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 시집 『마음의 일』 (창비, 2022)을 읽고
“말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말까지 잘하고” 싶었다는 오은 시인의 청소년 시집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인과 시집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연 으뜸으로 말놀이(Pun) 시의 독보적 시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오은 시인의 또 다른 시집 『유에서 유』의 해설에서 권혁웅 평론가는
“오은의 시는 선행하는 그 어떤 길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시에서 끊임없이 놀이(Play)를 벌인다. 놀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놀이, 시가 말로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말놀이, 말놀이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되지 않는 놀이. 그리고 그는 그 놀이로 혁명을 시도한다.”라고 썼다.
『마음의 일』에서도 여러 편 아니, 대부분의 시들이 말놀이를 통해 사유를 펼쳐나간다.
고교 시절을 생각하면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그것들은 5초 안에 눈물로 변한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처럼, 파도 한 점 없는 밤바다처럼” (「하나다」 중에서)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불투명한 대상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해서 “어제를 생각해도 오늘을 살아도 내일을 기다려도 조금은 설레고 싶어.”(「해피엔드」 중에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을 펼쳐 글을 읽어나가면서 마치, 내 고교 시절 일기장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몇 페이지는 아예, 내 마음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것 같았다. “밤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처럼, 밤바다에 드리운 등대 불빛처럼” (「하나다」 중에서) 삶이 그렇게 아름답고 명확하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요원해 보이지만, 두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 용기는 생겼다. 그런 용기조차 만들어 낼 힘이 없었던 시절로 들어가 한바탕 드잡이하고 나온 느낌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정작 우리는 책이 아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음 장에 무슨 풍경이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
― 「딴」 중에서
책은 우리의 미래가 된다. 아무리 궁리해도 미래를 살아보지 않아서 우리가 무엇이 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안갯속처럼 불투명하다. 어른들이 말하는 딴생각하지 말라는 “딴”에는 “우리를 각기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에 우리를 꿈꾸게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 한 공간에 함께 있지만, 각기 다른 딴생각들을 하며 청소년 시절을 건너고 있다.
서로 무엇이 될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 채, 그러나 시인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공기가 되어 “너를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오늘」 중에서)라고 온몸이 붉게 물든 토마토가 되어 고백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이롭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인의 친구” (「발문 – 이슬아」에서) 가 되었다.
나는 오늘 피곤해
나는 오늘 일어나
마음을 삐뚤게 먹었지
습관처럼 아침을 먹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오늘은 어디에 가 볼까
피곤해도 학교는 가야겠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
시침처럼 느리게 움직일래
초침처럼 경쾌하게 달려갈래
순간을 흘려보내는 마음
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흔적을 지우거나 치우며
사연을 만들거나 쌓으며
나는 자꾸 작아져
몸에 마음이 붙어, 마음에 살이 붙어
나는 오늘 불행해
그럼에도
나는 오늘 살아가
나는 오늘 피어나
나는 오늘 나야
내내 나일 거야 ― 「나는 오늘」 중에서
이토록 파격의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나 다운 나로 나의 오늘을 살고 싶은 의지가 읽힌다. 두 개의 시를, 두 개의 마음을 하나의 시로 섞으면서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시집 첫 번째 시와 마지막 시의 제목이 같은 것도 특이하다. 새로운 기법의 시 쓰기로 마지막까지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시인은 나이기도 하고, 내 친구이기도 한 여러 화자로 등장해 ‘우울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를 썼다. 그 우울했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밖에서 안을 달구는 시간이 아니라, 안에서 스스로 달아오르는 시간’ (「냄비」 중에서) 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시집이었다. 그 외롭고 슬픈 터널 속에서 함께 외로웠으며, 함께 힘을 키웠다. 잘 견뎌냈다고, 잘했다고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노란색 따스한 희망을 품고 우울의 터널을 나온 것 같다.
# 말놀이가 두드러지는 시 : 나는 오늘/딴/흘리지 마라/장마/언제 한번/힘내,라는 말/교실에 내리는 눈/달 봐/몰라서 좋아요/자라는 이야기/그렇고 그런 날/밑줄 긋는 마음/슬픔과 슬픔 사이에/나는 오늘