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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 18 십자가의 의미1 (십자가의 사랑)
(서론)
1. 각 국가 마다 그 나라를 상징해 주는 국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기입니다. 기업이나 단체에는 로고, 상표, 트레이드 마크가 있습니다. 그 기업을 상징해주며 제품이나 하는 일을 말해줍니다. 종교에도 상징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본론)
1. 기독교의 상징, 우리의 트레이드마크는 십자가입니다.
-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징표입니다.
- 또한 십자가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 주시는 지침서와도 같습니다.
1) 오늘 여러분은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십자가를 무엇이라고 표현하실 수 있으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무엇이라고 소개하실 수 있으신가요?
2)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표적이다”라고 했습니다.
3) 죠지다나 보드맨 미국 목사님은 십자가는 천국 문턱에 이르기에 충분할 만큼 높으며 유일한 사다리다
4) 토마스 아 캠피스는 모든 일은 십자가 위에 있다. 매일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는 생명과 평화를 얻을 수 없다.
5) 롱은 십자가 없는 종교는 헛것입니다.
6)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계 역사의 중심입니다.
7) 중생한 성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난자입니다
2. 본문은 당시 분쟁에 빠저 있는 교린도 교회 성도들이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안타깝게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고린도 교회를 개척 설립한 바울을 추종하는 바울파
2) 철학적 지식이 풍부했던 아볼로를 추종하는 아볼로파
3)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추종하는 베드로파
4) 오직 자신들만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파
3. 사도바울은 교만 때문에 분열에 빠진 이들을 책망하면서 세상의 지혜, 지식, 세상의 능력으로는 구원 받을수
없음을 교훈해줍니다. (25절)
1)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 십자가의 도” 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 다. 결국 십자가의 도는 믿음의 중심이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 세상과, 사탄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2) 십자가가 빠져버리는 것은 정체성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알멩이가 빠진 것과 같습니다. 집을 든든하게 받쳐 세워주는 기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십자가를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가 중심이 되지 못 하면 분열과 혼란, 갈등, 다툼, 의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3) 교회가 건강하고 생기가 있고 은혜가 충만하고 능력이 있으려면 십자가 중심으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중후반 영국 국민들은 산업자본의 큰 후유증에 병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전 영국민들은 황금만능주의에 빠저 물질 모으기에 몰두해 있었고 성공실패의 기준, 심지어는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도 물질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에 취하고 신분상승에 몰두하고 돈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세상 향락에 몽롱해저 갔습니다.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할수 없이 곤고함이 찾아옵니다. 영혼은 황폐해저 갔습니다. 바로 이때 런던의 한 목사님의 설교는 그들의 잠을 깨웠습니다. 주일이 지난 다음날이면 사택 문 앞에 구원에 관한 상담을 위해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던 시대를 깨우신 목사님 그분은 바로 스펄젼 목사님이셨습니다. 과연 그분의 메시지가 어떤 메시지였기에 돈에 눈이 멀고 신분상승에 눈이 멀고 향락에 눈이 먼 사람들의 몽롱한 정신을 깨어나게 했을까요? 스펄젼 목사님의 책중< 네 믿음을 보이라>라는 책의 서문에 그 목사님의 메시지의 키를 이어받은 두분 목사님의 지적이 나옵니다. 스펄젼 목사님보다 한 시대 후에 등장한 로이드 죤스 목사님과 토저 목사님입니다. 두 분 목사님의 지적에 백%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동의해야만 하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잠시 소개 하겠습니다.
< 강단의 타락이 연예인이 강단 간증자로 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복음 선포가 사라지고 유명인의 간증과 강연이 주님의 강단을 점령하고 있지는 않은가? 처세술과 자기계발이 복음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닌가? 복음으로 교인들이 얼마나 거듭났는가? 주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쳔 공동체에서 일류대학에 몇 명 갔는지 자랑하는 풍조로 바뀐 것은 아닌가? 이러는 가운데 복음 없는 메시지, 회개 없는 죄 용서, 거듭남 없는 구원, 성령 없는 교회, 지옥 없는 천국만을 가르치는 기독교가 될까 심히 두렵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이 목사님들의 지적에 동의하시나요?
결론은 십자가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감동이, 십자가로 은혜 받음이 사라지고, 십자가의 능력이 사라지고 대신에 물질 축복이, 신분 상승이, 유명인이 되어 진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이며 또한 주님 앞에서 섰을 때 무슨 상급이 남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이런 것들은 다 물거품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십자가에 대한 시각
1)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련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는 자들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시각이십니까?
2) 당시 십자가는 중죄인에게만 내리는 처형입니다 - 로마 정부에 대한 내란죄인, 살인범, 강도
3)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무능력한 패배자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23)
4) 이방인들에게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하고 나약함의 상징이었습니다. (23)
5)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 승리,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면 십자가는 능력중의 능력이 됩니다.
자랑거리가 됩니다. 감격의 상징이 됩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신앙생활은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알멩이가 빠저버린 빈껍대기에 불과합니다.
A. 십자가의 첫 번째 의미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첫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예수님 입장에서는 말로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고난을 통한 크고 측량할 수도 없고 기이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만일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분이 아무리 그 애완용 동물이 사랑스러워도 자식의 생명과 바꿀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둘째,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1.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1) 원죄와 자범죄가 어떻게 용서 받고 구원받게 되는가?
=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젔습니다. 짐승의 피가 혹은 우리의 행함으로 용서되어지고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전적부패한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십자가 를 통하여, 즉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2) 불순종한 죄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젔습니다.
3) 내가 다 이루었다 = 하나님의 사랑이 다 이루었다는 선포이십니다.
4)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거, 확증이 바로 십자가입니다(롬5:8).
5) 창조주와 관계가 깨어저 버린 피조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단절되어버린 인간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게 된 인간.
= 그러나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졌습니다.
= 십자가를 통해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십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멘.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멘.
=이 사실을 욥기에서는 5장 9절에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 시나니 ”라고 하십니다.
6)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이 죄인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 십자가를 통한 사랑은 하나님 편에서는 일방적인 희생이시며 죽음이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사랑을 확인 시켜주시기 위해서 사랑을 확실하게 증명시켜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단번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7)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 한국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이수현군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던 대학생입니다. 지금부터 9년 전 2002년 1월 26일 밤 도쿄 국철인 JR 야마노테센(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술에 취한 승객이 플랫폼에서 미끄러져 철로에 떨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수현군과 2명의 일본 사람이 그 사람을 구하려고 철로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수현 군은 때마침 역구내로 들어오던 전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변을 당하여 생명을 잃었습니다.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거룩한 죽음이라고 하여 애도하였고 일본 수상을 비롯하여 모든 일본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애도의 뜻을 표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민족도 아닌데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더군다나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민족인데 그것을 관계하지 않고 생명을 구하려고 자신의 생명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한 젊은이였고 오래 기억해야 할 숭고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귀한 젊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젊은이의 죽음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수현군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고 다른 한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뛰어 들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한 사람을 살리겠다는 생각만 하고 뛰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죽음은 정말 두고두고 생각하고 음미해야 할 고귀함이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정말 우리의 이해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자원하 셨습니다. 그것도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를 떠나 스스로 택하신 길입니다. 아주 철저히 그렇게 전적으로 희생과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고 준비하신 분명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 면서도 그렇게 희생하신 것입니다. 전혀 깨닫지 못하여 받아드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거절하고 배반하는 인간들 을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희생에는 고상함이나 고귀함이라는 표현 그 이상의 하늘적이고 생명적인 것으로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2. 요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말로는 표현이 가능하지만 실재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해 주셨고 이 예수님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하여
실천되어 젔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멸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축복이 여기 있습니다. 십자가에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외면하신 하나님 - 왜? 이유는 단 하나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처절한 아들의 울부짖음을 외면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3. 롬 8:38 - 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1)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깊이 있는 사랑 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어떠한 유혹과 시험이 와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믿음을 원하십니까? 십자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자 다 도망갔다. 그러나 의미를 깨닫고 나자
순교까지 했다.
3)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내편 되십니다.
4.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1)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2) 진정한 사랑, 아가페적 사랑 - 일방적인 희생적 사랑
5. 이제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22- 23)
1)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은 힘껏 외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들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전파와 말로 하는 전파가 있습니다. 우리는 둘 다 힘써야 합니다. 요즘은 말로 전도하 는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복음을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지 않으면 인간의 의, 자기 공로,
인간 칭찬으로 끝나고 맙니다.
- 우리의 사랑 실천은 하나님 사랑의 열매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 우리의 사랑 실천은 빛의 반사에 불과 하다고 진심으로 고백해야만 합니다.
3) 또한 보이는 선포에도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입니다. 제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 삶을 구체적으로 착하게 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실까요?
마5: 16절입니다.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우리에게 빛으로 소금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요 십자 가의 사랑의 의미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으로 살고 소금으로 사는 것이 구체적으 로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좀 전에 읽은 말씀속에서 답을 주십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사람들이 보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죽어도 손해 못보고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야하고 억울한 일은 반드시 같아주어야 하고 등등으로 산다면 누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겠습니까? 어찌 하나님께 영 광돌리겠습니까? 십자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손해보는 것 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억울한 것 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바보되는 것 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 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회는 싫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착한 사람의 모본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그 사랑을 아십니까? 십자가 그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이제 착하게 삽시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입 니다. 너무 영리하고 너무 똑똑한 사람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이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어떤 실수도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못합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사람처럼 살아 서는 안됩니다. 기독교를 싫다고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수님은 좋답니다. 그러나 이나라 교회는 싫 답니다. 예수님은 착하게 살았기에 좋다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성도들은 착하게 살지 않기에 싫다는 겁 니다. 그렇다면 누가 착하게 살지 않았나요?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족중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이웃에서 직장에서 착하다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의 삶 입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삶입니다.
말과 함께 삶이 일치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은 오히려 웃음거리와 조롱거리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그 책임은 내게 있고 내가 저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을 보이는 보여주는
선포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