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씨의 사체가 유기된 장소(위)와 살해 용의자 권 씨가 신 씨의 차량을 아파트 단지에 버린 뒤 걸어나오는 CCTV 화면.
지난달 말 인천 삼산경찰서는 ‘부동산 매매대금을 받으러 갔던 남편이 귀가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남편 신 아무개 씨(36)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결과 신 씨가 강화도 인근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공조요청을 받은 강화경찰서는 강화군 강화읍 용정리 도로변 풀밭에서 버려진 신 씨의 휴대전화와 지갑, 사원증 등을 찾아냈다.
지난 6일, 신 씨의 핸드폰이 발견된 장소에서 4km정도 떨어진 강화도 성원면의 한 야산에서 신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도로에서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서 발견된 신 씨의 시신은 1m 가량 파헤쳐진 구덩이에서 나뭇가지와 흙으로 덮인 채 유기돼 있었다. 신 씨의 시신은 알몸상태로 부패가 진행돼 일부 훼손된 상태였다.
그런데 시신 뒷머리에 상처가 나 있었고 시신을 의도적으로 유기해 은폐하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의도로 핸드폰을 시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린 것도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경찰은 신 씨가 부동산 매매대금 1억 1200만 원을 받으러 권 아무개 씨(62)를 만나러 나갔다가 실종됐다는 신 씨 아내의 진술을 확보하고 권 씨를 긴급체포했다.
# 권 씨 일체 혐의 부인
피의자 권 씨가 내연녀와 거주하고 있는 양식장 겸 집은 신 씨의 시신이 발견된 야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수색 끝에 신 씨의 시신이 발견된 시각은 지난 6일 오후 3시 30분경. 경찰은 오후 7시께 집에 머무르고 있던 권 씨를 신 씨 살해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기자는 지난 8월 13일 권 씨의 양식장을 찾았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최근까지 함께 거주했다는 내연녀도 자취를 감춘 듯했다. 입구에는 양식장 겸 식당임을 표시하는 입간판이 서 있었지만 이미 양식장은 운영 안한 지 오래된 듯 보였다. 양식장 인근 주민 A 씨도 “양식장으로 쓴 지는 오래된 곳이다. 권 씨가 곳곳에 땅이 있어 왔다갔다 관리만 할 뿐 양식장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의 설명처럼 권 씨의 양식장 겸 집안 곳곳에는 양식에 사용됐던 것으로 보이는 어구들과 인근 밭을 관리할 때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농기구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경찰은 권 씨가 신 씨를 이곳으로 유인해 지난 7월 31일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12시 40분 사이 끝이 뾰족한 어구를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 도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권 씨가 신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권 씨가 신었던 슬리퍼에서 사망한 신 씨의 혈흔을 발견했다. 피의자 권 씨가 평소 몰고 다니던 포터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도 신 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국과수의 DNA 결과가 나왔다.
권 씨가 신 씨의 쏘나타 차량을 아파트 단지에 버린 뒤 걸어 나오는 CCTV 영상이 확보되면서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는 권 씨를 태웠다는 택시기사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밖에도 강화읍 용정리 도로변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지갑과 휴대전화, 사원증에서 권 씨의 지문이 발견된 것도 증거로 확보됐다. 하지만 권 씨는 경찰 조사에서 “신 씨가 피곤해 집에서 잠시 쉰다고 들어온 적은 있으나 12시경 신 씨가 차를 타고 나갔다”며 “그 이후로 집 밖에 나간적도 없고, 신 씨를 살해한 적도 없다”고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 권 씨 주변에서 벌어진 기이한 실종사건들
그런데 권 씨 주변에서 사람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1년에는 권 씨의 또 다른 내연녀(당시 40세)가 실종된 적이 있었다. 2003년에는 권 씨와 권 씨의 본처가 운영하던 횟집의 남성 종업원이 실종돼 동네 분위기가 흉흉해지기도 했다. 2006년에는 권 씨의 횟집 인근에서 친동생의 펜션을 관리하며 생활하던 펜션관리인이 백골상태의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권 씨와 가깝게 지냈거나 서로 잘 알던 사이로 알려졌다.
권 씨는 동거녀와 종업원이 실종됐던 2001년과 2003년 당시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2006년 펜션 관리인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주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권 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권 씨의 과수원까지 수색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권 씨는 풀려났다.
권 씨의 고향은 양식장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이다. 그 곳 주민 B 씨는 “종업원이 실종됐을 당시에도 소문이 자자했다. 그 펜션관리인도 권 씨 가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펜션에서 일했었다. 같은 성끼리 모여살고 그런 동네라 다들 쉬쉬했다. 경찰이 피의자라고 잡으러 왔을 때는 논밭사이로 어찌나 도망을 잘 다니던지 그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씨가 이번 사건으로 체포되면서 경찰은 앞서의 3건의 미제사건이 권 씨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강화경찰서 한인기 수사과장은 “현재 신 씨의 살해 및 사체 유기건을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나머지 3건의 경우 자료도 방대하고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추후 후속 수사를 본격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앞으로의 수사방향
앞으로의 수사는 권 씨의 살인동기와 여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한 살해 동기는 권 씨가 피해자와 채무관계로 얽혀있었던 점으로 미뤄 금전문제로 인한 살인사건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권 씨가 곳곳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근저당 설정이 돼 있거나 대출을 받은 금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최근 들어 금전문제로 곤란을 겪었을 가능성도 있다. 강화경찰서 한인기 수사과장은 “권 씨의 부동산 대부분이 은행에 근저당 설정이 돼 있는 상황이다. 앞서 다른 3건의 실종자와 사망자와의 금전관계 부분도 추가 조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씨의 복잡한 여성편력을 고려하면 과거 3건의 미제사건의 경우 치정관계에 얽힌 범행일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다. 강화경찰서 한인기 수사과장은 “현재로서는 심증만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 신 씨 건을 처리한 후 3건의 미제사건도 다시 들춰볼 방침”이라며 “피해자들이 모두 권 씨와 관련이 있는 만큼 권 씨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피의자 권 씨는 어떤 인물?
현역 유명 야구선수 부친 ‘헉’
채권자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권 씨가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조용한 동네에 흉흉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또 피의자 권 씨가 현역 유명 프로야구 선수의 부친이기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권 씨는 현재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의 본가는 권 씨가 운영했던 양식장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권 씨는 거처를 옮겨 다니며 생활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어도 곳곳에 부동산과 양식장, 식당이 있어 생활고를 겪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권 씨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던 주민 B 씨는 “권 씨 집이 아버지 때부터 재산이 꽤 있었다. 어렸을 때 동네기물을 파손하는 사고를 치더라도 자기 돈을 써서 바로바로 복구해 놓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며 “(권 씨는) 집에 재산도 있고, 일가 친척들도 지역에서 한자리씩 하고 있어 별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60대의 권 씨가 건장한 30대 남성을 살해하고 유기까지 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권 씨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권 씨를 “남자답게 생겨서 힘도 센 편이었고, 행동도 거침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권 씨는 여자관계도 복잡했다고 한다. 권 씨에게는 본처가 있었지만 체포될 당시에는 또 다른 내연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2001년 실종됐던 여성도 권 씨의 내연녀였다. 앞서의 주민 B 씨는 “본처와는 따로 산 지 오래 됐다. 과거에는 동네 여성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