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산61번지에는 결핵인 집단촌이 있다. 1960년대 시립서대문병원이 개원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생한 곳이다. 이곳엔 베데스타교회와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가 있다. 최근 마을주민들은 베데스타교회와 사랑의 보금자리를 운영하는 이정재 이사장에 대해 폭행, 차명계좌, 기부금 의혹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편집자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 61번지. 시유지이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이곳은 1960년 시립서대문병원이 문을 연 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결핵인 집단거주지역이다. 서대문병원과 은평천사원 사이에 게딱지처럼 엎드린 판잣집들은 서대문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뒤 오갈 데 없던 환자들이 하나 둘 들어와 움막을 세우고 개집을 고쳐 만든 삶의 터전이다.
그 때만 해도 결핵은 가족도 돌아앉는다는 1종 전염병이었다. 일반 동네에서는 주민 중 결핵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즉각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결핵환자에 대한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도 있다. 70년대 들어 결핵환자들이 움막을 개조해 판자로 벽을 세우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고 비닐막 대신 쪽문을 달게 되자 이 마을에 빈곤계층이 하나둘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 중엔 결핵이 아닌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고, 결핵에 덧붙여 한두 가지 다른 질환을 더 앓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 물론 건강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마을엔 현재 189세대 2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세상의 냉대 속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던 이 마을은 연말이 되면 구휼의 대상으로 자주 언론에 소개됐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마을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 건 지난해 1월 벌어진 웅담주사사건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신약, 웅담주사사건
김상길(71세) 산동네 자치회장은 2002년 1월 16일 새벽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마을 주민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옆집에 사는 한완기 씨가 숨진 것 같으니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김 회장은 서둘러 한씨의 집으로 향했다. 얼어붙은 산동네 언덕은 그날따라 더 오르기 벅찼다. 방문을 여니, 이미 한씨의 몸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전날, 산동네 아래 베데스타교회에서 웅담주사를 놓아줄 테니 교회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 한씨를 비롯한 10여 명의 산동네 주민들은 교회로 몰려갔다. 숨이 턱에 차 계단을 오르내리기조차 힘든 이들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그런 제안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이들은 80대 노인으로부터 “40년 전 강원도에서 직접 잡은 곰에서 떼어내 보관해온 웅담에서 0.01g을 덜어내 50cc의 증류수에 넣고 주사약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 차례대로 주사를 맞았다. 노인은 “주사를 맞은 뒤 밥을 먹으면 안 된다. 독성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현기증이나 열이 나타날 수 있는데 참으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 날 밤 주사를 맞은 주민들은 모두 복통과 구토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했으나 그 말만 믿고 억지로 참은 것이다.
1월 17일자 신문에는 구산동의 한 교회에서 11명의 결핵환자가 증류수에 웅담가루를 섞은 주사액 50cc를 팔뚝에 맞은 뒤 그 중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10명은 입원 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부검의는 한완기 씨의 사망진단서에 패혈증이라 썼다.
이준영 서대문병원장은 “만성적으로 결핵을 앓아온 병약한 사람들이 엉터리 주사를 맞았으니 쇼크나 패혈증이 일어날 수 있다”며 “현대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신약개발이라는 말에 솔깃했다니 납득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산동네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해온 김영상 신촌 세브란스병원 전임의는 “가난하고 병든 그분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신약의 실험대상이 됐다는 것이 매우 속상하다”며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약에 쉽게 현혹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산동네에 사는 이만수 씨는 “웅담주사사건 이후 베데스타교회에서 키토산을 타가라고 했지만 내키지 않아 받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웅담주사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잊혀지고 말았지만 산동네에는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미궁에 빠진 결핵환자 자활촌 건립
산동네에 사는 결핵환자들과 서대문병원 입원환자들을 돕기 위한 사업은 60년대부터 시작됐다. 78년부터 8년간 베데스타교회 목사로 재직한 한영성 국립의료원 담임목사에 따르면, 베데스타교회는 서대문병원이 문을 열 즈음인 60년대 영락교회가 결핵환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했다. 그는 또 80년 베데스타교회와 인연을 맺고 있던 목회자들이 ‘사회복지법인 결핵환자 자활촌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회마다 다니며 홍보도 하고 기금마련 음악회도 열었다. 추진위원회는 적당한 자활촌 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결핵환자들이 살려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라야 한다며 결정한 곳은 인천 영흥도.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 20분 가량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으나 추진위는 화력발전소가 곧 완공되면 다리도 놓일 테고 교통도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임야대장에는 82년 9월 25일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오리 산 283번지 4만5322㎡(1만3734평)를 현재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인 이정재 씨가 구입한 것으로 돼 있다. 한 목사는 “자활촌 추진기금으로 땅을 계약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잔금을 치르러 갔던 이씨가 자기 명의로 해놓았다”고 증언했다.
영흥도 땅 구입 후 7∼8개월간 내오리에서 살았던 임승칠 선교사(현재 아이티 체류 중)는 “당시 추진위에서 활동했던 목회자는 많다. 음악회로 모은 돈으로 서울 근교를 비롯해 파주, 강화도까지 터를 물색하다 폐결핵 환자들을 꺼리는 주민들 때문에 영흥도까지 가게 됐다”며 “아직까지 자활촌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재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은 “당시 한경직 목사, 최창근 장로 등이 초교파적으로 결핵환자 자활촌을 건립하자고 나섰으나 실제로 그들에게 도움 받은 바 없고, 결국 내 돈으로 영흥도 땅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돕겠다고 했다가 발을 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답할 바 아니다”라고 잘랐다.
82년 이후 21년이 흘렀지만 영흥면 내오리 산 283번지에는 결핵환자 자활촌이 설립되지 않았다. 산 전체가 오미자나무로 뒤덮여 있을 뿐이다. 산동네 유석규 씨(2002년 9월 11일 사망)는 지난해 기자와 같이 그곳에 갔을 때 “여기가 맞다!”며 “우리가 오미자나무를 심으러 여기까지 왔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산동네에서 많은 환자들이 여기에 와서 김도 매고, 농사도 짓고 살았으나 병원이 멀고 불편해 오래 있지 못하고 모두 산동네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곳에 한동안 자활촌추진위원회 명패가 걸려 있었으나, 사랑의 보금자리 법인이 설립된 2000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탁월한 언론플레이
서울 종로 국세청 뒤쪽, 유료주차장과 허름한 술집이 들어서 있는 인사동 263번지는 사랑의 보금자리의 주소지다. 그러나 사랑의 보금자리 후원용지엔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산 31번지가 찍혀 있다. 역촌동 산 31번지는 시유지인 서대문병원 안에 있는 베데스타교회의 주소지다. 도대체 베데스타교회와 사랑의 보금자리는 무슨 관계일까?
그 고리엔 이정재(64세)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장이자 베데스타교회의 장로다. 부동산 관리회사 (주)영성 회장이기도 한 그는 69년 구산동 산동네에서 결핵환자 구제사업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국민포장(81년), 국민훈장동백장(97년), 대통령표창(99년)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언론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주로 ‘오갈 데 없는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대부’로 그려졌다. 특히, 2000년 전 재산 550억 원을 털어 결핵환자들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를 설립했다며 언론에 집중 조명됐다. 이를 계기로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은 이정재 이사장을 2001년 ‘동문을 빛낸 올해의 인물’ 사회부문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칭찬 일색이다. ㄱ일보 2002년 8월 5일자는 이 이사장의 입을 빌어 “그는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남산 기슭 토굴에서 담요 몇 장으로 추운 겨울을 버티며 하루 두끼 꽁보리밥으로 때운 청년실업가였다. 고생 끝에 결핵에 걸린 그는 서대문병원에서 죽어 가는 결핵환자들을 보며 평생 결핵환자를 위해 살겠노라고 기도했고 69년 기적처럼 나았다”고 썼고, ㅈ일보 2002년 4월 3일자는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해 3년 만에 서울대 농화학과에 합격한 인물”이고, “전 재산 550억 원을 쾌척한 그는 1970년 사재를 털어 마을 입구에 베데스타교회를 세웠으며, 종교와 삶과 희망을 그들에게 심었다”고 썼다. ㅅ일보 2001년 12월 28일자엔 이런 기사도 실렸다.
“건물 임대업 등으로 모은 수입 가운데 매달 2000만 원 가량을 환자 1인당 5만∼30만 원씩 나눠주고 닭과 개를 잡아 영양을 보충해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5만 명. 그래서 이곳 환자들 가운데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사들은 대개 보잘 것 없는 결핵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정재 이사장의 선행을 소개하고 ‘사랑의 보금자리’ 후원계좌와 전화번호를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베데스타교회에서 9년 간 회계를 보았던 김아무 씨는 이런 보도들은 대개 이정재 이사장의 언론플레이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신문에 실리면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정재 이사장은 기자들에게 ‘홍보’를 부탁하기도 한다. ㄱ일보엔 이정재 이사장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며 거래해온 기자도 있다.”
임대주택과 사랑의 보금자리타운 건설
82년 서대문병원에 입원했던 송규옥(51세) 씨는 퇴원 후 갈 곳을 찾지 못해 산동네에 눌러 앉았다. 부인은 갑상선질환에 폐결핵을 앓고 있고, 송씨는 천식과 만성기관지염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방엔 산소통이 있다. 밤엔 그걸 끼고 자야 한다. 부부는 남들처럼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정부보조금과 민간 후원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판잣집은 크기가 6평 남짓 되는데 500만 원 정도 값이 나간다. 무허가 건물이지만 그 동네에선 매매가 된다. 아예 산동네에 살면서 이쪽 부동산만 취급하는 업자가 있을 정도다. 산동네로 오는 사람들은 대개 움막 같은 집이라도 내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사기도 하고,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사는 사람도 있다. 또 그렇게 산 집에 세를 놓기도 한다. 72년 정부가 인정한 무허가 주택 45채는 2000만∼3000만 원에 매매가가 형성돼 있고, 그 뒤로 생긴 무허가 건물 58채는 500만 원대다. 얼마 전부터 45채의 가격이 부쩍 올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5월 서울시 주택국에서는 구산동 주거환경개선 자문회의가 열렸다. 고건 서울시장이 지시한 결핵촌 주거환경개선에 대해 주민 대표, 전문가, 공무원들이 모여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근 구산연립 재건축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 마을에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가 수용시설 건립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이 주거환경개선을 원하고 있어 사업방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민 대표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추진하는 수용시설보다는 서울시 공공사업으로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 대표는 두 달 전 175세대를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주민의견 조사서를 냈다. 결과는 자력개발 4, 서울시 158, 기타관공서 1, 사랑의 보금자리 2 등이었다.
이날 서울시는 3가지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제1안 사랑의 보금자리 등의 수용시설 건립, 2안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한 임대주택의 건설 및 공급, 3안 공원 조성이 그것이다. 사랑의 보금자리가 서울시에 제출한 안대로라면 소요예산은 138억 원, 수용인원은 1000명(744세대). 전문적인 관리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특정시설 지원에 대한 주민 반발과 기존 주택 정비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제2안으로 결정될 경우에는 소요예산을 50억 원으로 줄일 수 있고 최소한의 개발로 개발제한구역 훼손 최소화, 현지 주민의 재정착 용이, 기존 커뮤니티 유지 등의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선 무허가건물 58채 주민들에게 입주자격을 줄 것이냐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고, 시비가 들어간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제3안은 소요예산 20억 원에 도시정비차원에서 가장 유리하지만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어서 곤란했다.
이날 토의에서는 제2안으로 윤곽이 잡혔다. 서울시는 자문회의 결과를 토대로 은평구에 환경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도시개발공사는 구산동 산 61번지에 임대아파트를 짓는 공사를 착공한다. 그래서 요즘 산동네엔 ‘딱지’를 찾는 문의전화가 밀려들고 있다.
550억 기부? 법인출연재산명세서엔 106억
사랑의 보금자리는 2000년 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 총회를 열고 2001년 3월 문을 열었다. 종로세무서에 제출한 법인출연재산명세서에 따르면, 이정재 이사장은 지난해 법인의 고유 목적금으로 25억88만558원을 출연했다. 2001년 5월엔 서울 종로구 인사동 263번지의 건물과 토지,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오리 산 283번지를 출연했다. 부동산 총액은 74억 원 가량. 부동산과 현금을 합치면 약 106억 원의 재산을 사랑의 보금자리에 헌납한 셈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회장, 금창태 전 중앙일보 부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는 지난해 3월 서울시에 한 묶음의 사업계획서를 냈다. 시유지인 구산동 산 61번지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결핵인 타운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계획서를 꼼꼼히 분석한 뒤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랑의 보금자리 측에서는 결핵환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는데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터뜨렸으나 서울시는 완강했다. 서울시 사회복지과 이은홍 씨의 말을 들어보자.
“시유지에 개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결핵인 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고, 언론에는 550억 원을 기부해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법인재정능력이 부실했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법인재산은 100억 원 가량이었고, 사업비로 140억 원 이상이 책정돼 있었는데, 사업비를 모두 모금이나 보조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보고 계획서를 반려했다.”
언론은 그가 전 재산 550억 원을 털어 사랑의 보금자리에 출연했다고 했으나 실상은 106억 원인 것이다. 이은홍 씨에 따르면 “140억 원을 더 모으겠다는 발상은 타운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사랑의 보금자리는 비슷한 내용의 계획서를 다시 한번 제출했으나 서울시는 이번에도 반려했다. 무리하게 결핵환자 타운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산동네 주민들의 의견부터 들어보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데도 사랑의 보금자리는 결핵환자 수용시설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정재 이사장은 “법인출연재산명세서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적게 신고한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현금 30억 원과 인사동과 영흥도 땅값을 합치면 시가 500억 원을 훨씬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시가로 계산할 때는 ㅈ일보 기자와 함께 현장에 나가 직접 확인하고 기사로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이 취재를 담당했던 ㅈ일보 ㅇ모 기자는 “이씨와 함께 현장에 나가 확인한 바 없고, 기존 보도와 그의 말을 듣고 쓴 것 뿐”이라며 “나말고 다른 기자들도 모두 550억이라고 썼는데 뭐가 잘못 됐느냐”고 되물었다.
이정재 씨는 스스로 “나는 성직자로서 오갈 곳 없는 결핵환자들을 위해 일수 찍고, 고리사채를 해서 번 돈까지도 그들을 돕는 데 쓰고 있다”며 최근엔 “영흥도 땅과 인사동 땅을 팔아서 밑져도 본전은 할 수 있는 부동산업을 통해 돈을 더 벌어 또 다시 결핵환자 돕는 데 쓰려고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국내 복지법인 중 나만큼 자기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있느냐”며 “불쌍한 결핵환자들을 봐서라도 좋게 쓰라”고 말했다.
언론보도의 이면
훌륭한 사회사업가이자 성직자임을 자처하는 이정재 이사장이 추진하는 결핵환자 수용시설을 정작 그곳에 들어가야 할 산동네 주민 대다수는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베데스타교회의 신자들까지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뭘까.
2001년 8월 산동네 주민 김명자 씨는 베데스타교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교회 앞 공터에 주차한 차를 빼 달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동차 열쇠를 들고 교회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회의 중인 것을 알고 열쇠를 놔두고 나오려는 순간, 이정재 이사장이 “당신 남편 체면 때문에 봐줬는데 이젠 못 봐준다”며 “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다니느냐”며 김씨의 따귀를 후려쳤다. 김씨도 이사장의 멱살을 잡았고 이씨의 와이셔츠가 찢어졌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파에 앉으려는 김씨를 이사장이 또 때렸다. 놀란 그녀는 112 신고를 하고 파출소에 가 진술서를 썼다. 고소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체격 좋은 남자 4명이 나타나 사정하기 시작했다. 뜻대로 안되자 그들은 맞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에는 베데스타교회의 전도사까지 찾아와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김씨는 고소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기백(가명) 목사도 “이정재 이사장에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모조리 얻어맞아야 했다”고 시인하며 “산동네 주민들은 폭력을 일삼는 이정재 이사장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95년 베데스타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던 양미선(가명)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환자사역을 했어요. 주로 서대문병원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과 함께 기도를 했는데 열심히 일했지만 제대로 급여를 받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 돈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났습니다. 언제나 말도 들어보지 않고 발길질부터 하는 사람이 이정재 이사장이었습니다. 그 때 일은 너무나 끔찍해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요.” 베데스타교회 집사였던 안영자(가명) 씨도 “이정재 장로는 종로에서 알아주는 깡패”라며 “그가 데리고 다니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라”고 말했다. 그는 베데스타교회 전임 목사 중 한 사람을 이정재 장로가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당신이 보리밥을 드실지언정 산동네 주민들에게는 안남미라도 쌀밥을 지어주라고 말했던 분이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 목사님이 교회 안에서 이 장로에게 흠씬 맞았어요. 때리는 장로님을 피해 교회 밖으로 도망가서까지 맞았지요. 목사님은 그 후 병원에 입원했고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더 기가 막힌 건 그분 장례식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다른 목사님을 이 장로가 또 때렸다는 거지요.”
이런 일도 있었다. 산동네 여성 이은희(가명) 씨는 고아원에서 살다 열다섯 살에 부녀자보호소에 들어갔다. 부녀자보호소는 자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결핵에 걸리면 서대문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결핵균에 감염됐다. 서대문병원에서 만난 이정재 이사장은 그녀를 부녀자보호소에서 빼내줬다. 그리곤 영흥도 자활촌에서 2년 간 생활한 뒤 이정재 이사장이 운영하는 업소들을 돌아다니며 잡일을 하며 지냈다. 숙식만 제공받았을 뿐 월급은 따로 받지 않았다. 그녀가 열일곱 살 때, 이정재 이사장은 그녀를 강간했다.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지만 한번도 딸 대접 해준 적 없어요. 장로님 말 안 들으면 구제금(후원금)이 깎였어요.” 돈 때문에 그의 횡포에도 말 한 마디 못하고 20여 년을 참고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마을에서 여러 차례 벌어진 폭행 사건에 대해 이정재 이사장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일 산동네에서 따귀 한 대라도 맞은 사람이 있다면 대질심문 시켜달라. 성직자가 어떻게 환자들과 싸울 수 있겠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명자 씨 건의 경우는 “차를 빼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에게 그녀가 무턱대고 달려들며 와이셔츠를 찢어놓았다”고 반박했다.
김상길 자치회장도 지난해 5월 베데스타교회에서 이정재 이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사랑의 보금자리 타운 건설을 훼방한다는 이유였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이정재 이사장은 “너 하나 죽여서 묻어 버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은 눈가를 다섯 바늘 꿰매는 등 전치 2주의 상해진단을 끊었다. 경찰에 고소도 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주민들이 걸핏하면 그에게 얻어맞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법적 절차를 끝까지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이 경찰에 고소하러 갔을 때에도 체격 좋은 남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원만한 해결을 원했지만 김 회장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이정재 이사장도 상해진단 전치 5주를 끊어 검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계류 중이다. 이정재 이사장은 한 술 더 떠 폭행과 사문서 위조 등으로 산동네 송인국 통장까지 고발했다. 송씨의 말을 들어보자.
“산동네 개발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던 지난해 5월 주민의견조사를 했다. 사랑의 보금자리를 원하는지, 시에서 추진하는 임대주택을 원하는지 물었다. 당시 구산연립 재개발로 분진 소음문제가 있어 주민연명으로 탄원을 했는데, 이정재 이사장은 내가 주민들에게 탄원서를 보여주고, 실제로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반대하는 안에 도장을 찍도록 했다며 사문서 위조로 고소했다. 장로가 하도 못 미더워 하길래 조사를 다시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산동네 주민 박아무 씨는 사문서 위조는 오히려 베데스타교회가 했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7월 구산연립재개발조합은 산동네 주민들에게 환경피해보상금으로 33만 원씩 나눠주었다. 베데스타교회에서 구제금을 받던 박씨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구제금을 나눠주면서 도장을 이중으로 찍기에 이상하게 여겨 그 서류를 빼앗다시피 해 가져왔다. 그리곤 마을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서 도장을 함부로 찍어주지 말라고 했다. 구제금용인 줄 알고 도장을 찍은 서류는 주민이 주민을 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탄원서였다.”
탄원서의 내용은 이렇다. “불쌍한 분들을 위하여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안식처를 마련해주고자 했는데 몇몇 산동네 사람들이 구산연립 재개발 때문에 벌어진 소음공해에 대한 진정서를 엉뚱한 데로 사용한 것을 고발한다. …그들은 산동네 주민이 316명인데 150명만 도장을 받아놓고 98%가 찬성한다고 위조한 서류를 진정서로 제출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주민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으며 빨리 사랑의 보금자리 타운이 설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정재 이사장은 무슨 이유인지 차명계좌까지 만들어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구산동사무소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재산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산동네 주민인 김아무 씨 이름으로 된 은행 계좌 세 개에서 9700만 원이 발견됐다. 법상 1인 수급자는 재산이 3300만 원을 넘거나 월소득 35만 원 이상이면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게 된다.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사람에게 1억 원에 가까운 돈이 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구산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 손신기 씨는 당연히 김씨의 자격을 박탈했다. 손씨의 말이다.
차명 계좌 관리
“2000년 5월 이정재 이사장이 동사무소로 찾아와 봉투를 내놓고 잘해달라고 하더군요. 산동네 주민 8∼10명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놨는데, 그것 조회 안 하면 안 되겠냐구요. 저는 원칙대로 처리했습니다. 그 뒤 저는 ‘산동네 주민들의 후원금을 떼먹었다’ ‘직무에 태만하다’ 는 이유로 다른 동사무소로 전출됐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억울합니다.” 손씨의 전출 뒤 구산동사무소에 새로 온 박아무 씨는 당시 외국 출장 중이던 은평구청장으로부터 “김아무 씨 건 어떻게 처리됐느냐”고 묻는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베데스타교회로부터 “그 돈은 김씨 것이 아니라 교회 돈”이라는 확인서를 받고 김씨를 수급자로 다시 올려줬다. 지금도 그는 왜 교회 돈을 개인 통장에 넣어뒀는지 의문이지만 상급자의 지시로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2002년 기초생활 수급자 금융자산조회에서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산동네에 사는 한 부부의 계좌에 그들도 모르는 돈이 1억 원이나 저축돼 있었던 것이다. 수급자격 박탈을 염려한 부인은 즉시 푸른상호저축은행으로 달려갔다.
“은행에 사실을 추궁하고 관련서류를 복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푸른상호저축은행은 몇 시간을 질질 끌면서 서류를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정재 이사장이 나타났다. 그는 9월이 만기니 그때까지만 참아달라며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1주일 뒤 베데스다교회 관계자가 그녀를 불러 500만 원을 내밀며 이사장님이 준 돈이니 도장 찍고 받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올해 앓고 있는 병과 가정 형편을 모두 써낸 뒤에야 다시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차명 계좌 관리에 대해서도 이정재 장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2002년 1월 KBS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는 ‘소외된 결핵환자촌의 힘겨운 겨울나기’라는 주제로 산동네를 소개하고 후원금 중 2000만 원을 생활안정자금으로 제공했다. 이를 시행한 한국복지재단 장현주 사회복지사는 “결핵환자 구제비로 1400만 원, 쌀구입비로 600만 원이 집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사랑의 보금자리는 주민들에게 5만∼15만 원씩 지급했으며, 주민들이 구제금과 쌀을 받은 뒤 확인도장까지 찍었다”고 말했다.
사라진 기부금
그러나 교회의 권유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산동네 주민 강상남 씨는 “매월 받던 구제금만 받았지 더 받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출연자 최부갑 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이구동성으로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보내온 생활안정자금이라며 따로 준 돈은 없었다”고 말했다.
베데스타교회는 산동네 주민들과 서대문병원 환자들에게 구제금을 나눠준다. 이정재 이사장이 69년부터 5만 명을 구제했다는 신문 기사는 아마 이를 두고 한 말인 듯 싶다.
구산동사무소가 올 1월 수급자 후원금 실태조사를 한 결과 산동네 주민들은 한국이웃사랑회, 사랑의 보금자리(베데스타교회), 잠원동천주교회, 은평교구협의회(실로암교회) 등으로부터 구제금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의 보금자리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주민들이 쓴 내용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5∼7만 원을 받고 있는데 교회 갈 때만 받았다. 원래 다니는 교회와 겹쳐 자주 빠지게 됐는데, 앞으로 못 나가면 구제금은 중단될 것임.” “주일예배를 참석하면 7만 원의 후원금을 주나 한두 차례 빠지면 5만 원으로 삭감된다.” “교회에 나가면 5만 원, 안 나가면 없음.” “매월 일정치 않지만 5∼7만 원을 받았고, 몸이 아파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후원금을 주지 않는다.” “7만∼8만4000원을 받고 있는데, 거기서 십일조와 감사헌금, 사랑의 보금자리 후원금(1만 원)을 도로 낸다.” 이준영 서대문병원장은 “입원환자들 중 베데스타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종교적인 것도 있겠지만 구제금을 받기 위한 마음이 더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정재 이사장도 종교적 신념만으로는 교회를 운영할 수 없으니 그런 당근도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으로 주민 길들이기
이 원장은 또 “병원 안에 있는 베데스타교회는 여러 측변에서 계륵같은 존재”라고 토로했다. 베데스타교회에서 회계를 보았던 김모 씨의 눈에 비친 이정재 이사장은 진정한 의미의 사외사업가나 성직자가 아니다.
“한 달에 최고 4000만 원까지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결핵환자자활촌건립추진기금으로 써달라는 돈이었다. 그는 기부금을 자기 돈처럼 쓴다. 본인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구제금도 이사장이 ‘주라’는 지시가 있어야 준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주먹이 날아온다. 사랑의 보금자리 이사진은 모두 산동네 주민이자 교회 신도들이다. 이사장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에게 산동네 주민이나 병원 환자들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환자들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10만 원이면 죽어 가는 결핵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국내는 물론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 후원금이 들어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사장이 교회에 가장 많은 헌금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모두 세무서에 제출한다. 세금을 환급 받기 위한 것이다.” 김씨는 “결과적으로 구제금이 산동네 사람들의 자활 의지를 위축시키고 교회에 의존적으로 만든다. 구제금 때문에 마을사람들끼리 싸우는 일도 많다. 주민들을 돈으로 길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상길 자치회장도 “이정재 이사장이 산동네 주민들을 이용해 후원금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후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주민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제까지 주민들이 그의 횡포에 시달려야 하느냐”며 “그가 마을에 군림하고 있는 한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고 호소했다.
<박스기사>
사회복지법인 기부금
사후감독 철저해야
사회복지법인의 후원금 모금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따른다. 수익사업과 후원모금을 모두 동반할 수 있는 사회복지법인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따라 후원금 모금에 대해 강하게 규제를 받고 있지만, 실제 사후적으로 모금된 후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지에 대해서는 관리 감독이 소홀하다.
노연회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에서 모금한 돈은 개인 돈이 아니므로 후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사전에 규제를 심하게 하고 사후에 점검할 게 아니라 자유롭게 후원금을 모집하게 하고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감사를 철저하게 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우리처럼 후원금을 모집할 때마다 허가받는 방식이 아니라 기금을 모은 뒤 그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사후에 철저히 보고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사회복지법인의 후원금모금 이후 사후 회계감독은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첫댓글어,씨바. 드디어 터질게 터졌구나. 10여년 전부터 말만 무성하던 그넘에 대해서 말이다. 3월 25일 기사니 최근이군. 참여연대에서 의혹을 제기하니, 이정재도 그리 쉽지 않을기다. 이 기회에 이런 치들 뿌리를 뽑아야.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검찰 가서 증언? 몰 것다.
첫댓글 어,씨바. 드디어 터질게 터졌구나. 10여년 전부터 말만 무성하던 그넘에 대해서 말이다. 3월 25일 기사니 최근이군. 참여연대에서 의혹을 제기하니, 이정재도 그리 쉽지 않을기다. 이 기회에 이런 치들 뿌리를 뽑아야.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검찰 가서 증언? 몰 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