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지만, 그대는 그들을 위해 원수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지백에게 예물을 바쳐 그의 신하가 되었네. 이제 지백도 죽었는데 그대는 유독 무슨 까닭으로 지백을 위해 이토록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가?" 예양이 말했다. "저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습니다.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저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하였으므로 저도 보통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보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백은 저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대우하였으므로 저도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그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양자는 탄식하고 울면서 말했다. "아, 예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성과 절개를 다했다는 이름은 벌써 이루어졌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하는 일도 이미 충분했네. 이제 그대는 각오해야 할 터, 내가 더 이상 그대를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그러고는 병사들에게 그를 포위시켰다. 예양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을 의무가 있다'라고 합니다. 전날 군왕께서 신을 너그럽게 용서한 일로 천하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 양자는 그 의로운 기상에 크게 감탄하고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도록 하였다. 예양을 칼을 뽑아 들고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지백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뜻 있는 선비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 ≪사기열전≫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 예양은 선비가 지녀야 하는 가치에 대해서 말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 준 이에게 은혜를 갚는 일을 의롭게 여겼다. 선비는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여러 사람들에게서 은혜를 입었다. 은혜를 갚을 길을 새기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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