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일 주일 예배
본문<수>2;4~7
제목; 이런 교회를
오늘이 12월의 시작인 1일이자 첫 주일인데
달력은 한 장 남았고
금년 한 해의 주일은 52주중 오늘을 빼고 4주 남았습니다
이제 또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가는 세월 아쉬워서 무엇 하나라도 붙잡아 두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과연 헛되고 헛된 세월 앞에 남아 있는 게 있을까요
하지만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그일은 예수님과의 동행이요 받은 은혜에 대한 추억이요
매주 받은 말씀이어야 합니다..그러면 덜 아쉬울 것이고
그 추억과
말씀은 결코 헛됨이 되지 않을 것을 믿기를 축원합니다
친척 본토 아비 집인 서울을 떠나 서창 지역에 머물러
우리들 교회와
시온성 교회를 목양한지도 이제 곧 14년차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많이 아쉽습니다...그러나 이제 13년 동안의 수없는
실수와 실패를 통한 훈련이 거울이 되었고
코로나 기간 동안 기도하며 도전한 부흥사로의 기도원 사역은
나에게는 아주 유익한 자산이 되었고
나는 할 수 없지만 나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전을 짓고
기도원 사역을 전적으로 감당한다면
이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습니다만
나이를 먹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으로 기도원 사역의 소망을 가지고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망 앞에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속사는 여리고 성 정복 앞에 라합이 준비되어 있는데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과 준비된 자 라합이
고발자와 체포조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고난뿐인 우리네 인생 여정에도
이런 위기
저런 고난을 숱하게 맛보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라합의 지혜로운 적용에 대해
말씀을 나눌 때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뜨거워지며
그동안 막혔던 것은 뚫리며 엉켰던 문제는 순적함으로
풀리고 열려 형통을 맛보고/
병든 자는 치유되고 상한 심령들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오늘은 라합의 지혜로운 처신과 적용
그리고 그의 결단과
믿음의 순종이 개인은 물론
가족 구원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4절입니다.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여러분..고발자와 체포조들이 라합의 집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왔는데
무조건 아니라고/모른다고 잡아떼면
일이 더 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말하기를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고
또 5절에서는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고
돌려서
지혜롭게 처신합니다.
만약에 애써 변명하며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들이 집을
수색하며
여기 저기 살펴 볼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놓고 체포조를 따돌리는
이 장면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라합이 거짓말을 했다고 딴지를 겁니다.
그리고 우리도 라합은 이미 숨겨놓고 알지 못한다고 했으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라합의 거짓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실 앞에서 라합이 거짓말 했다고 떠들고
믿는 사람들은
라합의 지혜로운 처신이라고 그를 옹호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잣대와 믿는 사람들의 견해와의 충돌입니다
말하여 양비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논쟁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하면 라합이 한 거짓말은
많이 봐줘서
일종의 선한 거짓말에 해당합니다.
하나님도 십계명 중
9계명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하시며
거짓말은 죄가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거짓 증언은
성안 사람들 입장에서는 라합의 그 일이
배신행위요 나라를 판 이적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선한 거짓말은 용인되는가?..라는 반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도 양비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비론은 흑백논리이고 우리는 이런 문제들 앞에서
흑백논리로
논쟁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은 인긴들의 삶과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과 우리의 삶과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의 눈높이로..하나님이시라면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로
진단하고 적용함으로 해석해야 지혜로운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본주의를 신본주의로 돌리고 세속적 가치를
성경적 가치로
적용하고 반응하여 결단으로 순종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일도 그렇습니다..지엽적인 일로, 가볍고 흔한 일로
따지고 논쟁하다 보면
정작에 귀한 일인 본질은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고 말씀하셨고
55:9은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아멘
여러분 간단하게 말하면 내 생각과 내 소견의 옳은 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눈높이로 생각하고 성령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옳고 내 생각이 맞는 것처럼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옳으신 뜻대로 살되
이런 겸손한 믿음으로 사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며
이런 삶의 자세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 정복을 위해 라합을 준비시키신 이유는
여리고 성 안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손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행하며 순종하는 그 길 위에
늘 준비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 안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만 했지
믿음으로 인한 순종의 반응이 없어 다들 멸망당했지만
라합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 겸손과 믿음의 순종으로
개인과 가족이
구원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핵심은 구원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흥망성쇠와 생사여탈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은
그 주권으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본질은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세속과
세상의 이익 편에 서느냐의 결단으로 그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호한 결론은 거짓말은 나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거짓말을 했는데
이 때 라합은 나쁜 사람, 부정직한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의 거짓말은 제 민족과 제 나라를 배신하는 일이지만
라합이 행한 거짓말의 가치는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나 민족보다 영혼 구원이
상위 개념이요
우선순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한 거짓말인가
내 이익과
내 소욕을 위한 거짓말인가부터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합이 한 일은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편에선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한 지혜로운 처신을 한 것이라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의 거짓 증언에 대한 분별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갈 곳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는 나그네이지
이곳,
이 땅이 내가 영원히 살 곳은 아님을 알고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맞추는
적용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이 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여러분..교회에 오면 숨이 쉬어지고 답답함이
풀어져야 합니다.
한 주일 내내 세속에 찌들리고 지치고 힘 빠진 영혼들이 와서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과
쉼을 얻는 재충전으로 힘을 얻는 그런 교회여야 합니다.
상처의 쓴 뿌리로 고달파하고 말씀이 없어 기갈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에게
윤활유와 같은 그런 교회가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교회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5,6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 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 하였으나 ]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기록된 성경은 어두워 성문이 닫을 때쯤이라 했는데
여러분..어두워지고 성문이 닫치면
흑암의 어둠에 갇히게 되기 때문에 그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기회를 잘 포착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라합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라합이 체포조와 훼방자들을 따돌리는 한편
이미 정탐꾼들을 빼돌렸고
지붕의 삼대에 숨겼다고 성경은 진술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매우 극적인 사건이 연출되었는데
여러분..삼대가 무엇입니까?
삼대는 삼나무의 대로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이 삼대 줄기를 말려
옷을 해 입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리는 장소가 주로 지붕이었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붕은
우리나라의 기와지붕이 아니라 우리 교회 옥상처럼 되어있는
그런 지붕을 연상하면 될 것인데
그곳에서 이 삼대를 말릴 때 잎은 넓고 대는 굵어 얼기 설기로 쌓아 놓으면
그 속은 잘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그 깊은 속까지
바람과 햇빛이 들어감으로
저 아래 바닥까지 말리기가 안성맞춤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숨기는 숨었는데 굵은 대가 얼기 설기로 쌓아 놓은 곳이라
위에서 아래로는
잘 보이지는 않으니 들킬 염려가 적다는 것이고
아래에 숨어 있으나 숨도 잘 쉬어지며 바람과 햇볕도 잘 들어오는
그런 구조에 숨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세상에 찌들고 피곤에 지친 우리가 숨을 곳은
이래야 합니다.
대적들을 피하여 잠시 재충전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숨이 쉬어지는 곳 바람이 부니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곳
햇빛마저 들어오니
어둠을 피할 수 있어 두려움이 없게 되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게다가 위에서 안을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바깥의 동정을 살필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딱’입니다.
더군다나 아리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기 막대기나
창 같은 것으로
찔러 보며 살피려 해도 얼기설기 쌓아놓은 삼대 줄기들이 막아주니
그야말로 안성마춤입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해지고
쉼과 재충전을 얻는 그런 교회로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교회에 와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면 안 됩니다.
갈등도 없어야 하고
누가 밉고 고운 사람이 없이 다 이쁘고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도 사랑의 결실이 율법의 완성이라 하였고
성령도 주 안에서 하나가 되라했기 때문에
숨겨주고 감춰주고 감싸 않으며
배려하며 보살핌으로
곤한 내 영혼이 숨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숨을 지붕은?
그곳이 어디입니까? 삼대를 벌여 놓은 지붕이 곤하고 지친
내 영혼이 숨을 곳인데
그 장소가 바로 시온성과 같은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온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성은 숨을 쉬고 힘을 얻으며 울타리가 되어주며 세속을 피하여 숨을 곳
편안한 숨이 쉬어지고
미세먼지 하나 섞이지 않은 청정수의 맑은 공기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칼칼한 목이 아무리 음료수를 마셔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갈증이
시원한 생명수로 그 심한 기갈이 단숨에 멈춰지는
먹을거리가 풍성한 기름진 말씀과
영성이 짙게 묻어나는 기도와 찬양의 열기가 있는 그런 교회
영의 보양식뿐만 아니라
육의 먹을거리마저 풍성하여 늘 진수성찬의 식탁이 있는 교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의 초대교회를 원합니다.
이런 교회가 푸른 초장의 교회이기 때문이요
그리고 그 교회가
시온성 교회이기를 소망하자는 것입니다.
좌우를 보시며
참으로 시온성 교회에 잘 오셨습니다.
우리끼리라도 널리널리 소문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의 빛,
성령의 바람이 부는 교회가 지붕이요 삼대입니다
교회에 와서 숨어야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어야 합니다.
중독이 치유되고
세속의 찌든 때가 씻음을 받고
동서남북이 다 막혀 숨조차 쉴 수 없는 현실이
교회만 오면 숨겨지고
교회만 오면 해결되는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다고,..교회에 숨겨졌다고 편안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치유와 회복의 즉 내적치유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숨을 쉬게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오면 편해야 합니다. 친정집에 온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능으로
상처받은 나를 살리는 교회가
생명이 있고 기도의 능력으로 치유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시온성 교회에 심겨짐으로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나뭇가지가 마르지 아니함으로 그 행사가 다 형통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의 상처와 함께
육의 질병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신유의 능력과
성령의 은사와 말씀의 능력이 있는 예수의 복이 묻어나는
시온성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에 오셨으니 말씀의 자양분에 흠뻑 취하고
기도로 깊은 숨을 내쉬니
세속에 찌들린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고
칼칼한 목에
찬양으로 기름칠하니 시원케 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지붕의 삼대가 숨을 쉬게 하는 은혜입니다.
지붕은 힘든 환경이지만
벌여놓은 삼대의 틈새를 통해 햇빛이 있고 바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햇빛과 바람 같은
말씀의 자양분이 있으면 나는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신구약의 보양식으로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이
부도나고 망하고 실패하고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으니
빵이 고픈 게 아니라 말씀이 고파야 합니다.
고픈 말씀을 영적 자양분으로 배불리 먹고 마시며
말씀의 예방 주사를 맞으면
빛도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도 있어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이것이 신비한 체험입니다.
여러분..그 빛이 예수의 빛이요..여러분...그 바람은 성령의 바람입니다.
그 바람을
마음껏 쏘이며 누리다 돌아가는 여러분이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시온성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사 혼자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많은 숫자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적은 숫자일망정 사랑으로 하면 됩니다.
사랑으로
성령으로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짐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합력으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하려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숨 쉬고 살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기왕에 주의 일을 하니까//좀 더 좋은 환경을 열어서
지붕이 아닌
편안한 ‘안방’을 바라기 때문에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유익이 되듯...마5;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하셨고
마5:11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오랜 인내로
잘 참고 견디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6절 [하반절의 숨겼더라.;]라고 기록된 이 말씀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라합이 소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듣고
자신의 생사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채 믿음의 행동을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로인해 라합과 그 가족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얻을 교훈이요
가르침으로 삼아야 할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이곳 시온성 교회의 지붕에 숨고 유숙했으니
푹 쉬시기 바랍니다,
다운된 내 영이 교회에 와서 재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나고 그 말씀으로 남은 시간들과 많은 날들을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사람을 소중히 여김으로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생명은 구원의 문제이고
시온성 교회가 구원의 방주이기에 우리는 사람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런데 7절의 그 사람들은..여기서 그 사람들은
끌어내리는 자요
방해하는 자들인데 그들이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정탐꾼이고
뒤 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정탐꾼들은 여전히 라합의 집에 있고
저들 뒤쫓는 자들은
엉뚱한 것을 쫓아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적하고 위협하며 고발하는 대적들이 나가자
성문이 닫혔습니다.
이렇게 위기는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생명과 구원을 위한 일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늘이 주시는 지혜로 했더니
이렇게 위기가 기회로 다가온 것입니다...할렐루야
오늘은 여기까지인데
어떤 고난 위기가 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감당하면
이렇게 말씀이 내 발의 등이 되고 내 가는 길의 빛이 됨을 믿고
끝까지 완주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