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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교회 이야기’ - 5. 기도는 하지만 믿지는 않습니까?
본문 : 사도행전 12장 5절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새번역>
우리는 나이를 떠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런데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우리는 어느 정도 연령대의 자녀일까요? 100세쯤 된 아버지를 모신 70대쯤의 자녀일까요? 30대쯤 된 아버지를 모신 10대쯤의 자녀일까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자녀는 어느 정도 연령대의 자녀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 구절에서 힌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한복음 1장 12절, 새번역>
여기 등장하는 ‘자녀’는 헬라어로 ‘τέκνα(tekna)’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Children’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단어는 해석하면 ‘어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우리의 연령대가 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100세가 된 자녀이든, 50세이든, 실제 나이가 몇 살이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어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이는 누구든지, 자신을 또한 어린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녀’라는 단어를 이렇게 ‘어린이’로 표현하셨을까요? 이 구절에서 또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복음 18장 4절, 새번역>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헬라어로 ‘παιδίον (paidion)’입니다. 이 단어도 영어로 번역하면 'the young child'입니다. ‘테크나’라는 헬라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 더 중요한 단어는 바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겸손하다는 표현으로 보편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사실 겸손은 스스로 보잘 것 없고, 천하고, 변변찮은 존재로 생각한다는 기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예의상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 스스로 보잘 것 없고, 천하고, 변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자녀로 삼아 주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런 존재를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시고,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에게 그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 자녀의 마음, 그 어린이의 마음, 그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마음을 지닌 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녀, 그 어린이, 그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자리를 그렇게 좋아 하지 않습니다. 나도 경험이 있고, 나도 생각이 있고, 내 방법도 꽤 괜찮고, 공부도 많이 했고, 지식도 충분하고, 고리타분한 부모의 방식보다는 탁월한 나의 방식이 더 좋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어 부모를 가르치는 자녀가 되려 하고, 어른이가 되고, 자기를 높이고 부모를 초라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런 부모와 자녀의 역전 현상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물론 일을 행함에 자녀의 의견이 옳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옳아 보이고, 아무리 좋아 보여도,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부모를 가르치면서까지,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녀인지 헷갈릴 정도로까지 하면서, 진행하는 일은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을 자녀일 때는 몰랐지만 부모가 되면서 깨닫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신앙생활에도 이런 역전 현상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어린이’라고 규정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절을 가지고 와서는 마치 ‘청출어람’ 부모를 뛰어 넘는 자녀가 되는 것이 맞는 것처럼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 새번역>
여기 등장하는 어린아이라는 헬라어는 ‘νήπιος (nēpios)’로 영어로 번역하면 ‘child’로 똑같아 보이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어린이가 아닌 ‘미숙하다’, ‘어리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는 것은 어린 아이 때의 미숙함을 버렸다는 뜻이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서의 ‘순수함’을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앙은 성숙해져야 합니다. 당연히 미숙함은 버리고, 날마다 성장해야 합니다. 그건 하나님이 너무도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십시오. <베드로후서 3장 18절, 새번역>
그런데 이 자라감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수정하고 변경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이 그 정체성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자란 것으로 치면 최고봉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는 예수님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마태복음 26장 39절, 새번역>
예수님은 충분히 성숙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성숙이 결코 하나님의 방법을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종하는 자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저 성숙하기만 하면 놓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가복음 8장 33절, 새번역>
베드로는 수제자 소리를 들을 만큼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녀, 어린이,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그냥 미숙한 ‘어린아이’로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수와 겸손을 소유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쓰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숙하면 성숙해질수록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더욱 더 자랑하는 것입니다. 진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장 16절, 새번역>
우리는 분명 이런 자녀의 모습, 어린이의 모습,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 <고린도전서 5장 7~8절,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하여, 자꾸만 우리를 부풀게 만드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 못하게 유혹하는 세상의 누룩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누었던 사도행전 12장에서 우리는 이 묵은 누룩에 조금씩 부풀려 지고 있었던 한 공동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그것도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놀라운 기록 속으로 한 번 자세하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롯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함으로 야고보가 순교하였고, 베드로도 잡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네 명으로 짠 경비병 네 패가 지킬 정도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유월절만 지나면 백성들 앞에 끌어내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회는 이렇게 행동합니다.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사도행전 12장 5절, 새번역>
놀랍게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응답을 허락하십니다. 바로 베드로를 감옥에서 탈출시키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그 와중에 잠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솔직히 이 믿음은 본받고 싶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배짱 있는 믿음은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령으로 충만했던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이라고 믿었음을 엿 볼 수 있는 실로 하늘의 평안으로 가득한 태도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베드로를 찾아온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기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정말 재밌는 구절입니다. 베드로의 두 손목에서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두르고 천사를 따라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도 놀라긴 놀랐나 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참인 줄 모르고,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천사와 베드로는 첫째 초소, 둘째 초소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철문에 이르렀고, 그 철문 역시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베드로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역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야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겠다. 주님께서 주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헤롯의 손에서, 그리고 유대 백성이 꾸민 모든 음모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사도행전 12장 11절, 새번역>
베드로는 바로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간 여전히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로데라고 하는 어린 여종이 맞으러 나오게 됩니다. 로데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 너무 기뻐서(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신 것에 기뻐서), 문을 여는 것도 잊어버리고, 달려가서, 기도 소리를 멈추게 만들 정도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사람들이 여종에게 "네가 미쳤구나" 하고 말하자, 여종은 참말이라고 우겼다. 그러자 그들은 "베드로의 천사일거야" 하고 말하였다. <사도행전 12장 15절, 새번역>
안타깝게도 교회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기도는 하고 있지만, 정말 열심히 기도는 하고 있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믿지’는 않았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행위라도 했어야 덜 불안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그저 기도의 자리만 만들어 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은 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믿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데를 순간 미친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기도하긴 했지만, 베드로가 풀려 나오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방법이 만들어 낸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했지만, 간절히 기도했지만 믿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로데의 말은 사실이고, 하나님 아버지는 교회의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동안에 베드로가 줄곧 문을 두드리니, 사람들이 문을 열어서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도행전 12장 16절, 새번역>
여기서 우리 모두는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누가는 왜 이런 본문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누가는 지금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하필 오늘이 어린이 주일이라 더욱 더 메시지는 선명해 보입니다. 누가는 교회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피오스(미숙함)이 아닌 테크나(어린이), 파이디온(겸손)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당시 교회들에게, 지금 우리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방법과 생각과 경험이 뛰어나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과 생각과 경험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행위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행위, 중심이 있는 기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순수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과 함께 누가복음을 기록했던 누가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기록했던 누가복음 18장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8장 1절, 새번역>
그리고 이 비유의 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누가복음 18장 9절, 새번역>
그리고 연결해 가시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후, 이렇게 결론을 내고 계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17절, 새번역>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본적인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순수하니 이런 마음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 그런 믿음을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스스로를 의지하여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이의 방식, 하나님의 방식을 멸시하는 이들로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어린이의 모습이고, 그 어린이와 같아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 어느새 너무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요? 성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조카쯤으로, 하나님의 친구로까지, 가끔씩은 하나님의 아버지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신앙에 너무 때가 많이 탄 것은 아닐까요? 기도는 하지만, 신앙생활은 하지만, 예배는 드리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안에 로데를 다시 찾아야 할 때입니다. 문 밖에서 두드리는 베드로의 소리를 유일하게 듣고 반응했던 로데가 우리 안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맘을 두드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기쁨으로 반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언젠가처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녀들이 달려와 안아준 것처럼, 아빠와 엄마를 부르기만 해도 언제나 달려와 주던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자신도, 우리 교회도, 다시 자녀와 어린이와 자기를 낮추는 마음과 순수와 겸손을 회복하는 오늘 어린이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새번역>
그리고 여러분을 향해 선포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 음성을 꼭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마태복음 3장 17절, 새번역>
2024년 5월 첫 번째 주간(5~11일)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합심 기도 제목입니다. 이 시간은 말씀의 삶 속 임재를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삶의 기도를 다함께 선포하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이 선포와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테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자신을 또한 어린이라고 인정하는 그리스도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2. 파이디온!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그리스도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3. 순수와 겸손을 소유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4.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5.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을 회복하는 교회, 그 회복을 전파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고백 찬양 - 아바 아버지 + 내 이름 아시죠(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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