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비너스의 눈물이 사랑과 열정으로 붉은 딸기로 변형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딸기는 사랑과 슬픔이 결합된 정서적 상징으로 해석되었고 붉은 색과 달콤한 맛은 애정과 욕망의 감정에 비유되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부터 도시 시장에서 과일 상인들과 딸기 재배 농업인들이 성상과 함께 커다란 딸기 바구니를 들고 퍼레이드하며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관중에게 딸기를 나눠주었던 ‘딸기의 승리(Triumph of Strawberries)’ 축제는 1870년까지 이어져 왔고 오늘날 라치오주 딸기 축제로 계승되었다. 또한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 가문의 문장이나 대성당 조각과 같은 건축 장식에 딸기 문양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어 가문의 문장
(프레지어 가문이 1000년경 스코틀랜드 전쟁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앙리 1세에게 딸기 꽃이 그려진 문장을 하사받았다.)
특히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존재로 취급 받았는데 딸기의 잎이 세 갈래로 나누어 진 것을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여 성스러운 식물로 분류하고 성화나 수도원 정원에서의 경건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15세기에 그려진 딸기를 들고 있는 성모마리아
(성모 마리아 손에 꽃과 열매가 동시에 달린 딸기 가지를 들고 있으며 순결과 그리스도의 탄생, 삼위일체 상징으로 해석된다.)
14세기 프랑스 병원에서는 야생딸기를 환자에게 약용으로 판매하기도 하였지만 16세기까지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하였고 18세기 이후에 유럽에서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19세기까지 디저트는 귀족의 요리였고 여기에 사용된 딸기는 일반 평민들이 먹기 힘든 상류층 과일로 ‘황후의 과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