순탄하게 인생이 인생이 운전이 될 수 있도록 힘씁시다.
믿소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