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불사의 전체시공을 맡은 건설회사의 담당자인 ‘제임스 미첼'은 작년 9월경에 만났습니다. 공사시작 예정이었던 시공회사가 계약직전,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회사 찾기를 다시 한 달여 끝에 만난 제임스 미첼의 회사는 4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종교단체의 건물인 교회나 성당등 많은 큰 작품들을 가지고 있으며 불교 건물에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사람의 외국인을 만나 한국의 불교 건물의 역사와 용도 그리고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이해를 시킨다는 것이 서로에게 많은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못을 박아 건물이 움직이지 않고, 단단하게 고정되는 서양식 건축만을 이해하여 온 외국인이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의 흔들림이 있는 한국식의 불사에 참여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용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뉴욕 불사의 건물에 누가 참여하길 원하겠습니까? 미첼은 모든 의혹을 다 물리치고 과감하게 새로운 방식에 뛰어든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까다로운 요구에도 묵묵히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보이지 않는 참으로 인내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회사의 신조는 신용과 격조 있는 건물을 짓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미첼의 회사는 뉴욕 일원에 수 많은 아름다운 종교 건물과 병원 그리고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면접을 하였는바, 이 정도 사람이면 능히 한마음 뉴욕지원의 불사를 감당 할 만 하다는 생각에 일을 맡겼습니다. 불사의 시작에서 끝까지 이 사람이 자아내는 건설에 대한 모든 능력이 많은 것을 좌우 할 것입니다. 이미 한마음의 식구가 된 바, 우리 모두 제임스 미첼이 항상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 불사를 자신의 집과 회사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 그리고 한마음 많이 내어 주시길 바랍니다.
부처님, 불단, 탱화, 닫집 조성 - 목아 박찬수
목아 선생은 불교 목조각가로 어린 시절 지인에게 소개받은 김성수 선생님으로부터 예술가의 길과 목조각에 대한 기능을 배웠으며 미술 선생님이셨던 이운식 선생님으로부터는 조각 전반에 걸친 기초와 이론을 교육받아 그 자신의 작품 세계를 체계화시킬 수 있었다.
1967년 "제 1회 박찬갑,박찬수 조각전”을 개최로 조각가로서의 정식 입문으로, 1972년부터는 오직 불교 목조각으로 작품활동을 한정시키기로 하였는데 이에는 불상 조각가였던 신상균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1986년 아시안게임기념 불교 미술기획전에서 종합 대상 (종정 상)과 1989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불교미술가로서 길을 걸어 왔다.
여러 작품 활동속에서도 1985년 문화재 수리기능 보유자 시험에 합격하였고 은적사의 비로자나불상, 대흥사의 삼존불상, 백련사의 나한상 등의 문화재 보수에도 참여하였다. 1989년에는 틈틈히 모은 불교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받은 유물 3점을 포함하여 6,000여점을 헤아리게 되자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아쉬움으로 경기도 여주에 목아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08호 목조각장에 지정되었으며 이후에는 좀더 체계적인 목조각 분야의 발전과 전승을 위해 활발한 창작 및 해외활동, 후학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사업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뉴욕 한마음 선원의 불상 제작을 맡은 박관장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불교 유적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이번 불상제작에 목조각장으로서 한 평생 쌓은 역량을 쏟아 부었다.
돌 난간 , 계단 시공 - 석공예 명장 임동조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임동조씨는 14살 어린 나이에 부친의 권유로 석공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1969년 경복궁 국립미술관 석공사 현장에서 돌과 첫 인연을 맺고, 당시 이름을 날리던 고 안기호 도석수(우두머리 석공) 밑에서 전통 석공 기술을 전수 받았다.
문화재 복원에는 해체 당시의 돌 조각도 소중히 다뤄야 하고 오로지 전통기법으로만 공사해야 하는 섬세한 손놀림의 석공이 있어야 했는데, 임동조씨는 국내 유명 궁의 석조물 ‘복원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경희궁 자정전 복원과 창덕궁 선정전 인정전의 행각 보수, 오대산 지장암 복원 등 주요문화재 복원 및 보수작업에 참여해 왔으며, 현재 광화문 보수 복원공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 공사가 땅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기존의 작업과는 달리 대부분이 비어있는 지하공간 위에 돌 난간과 계단을 올려 놓아야 했기에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기간 내에 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피라고 했다. |
전통한옥미장 기능보유자 이종진
이종진씨는 17세때 김유신 장군사당 미장 공사에 참여하면서 전통한옥미장 전수자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현재 문화재기능 787호 보유자로 창경궁 복원공사, 창덕궁, 덕수궁, 종묘, 칠궁(민비사당), 속리산 법주사, 치악산 구룡사, 소백산 구인사 등의 미장공사를 시공하였으며 현대 건축물인 용산중앙박물관, 개성공단, 인천 월미도 공원 꽃 담장 등을 시공했다.
이종진씨는 대웅전 공사를 책임진 신응수 대목장님의 소개로 선원의 불사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까다로운 뉴욕 건축법에 한국의 전통미장 공법을 적용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종진씨는 정통공법과 함께 예술성까지 요구되는 ‘꽃 담장’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통 미장 기능 전수에도 주력하고 있다. |
창호- 소목장 조찬형
조찬형(충청남도 제 18호 소목 무형 문화재, 문화재 수리 기능자)는 평생 창호제작에만 전념해 왔다. 그는 1953년 소목장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전통 창호 공예에 관심을 갖고 서울 을지로 3가 안건사 가구공장, 인천 김건후씨를 통해 기술을 전수 받았으며, 1964년 고향으로 가서 일신공예사를 설립하고, 전통 한식 창호 제작에 열중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 강화도 보문사 요사 창호 제작으로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조찬형씨는 1985년 대목 신응수씨로부터 기술을 사사받아 충북 구인사 법당, 대구 광덕사 법당, 마산 삼학사 법당 등의 창호제작을 하였다. 그는 의정부 대원사, 예산 향천사, 하동 쌍계사(법당 창호 보수), 영광 불감사, 영천 은혜사, 속리산 법주사 등의 창호제작 및 보수를 해 왔다.
그는 뉴욕에 한국 전통 법당을 건립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볼 수 있게 해 준 한마음 선원에 감사하며 이 불사가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반이 되기를 기원했다
*소목 : 장롱이나 궤함을 비롯하여 문방구들의 세간들과 가마, 수레, 농기구, 기타 도구류를 비롯하여 창호와 난간, 닫집 등 건물에 부착되는 작은 시설들을 제작하는 목수 |
청동난간 제작 설 치시공 - 대한민국 금속공예 주조 1호 명장 변종복
1970년 21세에 부산 지방기능 경기대회에 주조부 금상을 수상하면서 재능을 인정 받기 시작한 변종복씨는 목공예 연구소를 운영하던중 당시 부산 영도에서 미술주조를 하고 계셨던 박희목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1974년 고려 금속 공예사(현.장인의 가 고려)로 이전하여 용광로를 설치 본격적인 금속공예 주조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년 공예품 경진대회에 출품 (1972년~2006년까지) 40여회 수상 하였고 대형 브론즈 조각품을 주문 제작 (우리나라 전국 100여점) 설치 하기도 하였으며 선진국 미술주조 기술을 도입하고자 이탈리아 피에트라 산타에 건너가 주조과정 및 부식 색상 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작품 제작에 많은 발전을 가져 왔다.
2006년 대한민국 금속공예 주조1호 명장으로 선정 되었으며 2007년에는 한마음 선원과 인연이 되어 금왕지원에 우주탑 제작 설치를 하게 되었다.
변종복씨는 ”난간대를 하나하나 규격에 맞추어 설치 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 과정이었지만 오랜기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원만히 작업을 끝낼 수 있었으며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일을 마무리 하고 귀국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에서 대웅전 불사를 위해 땀흘리며 애쓰시는 스님들과 보살님들의 도움과 부처님의 가피라 여겨 진다. 남은 또 다른 작업 공정들이 잘 마무리되어 세계 제일의 도시 뉴욕에서 세계 최고의 한국 불교 대웅전이 완공되기를 두손모아 부처님께 기도 드린다”고 전했다.
첫댓글 남대문 복원 작업중이신 분이 바로 신응수 대목장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